반도체 공장서 8년.. '희귀병' 진단 받은 노동자 이야기
2007년 고 황유미님의 죽음 이후, 반도체 전자산업의 위험성은 이제 우리 사회의 상식이 되었습니다. 반올림과 함께 많은 분들이 전자산업 직업병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알리려 노력해 온 덕분입니다. 전자산업 피해자들의 직업병 인정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반도체 산업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는 넘치는 반면 반도체 산업의 위험에 대한 얘기는 여전히 부족합니다. 이런 현실에서 전자산업 직업병 피해자들의 얘기는 여전히 중요합니다. 이에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은 이하늬 작가와 함께 반도체 전자산업 피해자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위험한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위험이 떠넘겨진 하청노동자에게, 다른 나라의 전자산업 노동자들에게도 닿기를 바랍니다. <기자말>
[반올림]
▲ 2017년 반올림이 고 황유미님 추모기일을 맞아 수원 삼성전자 본사 앞부터 수원 전역을 방진복을 입고 76명의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영정을 들고 행진하는 모습. |
ⓒ 반올림 |
2011년 김민준(가명)씨는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 설비 엔지니어로 입사했다. 기흥공장은 2007년 급성백혈병으로 사망한 고 황유미씨가 근무하던 곳이다. 김씨도 이 사실을 알았다. 걱정이 안 됐던 건 아니다. 그럼에도 김씨는 입사를 결정했다. 설비 엔지니어는 오퍼레이터보다는 화학물질에 덜 노출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게 착각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식각공정(가스나 화학약품을 이용해 웨이퍼에 쌓인 박막을 깎아내는 작업)에 배치된 김씨는 작업 내내 화학물질에 노출됐다. 챔버 문을 열 때면 '매운 냄새'가 났고 화학물질이 묻어있는 깨진 웨이퍼(반도체를 만들기 위한 재료가 되는 둥그런 판)를 주워서 치워야 했다. 설비 배관을 뚫을 때는 각종 화학물질 가루를 들이마시며 일했다.
그는 자신의 질병이 산재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일한 지 8년, 김씨는 자가면역질환의 일종인 희귀병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았다. 면역체계가 이상을 일으켜 자신을 공격하는 것이다. 이 공격으로 피부, 관절, 폐, 신장, 신경조직 등 전신에서 염증반응이 나타났다(김씨의 요청에 따라 구체적인 병명은 밝히지 않는다).
이전엔 잔병치레 같은 걸 한 번도 하지 않을 정도로 건강했다던 그는 "유해물질 노출이 아니라면 갑자기 자가면역질환을 얻었다는 것이 설명이 안 된다"고 말했다. 김씨를 지난 6월 3일 화상으로 인터뷰했다.
- 곧장 산재라고 생각할 정도로 일하면서 위험한 상황이 많았나.
"챔버 문을 열면 '코가 매울 정도'의 냄새가 났다. 선배들이 염소가스라고 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사람 몸에 나쁘겠다는 생각이 든다. 노출돼도 몸에 바로 티가 나는 게 아니니 계속 작업을 하게 된다. 원래는 챔버를 열기 전에 잔여가스를 배출해야 하는데 그렇게 못하는 경우가 많다."
- 가스배출을 못 하는 경우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가령 챔버 안에서 웨이퍼가 깨졌을 때다. 챔버는 웨이퍼가 깨졌다고 인식을 못 하기 때문에 가스배출 자체가 실행이 안 된다. 실행한다 해도 깨진 웨이퍼가 챔버 안에서 날아다니게 되면 설비 안이 더 난리가 난다. 가스배출을 못하고 그냥 챔버 문을 여는 이유다. 염소가스 뿐 아니라 사용하는 온갖 가스가 나온다. 곧장 기관지로 들어가거나 눈, 코, 피부 등 다 노출이 된다. 가스는 16종 정도라고 알고 있다. 유해한 가스와 무해한 가스가 섞여 있다."
- 깨진 웨이퍼는 어떻게 처리하나.
"깨진 웨이퍼를 하나하나 손으로 주워서 비닐에 담아서 나온다. 가루는 못 주우니까 진공으로 빨아들인다. 그 다음에 에탄올 와이퍼로 깨졌던 곳을 닦는다. 웨이퍼 표면에는 이전 공정에서 쓰던 화학물질이 남아있기 때문에 깨진 웨이퍼를 주울 때는 조심해야 한다. 찔리면 당연히 안 좋다."
- 엔지니어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반도체나 LCD공장에서 이렇게 깨진 것에 대한 대응이 엉망이다. 왜일까.
"안 깨지는 게 최선인데 그건 불가능하다. 그런 상황에서 엔지니어는 설비를 빨리 정비해서 다시 돌아가게 해야 한다. 대응이 엉망이 되는 이유다. 2014~2015년 즈음에서야 부서에서 지시가 내려와 내가 관련 작업지시서를 만들었다."
- 이전보다 자동화가 많이 됐는데 PM(유지보수)이나 BM(고장수리)을 사람이 직접 수행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에러가 나는 상황이 다 달라서 일률적으로 작업을 할 수가 없다. 어떤 경우에는 부품을 하나만 교체하고 어떤 경우는 다 교체한다. 다루는 부품이 하나에 1000만 원 이상씩 하는 고가다. 그런 걸 신경 써서 파손 없이 작업을 해야하니 사람이 할 수밖에 없다."
엔지니어들은 보호장구도 없이 이런 작업을 수행했다고 증언한다. 김씨는 2011년 입사 당시에는 비치된 보호장구 자체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보호장구가 없었으니 써야한다는 생각도 없었다는 것이다. 2013년 화성공장 불산 누출사고 이후에야 안전이 강화되고 보호장구가 비치됐지만, 보호장구를 착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는 게 그의 회고다.
빨리 정비해야만 '일을 잘한다'고 인정받는 분위기 속에서 보호장구를 착용할 틈은 없었다. 보호장구를 착용하면 일이 느려졌다. 그는 2020년 3월 반올림과의 상담에서 '목표달성 압박감이 상당함' '매일 실적 확인' 등의 어려움을 토로한 바 있다. 김씨의 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2020년~2021년 수행한 역학조사 보고서 역시 "60분 이상 걸리는 안전수칙을 지키는 것은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반도체 직업병 문제가 불거진 이후, 삼성은 물론이고 근로복지공단은 작업환경이 많이 개선돼 이전만큼 위험하지는 않다는 태도를 취했다. 고 황유미 등이 일할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올림이 만난 피해자들에 따르면 2010년대 중후반까지도 노동자들은 위험한 상황에 계속 노출된 것으로 보인다.
"예전보다 지금이 좋아졌다고 얘기하는 건 맞지 않아"
- 보호장구 등 안전수칙을 지키기 시작한 시점은 언제인가.
"2015~2016년 즈음에서야 제대로 썼던 것 같다. 그 전에는 안전수칙 지키면서 일하는 게 불편하니까 일부러 밤에 작업을 하기도 했다. 밤에는 안전수칙을 관리를 안 한다. 엔지니어 개인이 판단하는 게 아니라 부서에서 '이거는 밤에 하자'고 지시를 한다. 지금은 상당수 지켜서 하는 것 같다."
- 그 외에도 안전수칙이 지켜지지 않는 상황이 있었나.
"가스감지기가 울리면 대피를 하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반대로 빨리 안에 들어가서 확인하라고 한다. 전쟁터에 떠미는 것도 아니고 거기에 누가 들어가고 싶어하겠나? 측정기를 가지고 가는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없이 들어가서 코로 냄새를 맡는다. 어디에서 냄새가 나는지 사람이 코로 찾곤 했다. 말이 안 됐다. 지금은 모두 다 대피하는 것으로 안다."
- 회사가 규정한 사용목록에는 없는 물질을 실제로 사용했다고 들었다.
"부서에서 테스트 용으로 써보려고 외부에서 그런 물질을 들여왔다. 몰래 가지고 들어가서 챔버 닦을 때 사용하고 다시 가지고 나오라고 했다. 챔버 벽에는 화학물질 찌꺼기가 붙어있다. 그걸 닦으려면 어느 정도 세정력이 있어야 한다. 냄새가 엄청나게 역했다. 누가 봐도 안 좋은 거라는 느낌이 든다. 당연히 독하지 않았을까. (해당 물질은 아직 위험성이 확인된 것은 없다. 하지만 위험성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것이 위험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 반도체 공장이 많이 개선돼 최근 작업자들은 별로 위험하지 않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한다. 회사 이미지가 있고 큰 사고도 겪었으니까 계속 안전과 관련된 무언가를 하지만 들여다보면 형식적인 것이 많다. 공정이 고도화될수록 위험해진다는 생각도 든다. 최첨단 공정을 이뤄내려면 고농도의 가스, 고농도의 화학물질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이전보다 자동화가 많이 됐지만 결국 기계도 사람이 움직이는 것이다. 실수가 있고 사고도 난다. 무조건 예전보다 지금이 좋아졌다고 이야기하는 건 맞지 않다."
그는 자신의 질병이 산재라고 믿지만 질병판정위원회는 2021년 9월 산재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질판위는 "기타 요인들은 노출 정도나 수준이 낮으며 가족력 등 개인적 소견이 높다"고 평가했다. 누나는 김씨와 같은 질병을 앓고 있다. 대만의 건강보험청구데이터를 이용한 2015년 연구는 형제의 유병률에 대해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가 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연구는 가족력이 있다 해도 실제 해당 질병에 걸리는 사람은 2% 정도라고도 지적한다.
그러면서 질판위는 김씨가 각종 화학물질과 스트레스, 교대근무에 노출된 것은 맞지만 자가면역질환을 발병시킬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역학조사를 실시한 산업안전보건연구원도 김씨가 받은 스트레스는 트라우마 수준이 아니었으며, 10년 이하 교대근무로는 연관성이 부족하다고 봤다.
- 역학조사 보고서를 보면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트라우마 수준은 아니다' '교대근무를 했지만 10년 이하이기 때문에 발병 연관성이 부족하다'는 내용이 나온다.
"교대근무를 10년 하면 병에 걸리고 8년 하면 안 걸린다? 단순히 햇수로만 연관성이 부족하다고 판단하는 건 1차원적이다. 세세하고 구체적으로 봐야한다."
- 산재 조사 및 판정 과정에서 가족력도 언급됐다.
"가족력 하나로 불승인 했다고 본다. 가족력이 있으면 발병 확률이 올라갈 수 있다. 같은 논리로 보면 교대근무, 유리규산, 전자파, 방사능도 발병 확률을 올린다. 다른 유해요인에 대해서는 적게 반영하고 가족력만 주된 요인으로 판단하는 건 말이 안 된다. 해당 질병의 발병 원인은 불명이며 유전병도 아니다."
- 일련의 과정에서 아쉬운 점은 무엇인가.
"현실적으로 라인에서 어떤 일이 이뤄지고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는지를 보면 이렇게 판단을 할 수 없다. 신입사원으로 입사해서 일주일만 있어 보라고 하고 싶다. 다 도망간다. 여전히 그런 환경에서 일한다."
- 현재 재심사 진행 중이다. 재심사 신청한 이유가 뭔가.
"지금은 몸을 움직일 수 있지만 증상이 악화되면 계속 누워있어야 할 정도로 몸이 안 좋아진다. 가족이 있으니 나중으로 위해서라도 승인을 받아야 한다. 언제 몸이 안 좋아질까 불안해하면서 살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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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반올림이 연재하는 것으로 이하늬 작가가 작성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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