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아빠는 교도소에 산다..'감옥합숙' 택한 장경진씨 사연

여성국, 이영근 2022. 8. 2.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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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징벌인가 공정인가 - 대체복무 심층리포트

「 2018년 6월 헌법재판소 결정과 그해 11월 대법원 판결로 종교적 신념 등을 이유로 집총을 거부하는 ‘양심적 병역거부’가 법적으로 허용됐다. 대체복무제 시행 이전까지는 한해 평균 600명이 집총 대신 감옥행을 선택했다. 이듬해 12월 국회는 대체역법을 만들고 2020년 10월 첫 대체복무자 64명이 36개월 교도소 합숙 복무를 시작했다. 첫 입소자들이 반환점을 돈 현재(6월말 기준), 887명이 대체복무를 하고 있다. 복무 중인 현역·보충역 약 41만3000명 대비 0.2%가 대체복무자인 셈이다. 중앙일보는 징벌적이라는 비판과 현역 입소자와의 공정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 사이에서 여전히 논란이 일고 있는 대체복무제도의 현실을 들여다 봤다.

〈목차〉
1화 "아빠는 교도소에서 산다"
2화 머나먼 길 - 대체복무자 심사에서 입소까지
3화 러시아 위협에 놓인 핀란드의 대체복무제는?
4화 핀란드 보수·진보가 바라보는 대체복무제
5화 대체복무제 이대로 좋은가


“상근예비역 대상·4급 판정자도 똑같이 복무”


의정부 교도소에서 대체복무중인 한의사 장경진씨가 지난 6월 외출을 나와 서울 성북구 자택에서 막내딸과 놀아주고 있다. 강정현 기자
첫 대체복무 입소자인 장경진(34)씨는 세 아이의 아빠다. 초등학교 2학년인 둘째와 어린이집에 다니는 셋째는 한의사인 아빠가 3년 동안 병역 의무 이행을 위해 감옥에서 사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 코로나 때문에 입소 6개월 뒤 첫 휴가를 나간 장씨는 “어린 셋째가 아빠를 잘 못 알아보더라. 지금은 집 근처 교도소로 배치받아 이렇게 외출·외박을 나와 잠시라도 가족과 함께 있을 수 있어 훨씬 나아졌다”고 했다.

장씨는 집총 훈련 3주만 받으면 다른 대학 동기들처럼 공중보건의로 병역을 마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종교적 신념(여호와의증인)에 따라 집총 거부를 선택했다. 2014년 시작한 병역법 위반 재판은 7년 뒤 무죄 판결을 받고 끝이 났다. 대전교도소에서 1년 6개월을 복무한 그는 법무부 교정본부의 기혼자 대원 배려를 통해 가족들이 거주하는 서울 성북구와 가까운 의정부 교도소로 복무지를 옮겼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장씨는 “현역병에게는 자녀 있는 기혼 복무자가 집에서 출·퇴근할 수 있는 상근 예비역 제도가 있다. 비슷한 조건에서 대체 복무를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대체역법에는 없는 제도였다”면서 “사회복무 요원 대상인 신체등급 4급 판정자들도 일괄적으로 대체복무를 하고 있다. 형평성을 고려해 여러 세부 규정들이 정비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복무 기간 현역과 같아도 대체복무 택하지 않을 정도”


대체복무중인 장경진씨는 "복무 기간이 육군과 비슷해도 입영 대기자들이 쉽게 선택해 올 것 같지 않다"고 했다. 강정현 기자
대체역의 편입 및 복무 등에 관한 법률(이하 대체역법) 시행령에 따르면 이들이 복무할 수 있는 곳은 교도소, 구치소, 교도소·구치소의 지소 뿐이다. 법무부는 이들을 수용하기 위한 합숙시설 마련을 위한 예산으로 약 393억원을 집행(2020년 170억원, 2021년 223억원)했고 올해는 178억원을 편성했다.

대체 업무는 급식, 물품, 보건위생, 교정·교화, 시설관리에 관한 업무보조와 그밖에 대체복무기관 소관 행정기관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업무로 한정된다. 그간 급식, 행정, 영치품 업무를 거친 뒤 세탁 업무를 맡은 장씨는 “과거 병역 거부 수형자들이 하던 업무를 그대로 이어서 하고 있다. 수감 생활을 했으니 수감됐던 곳에서 하던 일을 계속하라는 느낌”이라고 했다.

그는 “구매 업무의 경우 택배 상·하차 일과 비슷하다. 복무관리관도 힘든 걸 알아서 이후에는 상대적으로 쉬운 업무를 배정한다. 세탁 업무는 수형자 오물이 묻어있다. 수형자들을 최대한 피하지만 어쩔 수 없이 마주치는 경우 욕설을 듣는 등 곤란한 일이 생기기도 한다”고 말했다.

지난 6월 충남 천안교도소에서 근무중인 대체복무요원들이 생활관으로 들어가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중앙일보는 장씨 이외 3명의 대체복무자와 이들의 복무관리팀장을 천안교도소에서 만났다. 또 개인적 신념에 의한 대체복무자 4명 중 1명, 법무부 교정본부 대체복무팀을 서면과 전화로 인터뷰했다. 대체복무제 관계자들을 통해 현행 제도의 실태와 운영에 관한 생각을 들어봤다.


“기간·형태 징벌적” 헌법소원 45건


“얼마 전 아내가 수박이 먹고 싶은데 돈이 없어 한 달을 참고 있다더라. 입소 전 출산을 해 24개월 아이가 있어 아내는 육아에 전념한다. 수입은 55만원 월급(육군 일병 동일)이 전부다. 입대 전 타일공으로 8년을 일하며 모은 돈으로 가족 생계를 이어간다. 가족들은 천안교도소 근처로 이사했다. 외출·외박 때 조금이라도 더 보기 위해서다. 남은 복무 기간을 버티는 게 경제적으로 힘들다. 현역병은 출·퇴근하며 복무하는 상근예비역 제도가 있는데 대체복무제는 없다. 현역과 사회복무 요원 규정 중 불리한 규정만 모은 제도 같다.”
천안교도소에서 복무하고 있는 박지훈(31)씨의 얘기다.
천안교도소 대체복무 생활관 도서실에서 인터뷰 중인 대체복무자 3명 (왼쪽부터 박지훈·이호영·장효진씨). 프리랜서 김성태

박씨는 일률적인 36개월 합숙 복무를 규정한 대체역법 18조 1항과 21조 1항이 징벌적 요소가 있고 기본권을 침해했다면서 지난해 5월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대체역법과 관련한 헌법소원은 지난해 1월 첫 접수를 시작으로 47건이 접수됐고, 헌법재판소는 각하 2건을 제외한 45건을 심리 중이다. 위 규정 이외 대체복무 기관과 대체업무를 규정한 시행령 등이 심판 대상이다.


합숙 예산 393억원, 올해 178억원 편성


약대 졸업 후 약사로 일하다 입소한 이호영(30)씨. 그는 주변에서 약제 장교나 전문연구요원 복무를 권했지만, 총을 쥘 수 없어 대체 복무를 택한 경우다. 이씨는 "교도소 이외에 돌봄 노동 등 보건·복지 업무 등을 했다면 코로나 기간 사회에 더 큰 보탬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철저한 심사 이후에는 징벌적 요소가 최소화된 형태로 사회에 도움이 되는 복무를 했으면 한다”고 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인권위 “1.5배 적정”, 현역병 “2배 돼야”


대체복무자 장효진(30)씨의 미래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그는 서울 소재 공대 졸업 후 병역 거부 재판과 이후 상황을 고려해 수학 강사로 활동했다. 장씨는 "신념에 따른 선택이라고 하지만 또래들은 병역을 마친 뒤 직업인으로 살아가는데 나는 3년의 복무 기간과 공백 이후 강사를 이어갈 수 있을지, 전공 관련 다른 직업을 알아봐야 할지 미래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대체복무자의 복무 기관이 교정시설 뿐이라는 것도 논란거리지만 특히 복무기간을 둘러싼 논쟁은 현재진행형이다. 2018년 국가인권위원회는 UN 인권이사회 등 국제 인권기준에 근거해 현역병의 2배에 달하는 이들의 복무 기간은 징벌적이라고 보고 1.5배가 적당한다고 권고한 바 있다.

2018년 11월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서울 국방부 앞에서 '정부의 양심적 병역거부 징벌적 대체복무제안 반대 긴급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뉴시스

당시 인권위 연구용역인
「양심적 병역거부 관련 대체복무제 도입방안 연구용역 결과」

(건국대 산학협력단)에 따르면 병역판정검사 대상자 집단(527명)에서는 합숙 형태일 경우 육군 복무와 같은 기간으로 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응답이 38.8%로 가장 많았다. 출·퇴근 복무일 경우 군 복무의 2배 기간이 돼야 한다는 응답이 28.4%로 가장 높았다.

반면 국방부가 현역병으로 대상으로 한 조사(2018년 9월 실시)에서는 현역병의 59.3%가 2배 이상, 18.2%가 1.5배 복무 기간이 적절하다고 했다. 복무 형태의 경우 44.3%는 합숙을, 14.8%는 출·퇴근을, 35.2%는 병행이 적절하다고 답했다.

천안교도소 생활관을 정리하고 있는 대체복무자들. 이들은 오전 6시 기상해 오후 10시 취침한다. 일과시간은 오전 8시~오후 5시다. 프리랜서 김성태


대체복무자 중에는 여호와의증인 신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정시우(33)씨는 반전사상과 페미니즘을 개인적 신념으로 대체복무를 인정받았다. 동료 대체복무자 대다수가 여호와의증인 신도로 그들의 신앙관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지만 서로 존중하며 지낸다고 한다. 정씨도 대체복무제도의 개선을 바라는 입장이다.

"휴대전화 이용 시간이 오후 6~9시였는데 1시간이 늘어나는 등 처우가 개선되는 부분도 있다. 다만 제도 취지를 고려하면 기간·형태가 징벌적이고, 시민과의 접점을 아예 차단한다.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곳은 교도소 이외에도 많다. 재난 현장, 돌봄 시설 등 손길이 필요한 곳에서 일하며 시민들과 접점이 늘어나면 좋겠다.”


법무부 “장기적으로 복무 분야 다양화 검토 필요”


대체복무제 운영과 관리 책임을 맡은 법무부 교정본부도 고충은 있다. 법무부 교정본부는 “현 복무형태는 사회적 합의를 거쳐 국회에서 결정된 사안”이라면서 “현역병이 아닌 병역거부자를 대상으로 교정 시설 내 한정된 업무 범위에서 새롭게 도입된 제도를 안정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다”고 밝혔다.
대체복무 생활관 복도 모습. 법무부 교정본부는 "교정 시설 내 한정된 업무 범위에서 새롭게 도입된 제도를 안정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다"고 밝혔다. 프리랜서 김성태

법무부는 “제도가 안정적으로 정착된 이후, 다양한 복무 방안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면서 “장기적으로는 소방, 보건·복지 등 복무 분야 다양화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일부 지적이 나온 규정 정비에 대해서는 “자녀가 있는 대원을 위한 정책(상근예비역 제도 등)은 병역법·대체역법 등 관련 법령을 정비해 제도적으로 도입되어야 한다”면서 전향적인 반응을 보였다.

병역판정검사 4급 대원들에 대해 법무부는 “건강 상태를 고려해 대체업무를 지정하고 있으나 다른 대원과의 형평성 등 근본적인 한계가 있어 대원 관리에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현재 병역판정검사 4급 대원은 6월 기준 총 46명으로 복무 인원의 약 5%에 달한다.


제도 점검 시작한 대체역 심사위


이런 가운데 정부는 현행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준비하고 있다. 병무청 산하 대체역 심사위원회는 대체복무 첫 입소자들이 복무 기간의 반환점을 돈 지난 5월, 대체역 제도 발전 방안 연구 용역 사업을 시작해 제도 점검에 나섰다.

이석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국제법) 교수는 “복무 기간과 형태에 징벌적 요소가 있다면 민간대체복무의 성격이 더 반영될 필요가 있다”면서 “국제 인권법 시각에서도 운영 실태 조사를 통한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 인터뷰-황민욱 천안교도소 복무관리팀장

21년차 교정공무원인 황민욱 천안교도소 복무관리팀장. 여성국 기자

21년차 교정공무원으로서 현재 천안교도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황민욱 복무관리팀장. 중앙일보는 황 팀장으로부터 대체복무자들을 관리·감독하는 교정 직원들의 입장을 들었다. 그는 "부족한 교정 인력으로 수형자들 외에 대체복무자 관리까지 맡고 있어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다"면서도 "(대체복무자들을) 병역기피자로 대하지 말고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Q : 복무 환경, 근무 환경은 어떤가.
A : 대원들은 오전 8시~오후 5시, 복무관리관은 오전 7시40분~오후 6시까지 근무한다. 복무관중 한명은 오후 10시까지 대원들 안전을 확인하고 퇴근한다. 대원들은 요즘 세대답게 애로사항과 고충을 자유롭게 얘기한다. 직원들에게 "이들을 병역거부자로 대하지 말고 존중하자"고 당부한다.

Q : 복무자들을 가까이서 지켜보니 어떤가.
A : 사회 눈높이에서 볼 때 우수한 대원들이 많다. 과거 병역 거부자들이 수형자 시절 맡은 업무와 유사한 일을 하고 있다.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일부 공감한다. 교정 시설 이외 다른 기관에서도 복무해 이들이 국가에 기여할 수 있는 제도로 발전하면 좋겠다. 소방, 요양 복지 시설 등 일손이 필요한 곳에서 복무하면 국가 차원에서 더 이익일 것 같다.

Q : 복무 기간·형태가 징벌적이라고 주장하는데.
A : 기간은 국방부, 국회, 각종 자문위원회 등이 고려해 정한 것이라 언급하기 어렵다. 다만 복무 형태는 군인은 야간 경계 등으로 합숙이 필수적인데 이들은 18시 이후 교도소에 있을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합숙을 위한 합숙' 같다. 물론 경제적 이유로 합숙을 원하는 이도 일부 있다. 현역병은 상근예비역 제도가 있고, 사회복무요원은 노령연금 수급 6개월 앞당겨주는 혜택도 있다. 대체복무요원들에게는 모두 적용이 안되는 제도로 개선이 필요하다.

Q : 관리상 어려움이 있다면.
A : 일반 조직처럼 20%는 우수, 60%는 보통, 나머지 열외자 그룹이 있다. 오자마자 정신병 등 질병 호소하는 대원도 있다. 군대는 계급으로 통제하지만 여기선 모두 동등하다. 이런 부담은 다 복무관 몫이다. 교정직은 인력 부족이 심한데 대체복무 관리 인원으로 교도소당 4~5명이 빠져 일선 교정 업무 부담이 가중된다. 이런 면에서 열악한 교정직들의 불만이 나온다.

Q : 대체복무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 36개월 합숙은 제도적 합의인데 복무 자체가 기본권 침해라는 태도를 가진 대원이 있다. 개선 필요성에 일부 공감하지만 매일 대면하는 복무관과 교정 당국 입장에선 당혹스럽기도 하다. 복무 관리는 우리에게도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는 만큼 서로 이해하고 배려했으면 한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여성국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이영근 기자 lee.youngk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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