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 손목 비틀어 통신 요금 내리던 시대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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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정부들은 물가가 급격하게 오를 때 통신 요금 인하에 나섰다.
가구당 생활비에서 통신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보니 통신 요금을 내리는 것만으로 소비자 물가를 0.1%포인트 가까이 내릴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일 거다.
현 정부가 최근 추진 중인 '5G 중간요금제'는 명목상 중간 단계 요금제가 없다는 이유 때문에 신설됐지만 실상은 요금 인하 효과가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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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명진규 기자] 역대 정부들은 물가가 급격하게 오를 때 통신 요금 인하에 나섰다. 가구당 생활비에서 통신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보니 통신 요금을 내리는 것만으로 소비자 물가를 0.1%포인트 가까이 내릴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일 거다.
김대중 정부는 IMF 외환위기 속 급등한 물가를 잡기 위해 2000년 기본료, 가입비, 통화료를 모두 인하했고 2002년 기본료와 통화료를 추가 인하했다. 노무현 정부는 2007년 무선인터넷 요금을 30% 인하했다. 휴대폰으로 사진 한 장 보는데 몇 천원씩 부과되는 무선인터넷 요금은 당시 구조 자체에 큰 문제가 있었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저소득층, 기초수급 대상자의 요금을 할인했고 2010년 초당과금제를 도입했다. 박근혜 정부는 2014년 가입비를 폐지하고 2015년 단말기 보조금을 받지 않는 사람들에게 선택약정 할인을 제공했고,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1월 30% 저렴한 5G·LTE 요금제인 ‘언택트 요금제(선택약정, 멤버십, 결합할인 없음)’로 요금을 인하했다.
현 정부가 최근 추진 중인 ‘5G 중간요금제’는 명목상 중간 단계 요금제가 없다는 이유 때문에 신설됐지만 실상은 요금 인하 효과가 더 크다. 하지만 방법이 문제다. 시장 자율에 맡기겠다더니 국회와 시민단체들은 ‘제공하는 기본 데이터 양이 적다’ ‘이래서야 요금 인하 효과가 있겠느냐’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가파르게 오른 물가를 잡겠다고 범 정부 차원에서 각종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통신사는 돈만 벌겠다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온다. 요금을 수락한 과기부 입장이 머쓱할 정도다.
매번 정부에서 이통 3사 팔을 비틀어 요금 인하를 강제하다 보니 소비자들의 혼란만 커진다. 매출과 영업이익 자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다 보니 요금 자체를 내리는 대신 새 요금제를 내 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한 비용도 커진다. 요금 인하가 아닌 ‘요금 인하 효과’를 설명하기 위해 드는 비용도 크다.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비난을 조금이라도 해소하기 위해서 해온 조치다. 요금제마다 조건도 까다롭고 적용 대상인지도 알기 어렵다.
이렇게 된 것은 정부의 잘못이 크다. 명확한 명분 없이 요금 인하 압박만 넣다 보니 통신 3사는 새 요금제를 설계할 수밖에 없고 매년 대동소이한 요금제들이 양산되는 기형적인 구조를 만들었다. 따라서 정부 차원의 관제 보편요금제를 고집하며 면피용 요금제를 양산할 것이 아니라 알뜰폰 사업자 등을 통해 시장 경쟁을 심화시켜 스스로 요금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정책적 유도가 더 중요하다. 유선인터넷, IPTV, 집전화 등을 결합해 요금을 할인받는 결합 상품 요금제와 혜택을 통해 실제 가계통신비 인하를 촉진시키는 것도 방법 중 하나다.
미국 통신사 버라이즌과 AT&T는 물가 상승률에 맞춰 통신비 인상을 추진하고 있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물가 상승이라는 이유는 같은데 우리는 인하, 해외는 인상에 나섰다. 영국의 경우 보다폰, O2를 비롯한 모든 이통사들이 요금을 올렸다. 티모바일도 네덜란드 등에서 요금을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전기요금과 인건비가 모두 올라 원가 인상분을 감안했다는 것이 공통된 설명이다. 국내 역시 7월부터 전기요금이 4.3% 인상됐다. 당연히 통신 3사의 원가 부담도 높아졌지만 이들에게는 가계 통신비 인상의 주범이라는 오명만 주어지고 있다.
명진규 기자 ae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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