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들의 저항, 어른거리는 민주화운동의 불행한 유산 [민경우의 운동권 이야기]

데스크 2022. 8. 3.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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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와 같은 근본적인 정치적 신념의 문제
정권의 경찰과 국민의 경찰의 대립 문제
경찰, 마음만 먹으면 정권 위협할만한 잠재적 세력
시민적, 국민적 통제는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판타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내 경찰국 입구에서 첫 업무일을 맞은 직원들 격려를 마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경찰국을 둘러싼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갈등은 여러 갈래에서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필자는 주로 사상적 배경을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전국 경찰서장 회의를 주도한 류삼영 총경은 7.26 ‘행안부 경찰국 신설안’이 국무회의 통과한 것에 대한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정권의 경찰 장악과 그로 인한 피해는 역사가 기록할 것이고 멀지 않은 시기에 바로 잡힐 것으로 예상합니다.”

“우리 경찰은 언제나 국민만을 바라보는 국민의 경찰의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다른 지면에서 그는 “지금 경찰의 정치적 중립은 70~80년대 민주투사들의 목숨으로 바꾼 아주 소중한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


요약하면 류삼영 총경은 첫째, 자신들의 행동이 단순한 권한과 이권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화와 같은 근본적인 정치적 신념의 문제이고 둘째, 상황을 정권의 경찰과 국민의 경찰과 같은 기본적인 대립의 문제로 정리하고 있다.


아래서는 각각에 대해 말해 보겠다.


류삼영 총경은 경찰대 84학번이다. 졸업 이후 줄곧 경찰에 근무했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민주화운동에 관여했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80년대 민주화운동은 매우 폭넓은 대중적 지지를 받고 있었다. 따라서 류삼영 총경을 포함해 비슷한 시기에 학교를 다닌 경찰대 출신들은 경찰대나 경찰조직과 별도로 동문회나 향우회 등에서 민주화 세례를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2019년 조국 사태에서 나타난 매우 특이한 현상은 성장과정에서 민주화운동의 본류에서 다소 벗어난 집단일수록 민주화운동에 대한 열정이 뒤늦게 더 극적인 형태로 분출되는 점이다. 변호사, 교수, 학원 강사 등이 그런 사람들인데 이들 중 민주화운동의 과정에서는 다소 관망적인 위치에 있다가 변호사, 교수와 같은 안정적인 위치에 선 이후 과격해지는 사례를 쉽게 볼 수 있다.


류삼영 총경을 비롯해 경찰국 설치 반대해 각종 1인 시위, 피켓시위 등에 참가한 경찰들도 본인들의 행동을 민주화운동과 연관 지어 설명하곤 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민주화운동의 외피를 썼다기보다는 애초부터 어느 정도 민주화운동의 사상적 세례를 받은 것처럼 보인다.


상식적으로 보면 경찰들의 집단행동의 본원적 동기는 이권 문제일 것이다. 경찰대 또한 엘리트 집단으로 볼 수 있는데 그동안 검찰의 통제 아래서 본인들의 욕구가 억제되어 왔다. 검수완박 국면에서 경찰에게 권한이 집중되어 경찰 상층 출신에게는 새로운 기회로 작동했을 것이고 이 기회를 경찰대 출신들이 민감하게 포착했다고 볼 수 있다. 윤석열 정부의 경찰국 신설이 경찰대 출신들의 기회 요인과 충돌하면서 전국 집회로까지 발전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여러 요인들이 맞물리면서 경찰대 또는 경찰의 욕구가 분출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문제는 그러한 요구를 민주화운동의 상징성에 기대어 설명하는 것이다.


경찰국 신설을 둘러 싼 논쟁의 또 다른 핵심은 이른바 시민, 국민 통제의 발상이다. 경찰국 신설에 대한 대안으로 경찰위원회를 주장하고 그것의 사상적 근원을 정권 통제와 대비되는 시민. 국민 통제로 보는 경우이다.


경찰은 14만이 넘는 규모에 무장을 갖춘 조직이다. 더구나 전국 곳곳의 일선 현장에 조밀하게 연결되어 있어 마음만 먹으면 정권을 위협할만한 잠재적 세력이다.


사실 정권의 근원은 무력이다. 따라서 유사 이래 모든 권력은 무력을 하나로 통일한다. 만약 어떤 조직이 무력을 단일화 하지 못하면 그것은 통일을 이루지 못한 것이고 단일 중앙 권력의 힘이 미치지 않는 또 다른 권력이 어딘가에 있다면 이는 내전 상태라고 볼 수 있다.


경찰은 군대에 준하는 조직이다. 따라서 어떤 권력이 경찰의 통제권을 쥐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조치이다. 선거로 당선된 정부는 권력의 정통성을 궁극적으로 보장받기 위해 군 통수권이나 경찰 무장력에 대한 통제 장치를 갖는다. 만약 이것을 갖지 못하면 민선 정부라고 하더라도 언제든지 위협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찰에 대한 통제권을 어떤 형태로든 민선 정부에 귀속시키는 조치가 필요하다.


류삼영 총경을 비롯해 이번 경찰국 반대 시위를 주도했던 사람들은 경찰국의 대안으로 경찰위원회를 주장하고 그의 배경을 시민, 국민통제라고 주장한다.


80년대 운동권은 반독재 투쟁을 하는 과정에서 공안기관, 안기부, 경찰, 검찰 등의 개혁 방향으로 시민적, 국민적 통제를 주장해 왔다. 시민적 통제든 국민적 통제든 14만이 넘는 거대 집단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뒷받침하는 물적, 행정적, 인적 시스템이 보장되어야 하고 조직적 계통과 질서가 서야 한다. 반면 시민적, 국민적 통제는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판타지에 가까운 안이다.


이번 경찰국 설치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판타지에 가까운 안을 제기하면서 결국은 경찰국을 반대하여 결국에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보장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권력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것이 민주화일 수도 있지만 군벌화, 봉건귀족화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민주화운동은 독재와 싸우는 과정에서 부정적인 사상을 발전시켜 왔다. 국가의 근본이 되는 사상과 신념, 국가기구를 무력화시킨 점이다. 경찰도 그러하다. 나라와 정권이 있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군대와 경찰이 있는 것이지 불의한 정권이 있고 그것과 전혀 무관한 공간에서 시민들의 자치로 이뤄지는 또 다른 무엇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국민 여론에 주목해야 한다. 보도에 따르면 경찰국 신설에 대한 찬성이 29.9%, 반대가 59.4%로 나타났다. 이는 경찰뿐만 아니라 국민여론도 민주화 시대의 사상적 세례를 강하게 받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시민, 국민, 촛불 만능의 시대를 살고 있다.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성장한 이들 개념은 불행하게도 올바른 질서와 제도, 권력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대치되는 특별한 세계가 있는 것처럼 생각해왔다. 그리고 마침내 공권력의 보루인 경찰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는 향후 정국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상하고 있다. 여기서 불의한 권력에 저항하는 시민 경찰과 같은 생각들이 작동하기 시작하면 상황은 매우 복잡한 국면으로 빠져 들 수 있다.


민주화 시대의 공과를 냉정히 보고 민주화 시대의 낡은 유산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 본 글의 결론이다.


글/민경우 시민단체 대안연대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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