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기술로 산업혁명 수준의 변화 생길 것"
이정엽 서울회생법원 부장판사는 블록체인에 푹 빠진 판사다. 블록체인법학회 회장을 맡고 있고 2년 전에는 책 '블록체이니즘 선언'(박영사)을 냈다. 그는 책에서 "현재의 네트워크는 소멸하거나 가치가 줄어들고 블록체인 네트워크가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지만 대부분 사람에게 블록체인은 아직 다른 세상 이야기다. "블록체인으로 산업혁명 수준의 변화가 생길 것"이라는 이 부장판사를 지난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회생법원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블록체인법학회에는 어떤 분들이 있나.
“회원이 685명이다. 세계 최대 법조인 블록체인 커뮤니티라고 할 수 있다. 2017년 준비해서 이듬해 창립총회를 열었다. 법관이 80명, 검사가 20명 있다. 변호사 비율이 70% 정도 된다. 경영·경제학과 교수들과 기자들도 있다. 해외에서 우리 학회 규모를 말하면 깜짝 놀란다.”
-그렇게 많은 분이 관심 있는지 몰랐다. 무슨 일을 하나.
“블록체인 관련 법률과 제도를 연구한다. 해외 자료를 연구, 번역하고 여러 가상 자산의 법적 이슈에 대해 공부한다. 학회 이름 앞에 ‘한국’을 붙일지 말지 말이 많았는데 국제적 활동을 한다는 차원에서 붙이지 않았다. 우리가 연구를 더 많이 해서 (국제적으로) 이니셔티브를 쥐고 한국에 더 좋은 방향으로 국제표준을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블록체인이 세상을 바꾼다는데 현실에서 느끼기 힘들다.
“우리가 아침에 출근할 때 어느 경로로 이동하는지는 바로 사라지는 정보다. 그 자체로는 가치가 없다. (수많은 사람의 이동 경로를) 디지털로 고정해 업로드하는 순간 자산이 될 수 있다. 그에 맞는 교통 체계가 갖춰지면 최적, 최단의 경로로 이동할 수 있다. 건강 관련 정보도 어느 정도 이상 모이면 엄청난 가치를 갖게 된다. 다만 이때 등장하는 게 개인정보 보호와 자유의 문제다. 정보를 공개하기 싫지 않나. 블록체인 기술은 이런 프로젝트에서 익명성을 보장할 수 있다. 정보를 모이게 할 유인을 제공하는 것이다.”
-정보를 네트워크화해서 가치를 창출한다는 말로 들린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정보를 제공할까.
“보상이 없거나 정보가 해당 목적 외로 사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불식시키지 못하면 제공하지 않을 것이다. 디지털로 고정돼 살 사람이 생기는 정보라고 하면 디바이스를 통해 무의식적으로 정보를 저장하게 만들 수 있다. 하루에 몇 걸음을 걸었는지도 정보가 된다. 미국은 걸음 수 정보를 제공하면 의료보험료가 싸진다. 자동차도 안전운전하면 보험료가 내려가지 않나. 정보에 대한 보상 수준이 올라가고 있다는 얘기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데이터거래소가 생겨 정보가 자산화하기 시작했다. 제대로 자산화하려면 장부가 있어야 한다. 그 장부를 만들어주는 게 블록체인 기술이다. 한국은 이와 관련해 유리한 위치에 있다. 사람들이 디지털 정보를 올리는 데 익숙하다.”
-정보가 자산이 되는 네트워크를 구현하는 데 걸림돌이 있다면.
“디지털 네트워크를 만들려면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나중에 더 가치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이용해 자금을 모은 뒤 ‘먹튀’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한마디로 사기성 프로젝트가 너무 많다. 가상자산 프로젝트 10개 중 9개는 사기다. 이걸 솎아내지 못하니까 안타깝다. 서울 강남에서 가상자산 프로젝트 설명회를 하면 관련 공무원이 가서 사기성이 있는지를 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니까 옥장판 팔던 업체들이 말만 바꿔 코인으로 똑같이 사기를 치고 있다.”
-테라·루나 폭락 사태도 사기로 봐야 하나.
“꼭 그런 건 아니다. 그 일은 금융 불안정성을 이용한 네트워크 공격으로 해킹당한 것이다. 알고리즘이 공개돼 있으니 특정 시점에서 똑똑한 사람들이 대거 공매도했을 것이다. 코인 거래는 서킷 브레이커 같은 장치도 없고 무조건 알고리즘으로 진행되니 (그런 일이 발생했다).”
-블록체인에 기반한 디지털 네트워크 구현, 얼마나 걸릴까.
“10년 정도? 어쩌면 그보다 빠를 수 있다. 아이폰 도입된 지 15년 정도 됐는데 앱 생태계 발전 속도 보면 무척 빠르지 않나. 블록체인도 그 정도 기간을 본다.”
-정부가 디지털자산 기본법을 만든다고 한다. 어떤 내용 담겨야 하나.
“산업 진흥과 투자자 보호를 함께 해야 한다. 새로운 혁신을 막고 전통 금융 하던 사람들만 할 수 있는 수준으로 만들면 안 된다. 해외 혁신기업이 우리나라 금융을 차지할 우려가 있으므로 그런 우려도 생각하며 법을 만들어야 한다. 제대로 된 혁신기업이 살아남고 사기성 있는 프로젝트를 제거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겨야 한다.”
-일반 시민, 개인 투자자들은 블록체인 시대 어떻게 대비해야 하나.
“투자는 상당히 위험하다. 특히 잘 모르는 데 투자하는 건 위험하다. 코인의 적정 가치를 모르는 상황에서 욕심 갖고 투자하면 도박과 다를 바가 없다. 개인적으로는 주식시장의 펀드처럼 간접투자시장이 생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 혁신 기술이고 가치가 있으니 공부를 하는 건 꼭 필요하다.”
-판사와 블록체인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 이 분야에 관심 두게 된 계기는.
“이과 출신이고 과학에 관심이 많았다. 과학 관련 여러 책을 읽는데 점점 정보 쪽으로 관심이 가게 되더라. 최근 물리학과 바이오사이언스 쪽에서도 정보를 이 세상 기본단위로 보고 있다. 법원에서 개인정보나 특허 등 정보 관련 사건도 서서히 느는 추세다.”
권기석 김지훈 기자 key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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