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학생들이 '똑같은' 시험, 이 방식의 문제점
[정우목 기자]
▲ 2022년 고교 3학년 전국연합학력평가가 실시된 4월 13일 오전 서울 송파구 가락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시험을 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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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대학이 같은 수업에서 학생마다 다른 방식으로 평가하는 방식을 도입한다면 어떠한 반응이 뒤따를까? 상대평가가 주를 이루는 우리나라의 평가 체계에선 '공정성'이 가장 먼저 거론될 것이다. 평가 방식이 다르다는 것은 모든 학생이 똑같은 조건에서 평가를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로의 성과를 '비교'하기 위해선 공통의 평가 기준이 필요한데 평가 방식에 따라 이 기준은 달라진다. 즉, 평가 방식의 다원화는 똑같은 평가 문항에 대한 답을 비교하며 '객관적'으로 순위를 매길 수 없기 때문에 공정하지 않다고 여겨질 것이다.
독일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같은 강의를 들었다고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평가를 받는 것이 공정한가'라는 의문이 생겼다. 현재 필자가 다니고 있는 대학에선 많은 강의가 다양한 평가 방식을 제공하고 있다. 같은 강의를 듣더라도 학생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평가에 참여할 수 있다.
예컨대, 어떤 학생들은 10-15쪽 분량의 소논문을 제출하고 또 다른 학생들은 강의와 관련된 5-10편의 논문을 읽고 말하기 시험을 보기도 한다. 이밖에도 강의에 따라 발표, 에세이, 지필 고사를 평가 방식으로 제공한다. 학생들은 각자 자신에게 유리한 평가 방식을 선택한다. 예컨대, 필자의 경우 언어의 한계로 인해 즉흥적으로 독일어로 의견을 표현해야 하는 말하기 시험을 선호하지 않는다. 머릿속에 있는 지식과 생각을 외국어로 표현한다는 것은 이중적인 부담이기 때문이다.
외국인 학생이 교수자가 요구하는 지식이나 이해 수준에 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말하기 평가 방식에서 독일어 능력 부족으로 인해 평가에서 떨어지거나 기준에 한참을 못 미치는 점수를 받는다면 이 평가 방식이 그에게 적절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평가가 '독일어 능력'에 대한 평가였으면 필자의 독일어 말하기 능력은 평가 대상이 될 것이다. 하지만 강의에서 이뤄지는 평가는 강의주제에 대한 학생의 이해 및 지식을 대상으로 한다. 독일어 능력은 평가의 수단일 뿐 평가의 대상이 아니다.
그렇다고 평가 수단을 완전히 배제할 순 없는 노릇이다. 수험자의 역량이 평가 수단을 매개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독일어 말하기를 수단으로 자신의 지식이나 이해를 드러내야 하는 말하기 시험은 언어적 한계가 있는 외국인 학생에겐 불리한 방식일 수밖에 없다. 필자가 외국인이어서 말하기 시험의 취약점이 더욱 극적으로 다가오는 것일 수 있다.
평가의 한계는 말하기 시험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모든 시험 방식은 저마다의 맹정을 갖고 있다. 그리고 사람마다 평가 방식에 반응하는 방식도 다르다. 평가 방식이 학생들에게 유/불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은 다양한 연구에서 밝혀졌다. 한 가지 시험 유형만 제공됐을 경우, 그 유형에 익숙하거나 능숙한 학생들이 평가에서 유리한 점수를 받을 수 있다. 역으로 특정 시험 유형에서 유달리 역량을 보이지 못하는 학생도 있다.
예컨대 타인 앞에서 말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학생을 수십 명의 학생 앞에서의 발표만으로 평가한다면 어떨까? 시험을 볼 때마다 암기한 지식이 백지상태가 되는 학생을 아주 세밀한 암기를 요구하는 시험으로 평가한다면 어떨까? 그들은 그렇지 않은 특징을 지닌 학생들보다 불리한 조건으로 평가에 참여하는 것이다. 각각의 시험 방식이 갖는 한계로 인해 학생들의 역량은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한다. 이러한 점에서 평가의 다원화는 각 평가가 지닌 맹점을 최소화하는 교육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독일의 평가의 다원화가 가능한 이유는 교수자들의 평가에 대한 자율성이 보장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몇몇의 대학을 제외하고 많은 학교가 상대평가의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학점을 주는 기준은 같은 강의를 듣는 학생들과의 비교를 통해 결정된다. 예컨대, 필자가 다녔던 한국의 대학은 A 학점은 30%를 넘길 수 없었고, 하위 30% 학생은 C 학점 이하만을 받아야만 했다.
교수자가 A 학점을 더 주고, C 학점을 덜 주고 싶어도 상대평가 체계에선 불가능하다. 교수자들은 대학에서 정한 비율 내에서만 자신의 평가 원칙을 고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교수자에게 시험 성적에 문의를 하면 "다른 학생들에 비해~"라는 말이 뒤따르는 경우가 많다. 교수자의 기준에 나의 역량이 충족됐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학생들과 비교해 성적을 산출해야만 하는 상황을 절실히 보여준다.
이와 달리 독일의 대학에서 학생들의 학점 기준은 교수자 본인이 정한다. 수험자 간의 순위가 아니라 교수자가 정한 평가 기준 충족 정도에 따라 학생들의 학점이 결정된다. 학점에 따른 비율도 정해져 있지 않다. 모든 학생이 교수자가 보기에 A 학점(한국과 독일의 학점 체계가 다르다. 편의를 위해 이 글에선 A, B, C 등급 체계를 사용한다)이라면 모두 A 학점을 받을 수 있다. 반면에 모든 학생들이 교수자가 설정한 기준에 미치지 못 한다면, 모두가 불합격을 할 수도 있다. 독일에선 각 평가 방식에 따라 교수자의 평가 기준이 있고 수험자 간의 비교를 통해 성적이 산출되지 않기 때문에 평가의 다원화가 공정성 시비에 휘둘릴 일은 없다.
하지만 교수자의 자율성이 학생의 자율성으로 반드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교수가 자율적으로 평가를 다양하게 평가할 수도 있지만, 한 가지 방법만을 고수할 수 있다. 필자가 다니는 독일 대학에도 표준화된 방식으로 학생들을 평가하는 교수자들이 많다. 독일 교육에 대해 이야기하면 "강의는 자신의 의견을 글이나 말로 표현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암기 위주의 평가 방식을 지양할 것 같다'라는 말을 많이 듣는데, 이는 독일 대학 교육의 모든 부분을 설명하지 못한다.
독일 대학 역시 학생들은 말할 기회가 없는 강의와 암기된 지식만을 평가하는 강의가 많다. 필자는 1년간 총 10번의 평가를 받았는데, 그중 4번이 우리나라에서 소위 '객관식 시험'이라 불리는 방식으로 시험이 이뤄졌다. 다른 평가 방법을 요청해도 교수자는 자신의 상황적 이유를 들며 평가 방식을 고수했다.
교수자의 입장에선 평가의 다원화는 많은 힘과 시간을 쏟는 과정이다. 평가 방식에 따라 서로 다른 평가 기준이 필요하고 서로 다른 학습자의 요구에 반응해야 하기 때문에 비효율적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표준화 시험은 시험 문제만 출제하면 그 후의 과정은 손쉽게 이뤄진다. 학생들의 답을 체점하고 정답의 수에 따라 성적을 부여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수자는 평가의 논란을 줄이기 위해 선지를 최대한 주어진 학습 자료의 언어로만 서술한다.
이러한 표준화 시험에선 정답과 오답이 확실히 정해져 있기 때문에 학생들이 결과에 의문을 제기할 확률도 적어진다. 이러한 시험 방식은 학습자의 학습 방법에도 영향을 준다. 시험 범위가 아닌 학습 내용은 소홀히 하고, 학습 내용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멈춘다. 만약 그 내용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면 많은 정보들을 암기할 시간을 빼앗겨 버린다. 그리고 암기해야 할 정보에 비판적 사고가 개입되면서 정확한 암기를 방해하기도 한다. 필자 역시 독일 대학에서의 표준화 시험을 준비하며 동기들에게 "비판적으로 사고하지 마. 너무 깊이 들어가지 말자. 그냥 암기하면 된다"라는 류의 말을 자주 했다.
평가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따라 평가 방식의 다원화에 대한 입장은 다를 것이다. 평가를 선별과 순위 매기기의 일부로 바라보는 입장에선 평가 방식의 다원화는 공정하지 않고 비합리적이다. 그들에겐 이는 수영 선수와 육상 선수의 기록 경쟁과도 비슷해 보일 것이다.
반면에 평가를 학습의 일부로 바라보는 사람은 평가의 목적을 단순히 선별로 바라보지 않는다. 평가 역시 학습의 일부로서 학생들이 학습한다는 사실 자체에 주목한다. 학생들의 학습을 진단하는 것을 넘어 그것을 통해 또 다른 학습을 가능케 한다는 것이 평가의 주기능이 되는 것이다. 평가 방식의 다원화를 통해 학생들이 학습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커진다면, 평가의 다원화는 환영할 수밖에 없는 교육 실천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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