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 교수의 연극이야기]'익명'(匿名)의 가면으로 마녀가 되어가는 사회, 극단 제자백가의 '마녀'

2022. 8. 2.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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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제자백가의 <마녀>(작, 신성우 연출, 이훈경 임한창, 무대 이종승)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익명으로 포장된 마녀를 양산하는 인간과 사회 구조의 이야기로 여배우가 주인공이 되는 이색 연극제인 ‘여주인공 페스티벌’ 참가 작품이다.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하는 사례들을 살펴보자. 유치원 차량 운전사와 교사들의 안전 교육을 확대하자는 취지의 ‘세림이 법’이 발의(發議)된 지 7년이 넘었고 스쿨존 사고로 발의된 ‘민식이 법’은 2020년 3월부터 시행됐다. 그런데도 유치원 통학버스의 안전 불감증과 스쿨존의 잇따른 사고는 제도와 어린이 안전법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가해자를 증오의 대상으로 삼는 무차별적 분노와 여론은 맘카페와 소셜미디어 등 다양한 인터넷 플랫폼 커뮤니티를 통해 일어나고 있다. 때로는 신상 털기로 실체와 진실은 실종되기도 한다. 광란의 여론몰이 재판으로 몰고 가는 댓글 마녀들의 ‘묻지마 폭로’는 한 인간을 파멸로 몰고 가며 사회적 사형선고의 과녁을 향해 댓글의 독침을 멈추지 않는 ‘마녀사냥’의 사회적 반성은 미진하다. 오늘도 한 인터넷 뉴스는 “근거 없는 댓글 음모나 비방자들을 고소했습니다”라는 셀럽들 SNS의 심정들이 뉴스로 배달되기도 한다.

여전히 한국 사회는 일부 커뮤니티의 묻지마 여론과 가짜 뉴스가 재 생산된다. 실체 없는 진실의 논쟁으로 전쟁 중이다. 익명의 댓글은 폭력과 음모가 되고 댓글 살인과 인간 혐오로 둔갑해 건강한 인간의 심장이 도려질 때까지 멈추지 않는 가면 뒤에 숨겨진 ‘익명성’은 진실을 분열(分裂)시키며 인격 살인의 무기가 되고 있다. 인간의 삶은 댓글의 공포와 증오의 핏물로 쌓여가는 묻지마 커뮤니티 댓글 여론의 전쟁터다. 작품은 이러한 사회적 현상을 희곡으로 담아낸다.

폭염에 통학버스에 혼자 갇혀 의식불명으로 구조된 한 어린아이의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으면서도 익명의 가면으로 무차별적 마녀사냥이 자행되고 있는 커뮤니티 마녀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경기 화성시의 한 저수지 인근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40대의 어린이집 원장은 지역 최대 온라인 카페에 올라온 영상의 ‘아동학대’ 의혹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건이었다. 사건의 진실을 둘러싸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마녀들의 진실게임으로 묻지마 마녀들은 음모론을 양산하고 증오의 ‘카더라 통신’의 실체 없는 무차별 폭로는 진실로 둔갑해 사건의 실체는 진실의 미로에서 분해되고 익명의 마녀가 되어 가는 경고의 신호음을 울리는 작품이다. 현실적인 전경을 연극적인 메시지로 풀어냈다.

우리는 익명으로 살아가는 ‘마녀’인가.

연극 <마녀>의 이야기다. 한 지역 커뮤니티 ’맘카페’에서 활동하는 아이디 ‘마녀’(박정림 분)로 인해 지역에서 어린이 통학버스 의식불명 사건은 가해자 사과와 원만한 합의가 있었는데도 맘카페에 올라온 동영상으로 마녀사냥은 재 점화 된다. 사건 후 노래방에서 춤추며 노래하는 인솔 교사 동영상으로 교사는 신상이 털리고 무 개념의 반성 없는 교사로 내몰리고 원장 조카라는 의혹이 더해진다. 맘카페 회원들의 분노와 증오의 대상이 되어버린 인솔 교사는 댓글 마녀들의 사냥감으로 국민 마녀 사냥감이 되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이 사건은 여교사 친구들이 올린 ‘친구의 억울한 사연’이 알려지면서 마녀는 노래방 상황을 조작하고 사건의 실체를 은폐한 댓글 마녀로 지목되면서 상황은 반전을 맞게 된다.

마녀의 친구 연주는 기자(노혜란 분)의 취재 과정에서 층간소음 문제로 인한 비방 댓글을 커뮤니티에 올린 적이 있다는 것과 유치원 운영권을 가로채기 위해 통학버스 사건을 이용했다는 의혹 제기로 마녀는 맘카페의 비난과 공격 대상이 되고 기획취재의 여론은 묻지마식 국민적 증오의 대상이 되면서 마녀의 복수는 기자와 연주를 향하게 된다. 사건의 진실은 분열되고 마녀로, 괴물이 되어 가는 사회를 향한 메시지를 보내고 싶어서 일까. 무대는 인터넷 커뮤니티의 익명성으로 폐쇄된 공간이다. 관객은 개방된 무대 좌측에 설치되어 있는 문으로 입장하고 공연이 시작되면 마치 한 인터넷 커뮤니티 공간으로 입장한 회원이 된 것처럼 외부로 나갈 수 없다. 연극 <마녀>속 인터넷 커뮤니티 공간의 맘카페에서 일어나는 온라인 공간을 바라보게 되는 구조다.

무대 좌측 편으로는 이동식 출입문이 세워져 있고 그 안의 공간으로 응접실처럼 의자 몇 개가 놓여있다. 마치 사이버 인터넷 커뮤니티 공간처럼 보인다. 그 옆으로는 바람으로 원을 그리며 회전하는 창살 모양의 창틀 하나가 조명의 빛과 어둠 사이로 회전하며 매달려 있다. 무대의 중앙과 좌측 편으로 이동하는 대형 출입문은 내·외부를 연결하는 소통의 공간이다. 그런데 이 출입문은 작품이 끝날 때까지 등장인물들의 통로로 연결되지 않고 굳게 닫혀있다. 마치 커뮤니티에서만 살아가는 인간들처럼. 극 중 인물들은 외부와 철저하게 차단되거나 고립된 공간이 되는데 연극은 한 어린아이의 통학버스 사고로 맘카페에서 일어난 과거 마녀 사건들을 당시 커뮤니티의 댓글 진실 논쟁의 상황으로 재현된다.

무대 정면과 좌 우측 무대 벽으로 투사되는 댓글과 캡처된 화면 사이로 연극 <마녀>의 맘카페 사건을 이해하게 될 때쯤, 응접실 또는 한 인터넷 커뮤니티 공간으로 모여 있는 극 중 인물들(마녀의 딸 보람, 상담사, 기자, 마녀의 친구 연주) 은 맘카페 마녀 사건에 대해 스마트폰을 들고 사건에 대한 진실 공방으로 가열된다. 극 중 인물들은 한 공간에 있어도 분열되어 있고 독립되어 각자의 시선으로만 진실을 말하고 이야기할 뿐이다 한 공간에 모여 있어도 이들의 대화는 익명 커뮤니티의 연속이 되고 마녀를 파멸로 몰고 간 진실은 출구 없는 진실로 꼬리를 물면서 마녀는 재 생산된다.

친구 마녀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연주는 기자의 취재에 진실이 검증되지 않은 묻지마 의혹 제기(유치원 경영권, 층간소음 댓글)로 가족과 사회적 파멸로 몰고 간 책임을 회피하고, 노숙인처럼 거리를 떠도는 마녀의 복수는 죽어서도 거리를 배회하는 유령처럼 친구를 향하고, 딸 보람(이유진 분)은 마녀가 되어 버린 엄마가 증오의 대상이 된다. 맘카페 사건 이후 보람이와 마녀를 상담한 상담사(신성미 분)도 노래방 동영상 유치원 교사의 억울한 죽음과 사연이 올라오면서 묻지마 마녀사냥 여론에 마녀가 되는데 기자는 팩트체크 없는 상황 진술만이 편집된 기획 기사로 마녀를 인격 살인하고 국민적 마녀사냥을 부추기는 여론의 주범이 된다. 극중 인물 모두가 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외면하고 증오와 혐오로 둔갑한 댓글만이 진실이 되고 이들은 여전히 세상 밖 출입문을 나갈 수 없는 폐쇄된 커뮤니티 댓글의 인간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연극은 마녀의 파멸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들의 진실 게임을 독립된 공간으로 극 중 인물들의 실체적 진실의 소리를 들으면서도 현실 세계로 나갈 수 없는 악성 커뮤니티의 소리만 생산된다. 여전히 진실이 분열되는 마녀사냥의 사회이다. 댓글의 광기는 혐오와 조롱으로 편집된 댓글로 진실을 외치면서도 이들의 세계는 세상과는 단절된 채 모두가 마녀가 되어가는 세계다. 그래서일까. 극 중 인물들은 마치 온라인 커뮤니티 공간에서의 사람들처럼 이들의 진실은 무대의 대형 출입문을 통해 외부와 소통될 수 없는 폐쇄적인 구조(온라인 사이버 공간)에서만 움직이고 살아가는 듯하다. 이들은 정상적인 문을 통해 활보하거나 타인들과 소통을 거부한다. 이들이 외부로 나갈 수 없는 것은 진실의 가면을 쓴 소리들 만을 믿기 때문이다.

진실을 밝히려는 마녀들의 소리는 현실의 언어로 생산될 수 없는 악성 댓글로 무장한 커뮤니티의 소리가 되는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마녀가 칼을 들고 연주를 향해 살인적인 위협을 가해도 여전히 이들을 마주하고 있는 문은 굳게 닫혀 있다. 극 중 인물들이 출입문을 열고 현실의 세상으로 나갈 수 없는 것은 사회적 진실보다는 커뮤니티에서 마녀들이 생산해 내는 가공된 진실이 현실이라 믿기 때문이다. 마녀는 사이버 커뮤니티를 신봉하고 현실을 비웃으며 각자의 방식으로 진실을 생산해 내는 댓글 마녀가 되어가고 때로는 그들을 우상화 하며 때로는 광기의 마녀로 분노하는 사회로 마녀들의 사냥은 오늘도 재 생산되고 있다. 무대 맘 카페 커뮤니티의 문으로 들어온 것 같은 관객들은 여전히 우리가 모두 마녀가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경고음을 듣고 무대에 굳게 닫힌 문을 열고 싶다는 충동이 생겼다면 이 작품은 성공적이다.

이번 작품에 등장한 여배우(박정림, 정소영, 노혜란, 신성미, 이유진)들도 인물의 사회적인 캐릭터와 연기적인 개성으로 파편적인 옴니버스 장면들을 맘카페의 실제 사건과 연극적인 현실감으로 살려내면서 이 시대의 <마녀>의 의미를 흥미롭게 전달했다. 작품 아쉬운 점은 마지막 장면에서 마녀와 친구 연주의 위협 장면이 모호하게 처리된 점이다. 현실의 통로가 되는 문이 장면으로 녹아들지 못하고 작품 의미의 상징으로만 처리된 것 같아서다. 때로는 설정의 도구도 의미가 투사되었을 때 작품을 생산적으로 읽을 수 있는 기호가 된다. 배우들의 연기의 앙상블들이 좀 더 대사와 감정의 절제가 무대공간의 균형으로 세심하게 스며들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특히 이번 여주인공 페스티벌 <마녀> 공연을 통해 숨겨진 여배우들의 연기적 발견에 흥미로운 공연이었으며 사회적 의미를 무대로 담아내려는 연출이 희곡의 현실적인 의미를 연극적으로 무대화하는데 인물의 캐릭터들과 이들의 진실 게임을 소극장 무대 공간으로 배치해 내는 연출적인 시선도 선명했다. 마녀 친구의 역할을 맡은 정소영 배우는 자기 감각보다 상대 배역의 연기를 충분히 흡수하고 표현하려는 무대의 태도가 극중 인물을 흡수하는 연기로 전달됐다.

이훈경 연출은 이번 작품에 대해 “관객은 열린 문을 통해 들어오는데 온라인 속 마녀들은 진실이 중요하지 않아요. 스스로 만들어 놓은 상황만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 문을 열지 않는 거죠. 어쩌면 우리는 가면 속에 숨어서 소통 없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고, 우리가 모두 고개를 들고 눈을 마주 보고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연극 마녀를 공연하게 된 겁니다. 그 의미를 공연을 통해 아셨다면 연극 마녀는 성공한 작품이죠” 라고 했다. 작업 방식이 믿음이 가는 연출가다.

여배우들을 위한 서사. 이색적인 여주인공 페스티벌

극단 제자백가의 연극 <마녀>는 여배우가 주인공이 되는 이색 연극제인 ‘여주인공 페스티벌’ 참가 작품이다. 희곡들이 다양한 캐릭터의 여주인공들을 소재로 서사화 하고 있다는 점이 기존 연극제들과 차별화를 두면서 전국 극단들이 참여하고 있다. 6개의 극단이 지난 6월 29일부터 8월 7일까지 6주에 걸쳐 대학로 미마지아트센터 물빛극장에서 시작된 ‘여주인공페벌은’ 여배우들을 주인공으로 한다는 점에서 이색적이면서 작품 소재도 다양해 대학로에서 활동하는 여배우들과 연출, 작가와 관객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축제다. 여주인공페스티벌은 극단 행복한 사람들을 이끄는 배우 원종철 대표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원 대표는 “여자들은 할 역할이 별로 없고 여주인공으로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희박하다”는 선후배들의 말을 듣고 “여자배우들이 작품 속에 다양한 주인공과 다양한 캐릭터로 무대에 설 수 있도록 기회의 연극 공간을 만들고자” 여주인공페스티벌을 기획한 소극장 연극축제다. 그의 말처럼 이 이색적인 여주인공페스티벌 반응은 주최 측의 까다로운 선정기준에도 전국에서 37개 단체가 참가 신청을 냈고 기준에 부합하는 단체와 작품을 대상으로 1차 서류 심의와 2차 인터뷰를 거쳐 5개 경연작품과 초청작 1편, 총 6개 작품이 선정되어 올해 제3회 여주인공 페스티벌을 개최하고 있다.

여주인공 페스티벌 첫 작품은 등장인물을 여성으로 각색해 이 시대의 민주주의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알베르 까뮈 <정의의 사람들>(각색, 연출 류성)로 출발했다. 이어 <메이킹 MAKING)(극단 지금여기, 작 류신, 연출 차희), <쵸크> (극단 냇돌 작, 월트 백고우 번역, 노윤정 연출, 이필주), <레이디 벽지 part1>(극단 하이카라 작, 샬론 길먼 각색연출, 서승연), <마녀>(극단 제자백가 작 신성우, 연출, 이훈경, 임한창) 이 공연됐다. 8월 3일부터 7일까지는 초청작품인 극단 행복한 사람들의 <장미를 삼키다>(작 김수미, 연출 김관)가 공연된다. 이 작품에는 흑백다방, 자이니치, 노르망디 등의 작품을 쓰고 연출한 차현석이 배우로 출연하고 연극 <불멸의 여자>에서 신제품 화장품 구매자 황정란으로 분해 묵직한 연기를 보여주었던 윤가현 외에도 정아미, 황현희, 문태수, 문호진, 이승구, 박소윤, 이혁근 등이 작품의 의미를 더한다. 올해 여주인공페스티벌의 특징은 여성에 대한 다양한 담론을 대중적이면서도 연극적인 미학으로 무대로 풀어낼 수 있는 텍스트들이 다양화되었다는 점이다. 작품 별로 여주인공페스티벌 취지에 부합될 수 있도록 극단들의 무대형상화도 여성이 주체가 되는 메시지를 다루면서도 공연의 형식은 실험성과 텍스트의 전복성으로 여성의 캐릭터를 확장하려는 의도와 참가 작품들의 경쟁보다는 페스티벌의 의미가 생산적으로 무대를 향한다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는 대학로 유일한 ‘여주인공페스티벌’이다.

| 극단 제자백가는

연극 ‘카페삿뽀루’로 2010년도 창단한 극단 제자백가는 다양한 창작 작품을 무대화 하면서 주목을 받고 있는 극단이다. 특히 망원동브라더스, 살인게임, 먼지깨비, 홍당무, 체홉 여자를 읽다(제주 해비치 아트페스티벌 우수공연작 선정) 등의 소설을 살아있는 무대로 시도했으며 카페삿뽀루, 이땅은 니캉내캉(100페스티벌 최우수작품상), 목포의 마백수 등 다양한 창작극을 생산적으로 공연해 오고 있다. 이훈경 대표는 창작공연연극축제를 이끌어 오고 있으며 배우, 연출, 극작가이다. 서울연극협회 젊은 연극인상(2016)과 한국연극협회 젊은 연극인상(2017)을 수상했으며 제12회 서울청소년연극축제 예술 감독을 했다.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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