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업이 새 먹거리" 알지만..서발법, 11년째 제자리걸음
20兆 시장이지만 디자인기업 평균 매출 6억에 그쳐
여야 모두 서발법 필요성 공감대..시민단체 '반대'
대표적인 지식노동이자 서비스업인 디자인 산업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국내 디자인 산업 규모는 20조원에 달하지만, 외주 용역을 제공해 수익을 내는 '디자인 전문업체'는 대체로 규모가 작고 '을'의 입장이어서 불공정 거래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디자인업, 불공정 피해액 1511억…"표준계약서 도입·인식 개선을" = 한국디자인진흥원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디자인 전문업체는 7229개, 평균 매출액은 6억724만원이다. 디자인 전문업체의 디자이너 수는 평균 2.38명에 불과하며, 프리랜서 디자이너는 6만2516명으로 전년 대비 25.4% 늘었다.
윤상흠 한국디자인진흥원 원장은 "디자인 전문회사들이 대부분 영세하고 평균 매출액이 6억원 정도 밖에 안된다"며 "디자이너들이 하청일을 많이 하다보니 제값을 못받고 제대로 된 대접도 못받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한국디자인산업연합회가 발표한 '디자인기업 공정거래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0년 불공정 거래에 따른 디자인 용역 피해 금액은 평균 8728만원이다. 디자인진흥원에 신고한 9720개 디자인 전문업체를 바탕으로 추정한 전체 피해 규모는 약 1511억원이다.
종사자 규모가 작을수록 피해를 감수한다는 의견이 많았고, 피해를 감수하는 이유로는 '재거래 불이익 등 클라이언트와의 관계(59.9%)'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불공정 피해를 막기 위한 정부의 역할을 묻는 질문에는 '디자인 용역 표준계약서 및 기준 활용 확대(51.2%)', '디자인 가치·기준에 대한 인식 확산 교육 및 캠페인(39.4%)' 순으로 나타났다.
한 서비스 업계 관계자는 "음식점에 가면 '서비스'라는 말은 '음식을 공짜로 제공한다'는 의미로 쓰인다"며 "서비스업이 홀대받고 있는 현실이 언어에 반영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선진국 비해 서비스업 부가가치·노동 비중 낮아 = 서비스산업이 시장에서 합당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다보니 부가가치 비중은 지난 10년간 60% 수준에서 정체 중이며, 미국 일본 독일 등 주요국과 10~20%포인트 수준의 격차를 지속하고 있다. 서비스업 고용 비중도 70% 내외 수준으로 주요국보다 5~10%포인트 적은 편이다. 지난해 전체 정부 연구개발(R&D) 투자 중 서비스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5.5%에 불과했다.
지난해 3월 정부가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서비스산업 코로나19 대응 및 발전전략'에선 "그간 제조업·수출이 우리나라 경제성장을 견인했다면, 새로운 경제성장 모멘텀을 위한 서비스산업 발전이 중요하다"며 "코로나19 등 메가트랜드 대전환에 성공적으로 적응하느냐의 생존의 기로에 서있다"고 밝혔다.
◆정부·국회, 서발법 제정 추진 움직임…시민단체 '반대' = 새 정부도 서비스산업 육성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서발법) 제정은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에 포함돼있다. 서발법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에 처음 발의돼 18대 국회 때부터 지금까지 11년 동안 자동폐기와 재발의를 반복해왔다. 정부는 서발법을 통해 제조업·서비스업 간 차별을 넘어서는 서비스 친화적 제도를 마련하고 서비스 수출 활성화를 지원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국회에는 더불어민주당 이원욱·류성걸,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서발법 3건이 계류돼있다. 여야 간 법안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정부가 5년마다 서비스산업발전 정책 목표와 방향이 담긴 기본계획을 세우고 제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리했던 서비스산업 지원 제도를 지속적으로 발굴·개선하는 내용이 담겼다.
정부와 정치권 모두 서비스산업을 경제 성장 동력으로 이끌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데 공감하고 있는 것이다. 서발법이 제정되면 리걸테크, 강남언니 등 디지털 플랫폼 서비스에 대한 정부 정책도 일관성을 띨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참여연대 등 일부 시민단체는 정부가 보건·복지, 교육 등의 서비스에 대해 민영화를 추진하려 한다며 서발법 논의에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대해 문경호 기획재정부 서비스경제과장은 "보건·의료 분야 제도 변경은 의료법 약사법 등 개별법 개정이 없이는 불가능하므로 서발법을 통한 의료 영리화 우려는 근거없는 비판"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서발법이 통과되면 서비스 산업의 체계적 육성을 범부처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 고용과 성장의 균형있는 경제발전을 지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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