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mm 금융톡]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반대하는 의사들..왜
[아시아경제 이창환 기자] 10년 이상 이어지고 있는 실손의료보험(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갈등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국회에서는 국민 편의를 고려해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입법을 추진 중에 있지만 의사들의 반발이 너무 거세 실제 법안 통과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대한의사협회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관련 보험업법 개정을 막기 위해 '실손보험 청구간소화 대응 태스크포스(TF)'를 지난달 하순 구성했다. 최근 국회 원구성 협상이 타결되고 실손보험 청구간소화 입법을 추진하는 움직임이 보이자 의협은 TF를 구성해 관련 입법 저지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실손보험은 청구절차가 비효율적이고 복잡하다는 논란이 있어 국회에서는 이를 개선하려 하고 있다. 환자들이 보험사에 실손보험금을 청구하기 위해서는 치료 받은 병원에 들러서 영수증과 진료비 내역서, 의사 소견서 등 각종 서류를 일일이 종이로 발급받아 보험사에 팩스나 모바일로 보내거나 직접 방문해야 한다. 과정이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려 소규모의 의료비는 아예 보험금 청구를 포기하는 사람들도 많다.
금융소비자연맹과 녹색소비자연대 등 몇몇 소비자단체가 지난해 실손보험 가입자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최근 2년 이내에 실손의료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었음에도 청구를 포기한 경험이 전체 응답의 47.2%에 달했다. 이들은 진료금액이 적어서(51.3%), 진료 당일 보험사에 제출할 서류를 미처 챙기지 못했는데 다시 병원을 방문할 시간이 없어서(46.6%) 등을 실손보험 청구 포기 사유로 들었다. 현재의 실손보험 청구 절차가 편리하다고 응답한 경우는 36.3%에 불과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2009년에 이미 실손보험 청구 절차가 복잡하다며 이를 간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한 바 있다. 국회에서는 전산 시스템을 갖춘 병원이 환자의 요청을 받으면 관련 서류를 온라인으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나 다른 기관을 통해 보험사로 전달해 환자의 번거로움을 덜어주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입법을 추진 중이다. 다만 의료계의 반대가 심해 14년째 논의가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21대 국회에서도 관련 보험업법 개정안이 총 6건이 발의됐지만 의협을 포함한 보건의약 단체에서 강력히 반대해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계류된 상태다.
의협은 다양한 이유로 실손보험 청구절차 간소화를 반대한다. 일단 실손보험은 민간보험사와 환자들 간의 사적계약인데 왜 병원이 중간에서 환자를 대신해 서류를 보험사에 전달해줘야 하냐는 것이다. 병원은 이를 위해 돈을 들여 전산시스템을 갖춰야 하고 인력도 충원해야 할 수 있는데 비용부담에 대한 우려도 있다. 영세한 병원의 경우 이런 시스템을 갖추기가 쉽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병원진료 기록과 같은 민감한 개인정보의 유출도 우려한다. 환자진료정보가 보험회사로 유출돼 추후 해당 환자에게 보험 상품을 판매할 때 골라서 가입시키는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정근 의협 상근부회장은 "보건의약 5개 단체가 한 목소리로 반대한다는 것은 그만큼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보험사만의 이익을 위해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의사들의 이같은 반대가 국민 편익보다는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한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국소비자단체연합은 의료계 반대의 이면에는 전산화가 되었을 경우 아무도 모르는 비급여정보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도 알게 되고 보험사가 데이터를 축적해서 부당청구나 과잉청구 등의 병원 치료비용 정보가 노출될 것으로 우려해 전산화 자체를 원천 반대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금융소비자연맹 관계자는 "의협에서는 실손보험 청구간소화가 보험사의 배를 불리기 위한 꼼수라고 주장하며 보험업법 개정을 결사 반대하고 있다"며 "하지만 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의 본질은 환자에게 종이문서로 제공하던 증빙자료를 환자의 요청에 따라 전자문서로 제공해 소비자의 편익을 증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창환 기자 goldfis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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