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이 지나자 비로소 봉화가 눈에 들어옵니다
경북 봉화군 춘양면, 이름은 낯설지만 이곳엔 보물 같이 아름답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답니다. 그 이야기들을 풀어보고 싶습니다. <기자말>
[김은아 기자]
2년 전 필자는 경북 봉화라는 곳에 자리를 틀었다. 직장 때문이다. 봉화에 간다고 하니 다들 김해 봉하마을을 이야기했다. 그만큼 봉화라는 곳이 알려지지 않았던 탓이다. 필자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수목원인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이 경상북도 봉화군에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그러한 봉화를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다는 나 자신에게 더더욱 놀랐다. 도시와 공간, 인간의 삶에 관한 연구를 해왔던 필자로서는 그래도 나름 도시에 대해 안다고 생각했던 탓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수목원의 규모는 5179ha로 면적은 아시아 최대이자 세계에서 두 번째라고 하지만 임야를 포함한 면적이라 그러한 것일 뿐이었다. 실제 전시원 면적은 206ha로 그것도 산림구역을 제외하면 전체 면적의 약 1/60을 차지하는 약 30만 평 규모의 작은 수목원이었기 때문이다. 수목원도 향후 전시원 면적의 60배에 달하는 산림구역을 어떻게 관리하고 국민에게 선보일지 계획이 있으리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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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암석원 일원 수목원 암석원에서 내려다보는 춘양면 언저리 |
ⓒ 김은아 |
큰 수목원이 있고 산림생물 종자를 영구보존하는 '글로벌 시드볼트'가 있는 곳이어도 봉화는 필자에게도 많은 사람에게도 낯선 곳이었나 보다. 봉화군 춘양면에 2년여 이상을 거주하면서 춘양면의 모습이 하나둘씩 비로소 눈에 담겨진다.
인구 4000명 규모의 면인데 시장의 규모는 매우 크다. 억지춘양시장이라고 불리우는 곳으로 4일과 9일 이렇게 5일장이 열리지만 시장 안에 상시적으로 영업을 하는 상인들이 있어 장을 볼 수가 있다. 현대식 비가림 시설과 넓은 공간은 시골이라고 보기엔 잘 정비가 돼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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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벼락 부대밭 담벼락 일렬 부대밭 |
ⓒ 김은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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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렬부대밭 교정사가 했을법한 나란히 나란히 비료부대밭 |
ⓒ 김은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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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무대야 고추밭 고무대야 고추밭(왼쪽), 스티로폼 고구마밭. 얕은 흙 속에서 고구마가 자랄 수 있을까(오른쪽) |
ⓒ 김은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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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추나무 한대 대파 여럿. 알뜰하게 고추나무 주변에 대파를 심었다./더부살이 대파. 고추심고 남은 자리에 대파들이 고추를 에워싼다. 겨울을 위해(오른쪽) |
ⓒ 김은아 |
알뜰하게도 비료 부대 땅을 쓴다. 옆에는 큰 비료부대 8부까지 흙을 채워 세 부대에 고구마를 심었다. 부대 사이에는 돌을 넣어 줄기가 얽히지 않게 공간도 띄어주었다. 고랑을 타 고구마를 심듯한 것인가 싶기도 하다. 이 고구마는 열매를 수확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파고들 땅이 있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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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짜 고구마 부대밭 고구마가 달릴 것만 같다. |
ⓒ 김은아 |
땅이 없으면 땅을 만드는 인간의 발칙한(?) 도전도, 그 한 뼘 땅에서 보란 듯이 열매를 맺어내는 씨앗들도 존경스럽기 그지없다. 그러한 도전에 장단을 맞추듯 여유만만하게 씨앗들은 줄기를 뻗고 열매를 주렁주렁 열어준다.
땅은 거짓말하지 않는다더니만 거기서 한술 더 떠 땅은, 흙은 우리를 결코 실망시키지 않았다. 밭에 심어졌다면 동기들과 이야기도 하고 뿌리도 엉켜가며 서로 위안도 했으랴만 홀로 부대에 심어진 작물들은 그저 바람과 대화하며 서로의 영글어 갔을지도 모르겠다.
'메타인지'가 이슈가 되고 있다. 완전하지 않은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하라는 것인데 이 '홀로 부대'들은 홀로 남겨진 자신에게 난 밭에 있지 않아서 안 돼라고 했을까? 나의 좁디좁은 편견이 깨지고 겸허해진다. 불가능이 있으랴. 길이 없으면 길을 내면 되고, 땅이 없으면 흙을 담아 나의 땅을 만들면 된다.
그것이 비료 부대면 어떠하고, 쓰다 버린 솥이면 어찌할 것이며, 바닥이 깨져 물이 줄줄 새는 깨진 빨간 고무대야면 어떠하겠는가. 그곳에서 물과 양분을 빨아들이며 굳세게 성장해가는 저 푸른 작물들이 있지 않은가.
영국의 한 TV 프로그램인 <브리튼스 갓 탤런트>에서 우승한 폴 포츠는 휴대폰 가게에서 일하며 성악가의 꿈을 잊지 않고 도전해왔다. 수잔 보일 역시 마찬가지다. 처음 이 프로그램에 출연해 수잔 보일은 두터운 몸매와 뽀글이 파마머리를 하고 'I dreamed a dream'을 불렀다.
도저히 어울릴법하지 않은 아우라가 그녀의 내면에서 흘러나왔다. 폴 포츠도 수잔 보일도 정규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목소리에는 분명 울림을 넘어선 깊은 감동과 여운, 그리고 꿈이 있었다. 그렇다.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면 된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이 그러하듯.
남루한 비료 부대를 가득 메운 흙 속에서 필자의 꿈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춘양에서 그러한 꿈을 펼쳐보아야겠다는 생각에 잠시 마음이 뜨거워진다. 춘양은 봄 춘, 볕 양으로 봄볕과 같이 따뜻하다고 해서 지어진 지명이라고 한다. 한때는 인구가 5만 명이나 되는 북적거리는 도시 춘양면, 전국 최대의 춘양목 집산지이자 목상들이 몰려들었던 화려한 도시였던 이곳이 지금은 기억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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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질녘 춘양 뜰에서 해질녘 춘양에서 바라본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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