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사랑이 뭐길래

2022. 8. 3.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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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여정 문화평론가


‘러브 버그’. 그 이름 한번 요상하여라. 파리 같이 생긴 곤충 두 마리가 궁둥이를 붙이고 짝으로 출몰한다 하여 ‘러브 버그’란다. 사실 이 로맨틱한 이름 뒤에 숨겨진 이들의 정식 명칭은 털파리다. 미국에 사는 이놈들이 갑자기 우리나라에서 발견돼 한동안 시끌했다. 특히 서울 은평구에 떼로 출몰해서 집집마다 곤욕을 겪는다는 뉴스에도 그저 강 건너 불구경하듯 했다. 바로 지근거리인 서대문구에 살면서도 말이다. 아파트 관리실에서 ‘절대’ 창문을 열지 말라고, 방충망도 소용없다는 방송을 내보내도 그저 그런가보다 했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 일에 사람은 이리도 무신경하다.

그런데 드디어 ‘러브 버그’를 봤다. 여름 분위기를 내볼 요량으로 눈부시게 흰 린넨 커튼을 거실 창에 달아두고 흡족해하던 밤이었다. 그런데 그 희디흰 커튼 위에 머리가 아래위로 향한 ‘러브 버그’의 검은 실루엣이 유난히도 두드러져 눈에 들어오는 게 아닌가. 살면서 바퀴벌레 한 번 본 적도 없는데, 바퀴벌레란 그저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에서 미래 식량을 대용하는 프로틴바의 양갱 같은 갈색 덩어리로만 생각했는데, 실물로 러브 버그를 보다니. 가만히 두면 놀라운 번식력으로 집안을 까맣게 뒤덮을지도 모른다는 아나운서의 멘트가 귀에 울리기 시작했다.

흰 커튼을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었지만 그사이 러브 버그는 자취를 감추었다. 어디로 갔지. 그때 다시 머리 위 흰 천장에 검은 실루엣이 드리운다. 손에 집히는 대로 대충 커다란 종이를 잡아서 때려잡는 그 순간, 아아, 나는 보고야 말았다. 그 위대한, 그토록 추앙받는 러브의 실체를. 그렇게 궁둥이를 붙이고 어디든 함께하자 약속한 놈들이 내려치는 박스 밑에서 허겁지겁 몸을 떼 내는 것을. 각자 자기 살길을 찾아 냅다 내빼는 것을.

마치 내 연인이 다른 사람과 키스하는 것을 본 것 같은 배신감과 씁쓸함으로 가득했던 그 밤 뒤에, 지자체들의 강력한 살충제 포화 속에서 러브 버그, 아니 털파리는 자취를 감추었다. 달콤한 사랑의 약속은커녕 배신의 아이콘처럼 그 위상은 떨어져 버렸지만 털파리는 환경에 이로운 분해자다. 털파리 유충은 낙엽이나 죽은 나무를 분해해서 토양에 영양분을 전달하고 그래서 땅은 비옥해진다. 도심의 열섬 현상과 광공해에 이끌려 서울에 나타난 털파리들은 인간에게 러브 버그라 불리며 퇴치해야 할 해충처럼 오해만 쌓았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랑은 두 존재가 하나로 되면서도 둘로 남아 있다는 역설이 성립한다.” 한 몸처럼 붙어 다니는 털파리에게 ‘러브’라는 단어를 경솔하게 붙인 건 인간의 마음이다. 분리 상태를 극복해서 고독이라는 감옥을 떠나고 싶은 건 인간의 가장 절실한 욕구다. 그래서 내 고독의 감옥에서 꺼내줄 누군가를 찾아다니다가 그 반쪽을 찾으면 사랑이라 이름 붙인다. 원래 남자와 여자는 한 몸이었는데, 벼락이 내려쳐 분리가 돼 헤어진 반쪽을 평생 찾아다니는 게 ‘사랑의 기원(Origin of Love)’이라지 않나.

플라톤의 ‘향연’에 보면 태곳적 인간에겐 세 가지 성이 있었다. 남성과 여성, 그리고 이 둘 모두를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성. 이 세 번째 존재는 네 개의 손, 네 개의 발을 가졌고 둥근 목 위에 똑같이 생긴 얼굴이 반대 방향으로 붙어 있었다. 마치 러브 버그처럼. 완벽한 자웅동체였던 인간의 힘을 위협으로 느낀 신들이 우리를 반으로 갈라 버렸다. 그러니 서로의 반쪽을 찾아 갈망하고 사랑을 욕구하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사랑은 인간으로 하여금 고립감과 분리감을 극복하게 하면서도 각자의 특성을 허용하고 자신의 통합성을 유지시킨다고 프롬은 역시 말했다. 사랑을 통한 완전한 자유를 획득하는 것. 그러니 ‘죽을 때까지 언제나 함께해요’라는 사랑의 맹세는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가. 널브러져 죽은 러브 버그 사체가 온몸으로 나에게 말을 건다. 왓 이즈 러브(WHAT IS LOVE)?

최여정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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