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父 불태워 바이러스 취급한 北" 유엔에 편지 쓴 아들

박현주 2022. 8. 2.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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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22일 북한군에 의해 피살된 고(故) 이대준 씨의 아들이 2일 엘리자베스 살몬 신임 유엔 북한인권보고관에게 보낸 서한 전문. 유족 측 김기윤 변호사 제공.

2020년 9월 22일 북한군에 의해 피살된 고(故) 이대준씨의 아들이 엘리자베스 살몬 신임 유엔 북한인권보고관에게 유족의 심경을 담은 편지를 보냈다. 편지에서 그는 "사람의 목숨을 코로나 바이러스 취급하는 북한의 행태는 분명히 사라져야 한다"며 "아버지의 죽음과 같은 사례가 또 발생하지 않도록 유족의 아픔과 북한 인권 실태를 널리 알려달라"고 당부했다.


"北, 아버지 쏘고 태워…규탄 필요"


이 씨 아들은 2일 오전 살몬 보고관에게 보낸 서한에서 취임을 축하하며 운을 뗀 뒤 "제 아버지께서는 북한군에게 총살을 당하고 시신이 불태워졌다"며 당시 사건 경위를 밝혔다. 이어 "이 편지를 쓰는 이유는 북한의 반인권적 행위가 불러온 한 가정의 불행에 대해 말씀드리고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북한에 대한 강력한 규탄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 "북한은 사람의 생명을 코로나19 바이러스 취급하여 비무장의 민간인을 총살하고 시신까지 불태워 유골조차 가족 품으로 돌려보내지 않았다"며 "(그러나) 당시 문재인 정부는 (아버지에게) 월북자라는 오명까지 씌워 그 죽음을 정당화시키고 제 가족에게 진실된 사과 한 마디 없는 북한을 두둔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는 피살 사건 사흘 뒤인 2020년 9월 25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사과가 담긴 통지문이 도착하자 기조를 180도 바꿨다는 지적을 받는다. 김정은 사과를 기점으로 "북한은 반인륜적 행위에 사과하라"(2020년 9월 24일, NSC 성명)는 메시지는 사라지고 "실종자는 월북했다고 판단된다"(2020년 9월 29일, 해경 중간수사 발표)는 결론만 남았다.
지난 6월 서울 마포구에서 고 이대준 씨의 유족인 아내와 형 이래진 씨가 조승환 해양수산부 장관을 만나는 모습. 뉴스1.


"文, 아무 조치 없이 퇴임…기록 봉인"


이씨 아들은 "안보실, 국방부, 해경을 상대로 정보공개청구를 했지만 거부됐고 소송까지 진행해 승소 판결을 받았지만 문재인 정부는 항소로 대응하며 아버지 죽음에 대한 진실을 은폐하려고 했다"고도 지적했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 청와대와 해경은 지난해 11월 "관련 정보를 유족에게 공개하라"는 법원의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지난 6월 해경은 "월북이라고 단정할 근거가 없다"며 2년 전 수사 결과를 뒤집고 항소도 취하했다. 이와 함께 대통령실과 해경이 보유한 사건 관련 정보가 유족에게 전달됐다.

다만 이씨 아들은 사건 관련 주요 기록이 여전히 대통령기록관에 묶여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그는 "진실 규명을 위해 직접 챙기겠다고 약속하신 문재인 대통령님의 편지 내용을 저는 믿고 기다렸지만 아무 조치도 없이 퇴임하면서 아버지 죽음에 관한 것들이 대통령지정기록물로 봉인돼 15년 동안 확인할 수 없게 돼버렸다"고 말했다.

실제로 현재 해수부 공무원 피살 사건 관련 주요 기록은 대통령기록관에 일반에 열람이 제한되는 '지정 기록물'로 봉인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기록관은 지난 6월 유족에게 "(피살 사건 관련) 기록물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통보했고, 이에 유족 측은 지난달 20일 기록관장을 상대로 행정 소송을 제기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대통령 지정 기록물은 국회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 혹은 관할 고등법원장의 영장이 있어야 볼 수 있는데 현재 문 전 대통령이나 야당의 협조를 받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2020년 9월 22일 북한군에 의해 피살된 고(故) 이대준 씨의 형 이래진 씨와 유족 측 김기윤 변호사가 지난달 2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대통령지정기록물 정보 공개를 위한 행정 소송을 제기하며 입장을 밝히는 모습. 김 변호사는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대통령 기록관의 정보 부존재 통보는 사실상 '공개 거부'나 다름없다"며 "유족이 청구한 정보는 다 지정 기록물로 묶여 있는데, 어떤 정보를 묶어놓은 것인지 해당 정보의 '목록'까지 지정기록물로 봉인해놨기 때문에 아예 검색조차 할 수 없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연합뉴스.


"힘으로 인권 짓밟아선 안 돼"


이씨 아들은 편지를 끝맺으면서 "더 이상 힘없는 생명이 인권을 침해 당하고 사실이 왜곡되며 진실이 은폐되는 상황은 없어야 한다"며 "그 누구도 권력의 힘을 내세워 인권을 짓밟아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 "사람의 목숨을 코로나 바이러스 취급하며 가볍게 여기고 책임지지 않는 북한의 행태는 분명 사라져야 한다"며 "윤석열 정부와 뜻을 같이 해 더 이상은 아버지 죽음과 유사한 사례는 발생하지 않도록 제 가족의 아픔과 북한의 실태를 널리 알려 주시기 바란다"고 했다.

편지를 받아든 살몬 보고관은 페루 출신의 국제법 전문가로 전날인 1일 임기를 시작했다. 이달 중 첫 방한을 추진하고 있다. 그는 임기 개시를 맞아 발표한 성명에서 "북한이 코로나19에 대응해 엄격한 조치를 취하면서 인권 상황이 지난 2년 6개월 간 더욱 악화했다"며 "북한 국민은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한층 더 어려운 상황을 마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코로나19 사태 이후 국경 지역에 사살 명령을 내렸던 북한은 이대준 씨 피살에 대해서도 "코로나19 방역 차원"이라는 이유를 댔다.

2020년 9월 22일 북한군에 의해 피살된 고(故) 이대준 씨의 아들이 2일 엘리자베스 살몬 신임 유엔 북한인권보고관에게 보낸 서한 전문. 영문으로도 발송됐다. 유족 측 김기윤 변호사 제공.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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