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인플레 악재에 흩어지는 유럽..'제2 브렉시트' 발생하나[글로벌포커스]

김현정 2022. 8. 2.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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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 경제지 前 편집장 칼럼서 지적
"유럽 가짜 연대, 푸틴은 안다"
러, 가스공급 축소…EU 결속 흔들어
집행위 가스소비 15% 감축 제안에 헝가리 반대

[아시아경제 김현정 기자] "유럽의 가짜 연대를, 푸틴은 알고 있다".

독일의 경제지 한델스블라트의 편집장을 지냈던 안드레아스 클루스는 최근 블룸버그 통신에 이 같은 제목의 칼럼을 실었다. 그는 "유럽 연합(EU)의 27개국 지도자들은 각국을 하나로 묶는 결속을 찬양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유럽의 적(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알고 있다"면서 "EU의 가장 큰 문제는 위협, 책임과 희생은 공유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코로나19 재확산과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 축소, 초유의 인플레이션등 쏟아지는 악재로 유럽연합(EU) 내 균열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등 주요국에서 대러 제재와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정치적 목소리가 대중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서 혼란은 가중되는 분위기다.

◆러, 가스관 잠근다…위기앞에 선 연대= EU의 결속력을 가장 강하게 시험하고 있는 것은 러시아의 가스 공급 축소라는 거대 악재다. 러시아의 국영 가스회사 가스프롬은 최근 장비 점검을 이유로 내세우며 독일까지 연결되는 파이프라인인 노드스트림1을 통한 가스 공급을 용량의 60%로 제한한 데 이어, 이를 20%까지 낮춘다고 발표했다. 난방 수요가 급증하는 겨울까지 공급 축소가 이어질 경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에너지 무기화를 통해 ‘유럽인들을 떨게 만들 것’이라고 주요 언론들은 우려하고 있다. 파티 비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은 "이번 겨울은 유럽의 연대에 역사적인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유로존 전체가 자발적으로 가스 소비를 15% 줄이고 필요한 경우 의무 감축에까지 나설 것을 제안했지만, 의견을 모으긴 쉽지 않다. CNN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회원국들이 러시아산 천연가스 소비의 15%를 줄이는 감축안에 헝가리는 반대표를 던졌다. 상대적으로 러시아와 우호적 관계였던 헝가리와 빅토르 오르반 총리는 최근 러시아와 7억㎥의 가스 구매 계약 체결을 앞두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명시적으로 반대표를 던지지는 않고 있지만, 폴란드·포르투갈·스페인·그리스 등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가 비교적 낮은 국가들도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고 있다. 동시에 10년여 전 이들 일부 남유럽 국가들이 재정위기에 내몰렸을 때 북유럽 국가들이 연대 요청을 거부했던 기억을 불러오는 분위기다. 합의는 조만간 서면 절차 과정을 거쳐 유럽의회에서 정식 법제화될 전망이나, 안팎의 불만이 예상된다.

클루스 전 편집장은 "앞서 EU는 터키에서 그리스로 100만여명의 난민이 넘어갔을 때도 연대를 보여주지 않았고, 코로나19가 확산된 2020년에는 마스크 등 의료 장비의 공급에 있어서도 국경을 폐쇄하며 연합을 망쳤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 후 유럽인들은 백신을 놓고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며 당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위원장이 "우리는 EU의 해체를 언뜻 봤다"고 했던 발언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모스크바(러시아)와 베이징(중국) 등 강대국들은 이 같은 EU의 약점을 알고 있으며, 이를 이용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EU 의회는 러시아산 원유 선적 선박에 해상보험을 제공하지 않겠다는 지난 5월의 제재안도 예외를 적용하기로 하는 등 한발 물러섰다. EU는 지난 6월4일부터 러시아산 원유 선적 선박이 해상보험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제재를 가했으나, 제3국으로 향하는 경우 로즈네프트 등 러시아 국영 에너지 기업의 원유를 선적할 수 있도록 했다. 영국도 미루던 관련 제재안을 지난달 발표했지만, 자국 출입 선박에만 적용할 뿐 아니라 적용시점도 내년으로 미루는 등 소극적 태도가 담겼다.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급격한 인플레, 분열 조짐에 기름
이탈리아, 드라기 내각 붕괴
금융시장 통제할 리더십 실종

◆고꾸라지는 유럽 경제…실종된 리더십= 급격한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 우려는 이 같은 분열의 조짐에 기름을 붓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지난달 기준금리를 0%에서 0.5%로 깜짝 인상했다. ECB의 기준금리 인상은 2011년 7월 이후 11년 만에 처음이다. 유로화는 2000년 이후 사상 최저치인 달러당 1유로 밑으로 떨어졌다. 유럽의 ‘큰 형님’ 격인 독일의 2분기(4~6월)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전분기 대비 0%로 추정됐다.

지난 6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유로존 전체의 성장률을 2.6%로 전망했지만, 최근엔 상황이 악화되며 연말 마이너스 성장까지 예측되는 상황이다. EU 통계기구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통계가 집계된 11개국 중 7개국의 2분기 경제성장률 예상치(전분기 대비)는 모두 1분기 대비 뒷걸음쳤다. 라트비아(-1.4%), 리투아니아(-0.4%) 등 발트 국가는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유로존 인플레이션은 5월 8.1%에서 6월 8.6%로 통계 집계 이래 최고치를 찍었다. 특히 유럽 경제 강국인 독일과 이탈리아가 각각 에너지 문제와 정치적 위기라는 초유의 난제에 맞닥뜨리면서, 상황은 급속도로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탈리아의 마리오 드라기 내각 붕괴는 재정 안정화 및 개혁의 실패라는 평가를 받으며 유럽 전체 금융시장의 악재로 여겨지는 분위기다. 드라기 총리는 우크라이나 지원과 인플레로 고통받는 가구에 재정지원을 주장해오다 거국 내각의 중심인 오성운동(M5S)을 이끄는 주세페 콘테 전 총리와 줄곧 충돌해 왔다.

새 정부가 구성되기까지 상당기간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통제할 리더십은 현재까지 보이지 않는다. 골드만삭스는 지난해 초 1%포인트 수준이던 이탈리아와 독일 국채 수익률 간 괴리가 연말 2.5%까지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탈리아의 차기 정부는 더욱 ‘민족주의’ 성향을 띨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코노미스트는 지난달 23일과 24일 지중해에서 구조된 이민자 2000여명이 이탈리아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증가하는 이민자 수는 극우파에 이익이 된다"면서 극우성향의 정당 ‘이탈리아의 형제들’이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차분하고 긍정적인 리더십과 재정적인 안정 없이 유럽은 새로운 실존적 실험으로 끌려갈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가스프롬은 러시아 천연가스 의존도가 높은 라트비아에 가스 공급을 끊겠다고 밝히며 도발에 나섰다. 이는 라트비아 측이 러시아산 가스를 루블화 대신 유로화로 구입하고 있다고 밝힌 지 하루 만이다.

김현정 기자 alpha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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