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문화에 물든 복음주의 교회.. 변두리로 밀려난 신학

2022. 8. 2.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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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금산의 책꽂이 <6>
신학실종/데이비드 웰스 지음/김재영 옮김
‘신학실종’ 저자 데이비드 웰스가 2014년 강의하는 모습. 웰스는 이 책에서 현대 복음주의 교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신학이 변두리로 밀려나고 파편화된 것이라고 진단한다.


미국 신학자 데이비드 웰스는 1993년부터 2005년까지 문화신학 4부작 시리즈를 집필했다. 나는 웰스의 4부작인 ‘신학실종’ ‘거룩하신 하나님’ ‘윤리실종’ ‘위대하신 그리스도’를 읽으면서 앨빈 토플러의 4부작 ‘미래 쇼크’ ‘제3의 물결’ ‘권력이동’ ‘부의 미래’가 연상됐다. 앨빈 토플러는 비기독교적인 미래낙관주의 관점에서 경제를 중심으로 문명의 역사를 분석하며 미래 사회의 모습을 그렸다.

이에 비해 웰스는 기독교적 관점에서 현대 세계와 문화가 현대 기독교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서술한다는 점에서 토플러와 큰 차이가 있다. 그러나 토플러가 말하는 현대 문명의 특징은 웰스가 현대 교회의 특징을 분석하는 논의의 출발점이기 때문에 토플러의 책과 웰스의 책을 모두 읽었던 것이 도움이 됐다.

또 웰스의 책을 읽으면서 한때 프란시스 쉐퍼의 변증 3부작 시리즈인 ‘존재하시는 하나님’ ‘이성으로부터의 도피’ ‘존재하시며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처음 읽었을 때의 감동을 맛보았다. 쉐퍼를 통해 현대 사상과 현대 문화의 큰 흐름을 알게 된 것은 비기독교적인 대학의 학문 풍토와 세속 문화에 물들지 않고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됐다.

쉐퍼의 3부작이 주로 철학적인 관점에서 본 기독교 세계관이라면, 웰스의 4부작은 문화적 관점에서 본 기독교 세계관이었다. 두 시리즈는 상호 보완을 이뤘다. 쉐퍼의 3부작과 웰스의 4부작을 통해 우리 시대 세상을 읽는 힘과 교회를 보는 눈이 생겼다. 나는 웰스가 쉐퍼 이후 우리 시대 탁월한 복음주의 지성이라고 생각한다.

웰스는 자신이 쓴 4권의 문화 신학 시리즈를 아우구스티누스의 ‘하나님의 도성’과 비교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대 로마제국의 위기 속에서 당대 교회가 처한 현실을 직시하며 세상과 교회의 본질을 해부하고 세상 속에서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약 15년에 걸쳐 ‘하나님의 도성’을 썼다. 웰스 또한 현대 미국 문화의 위기 속에서 현대 문화에 깊게 물든 복음주의 교회의 위기를 느꼈다. 복음주의 교회가 세속화의 영향에서 벗어나 다시 교회다운 교회가 되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10여년에 걸쳐 문화신학 4부작을 저술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하나님의 도성’이 교회와 세상과의 관계를 크고 넓게 보여준 교회사 최초의 고전이라면, 웰스의 문화신학 4부작은 우리 시대 교회와 세상과의 관계를 높고 깊게 보여주는 우리 시대의 명저라고 말하고 싶다.

웰스의 4부작을 관통하는 테마는 ‘현대 복음주의 교회의 세속화와 세속화된 복음주의 교회의 개혁’이다. 웰스는 현대 미국 복음주의 교회가 종교 다원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아 하나님 대신 자아 중심적이 되었으며 성경의 진리 대신에 심리치료 테크닉과 기업 경영 테크닉에 의존하는 교회가 되었다고 지적한다. 오늘의 복음주의 교회는 윤리를 중시했던 전통적인 종교개혁적 영성 대신에 윤리를 경시했던 동양 종교와 고대 영지주의와 비슷한 뉴 에이지 영성을 닮아있다고 진단한다. 만일 복음주의 교회가 성경이 말하는 ‘거룩하신 하나님’과 ‘위대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진리를 다시 회복하지 못한다면, 결국 몰락한 서구교회나 몰락한 미국 자유주의 교회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 경고한다.


웰스의 ‘신학실종’은 웰스 문화신학 시리즈의 제1권으로서 가장 기초가 되는 책이다. 1993년 처음 발간되었을 때 이 책은 ‘복음주의자들이 노는 놀이터에 떨어진 폭탄’으로 평가받았다. 웰스는 이 책에서 현대 복음주의 교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신학실종이라고 진단한다. 웰스가 말하는 ‘신학실종’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첫째 신학실종은 신학(진리)이 중심 자리에서 변두리로 밀려났다는 의미다.

신학은 교회에서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더 이상 교회의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신학실종은 신학이 파편화된 것을 뜻한다. 전통적인 의미의 신학이란 교리, 신학적 성찰, 윤리가 하나로 통합된 것이었다. 그런데 현대화의 물결로 학계에서나 교회에서 교리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신학적 성찰도 성경 중심에서 정치·사회적 이슈나 심리적인 이슈로 축소돼 버렸다. 윤리도 더 이상 중요하게 여기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통합적이어야 할 신학 추구가 파편화됐다. 웰스는 ‘신학실종’의 1부에서 미시적으로는 웨넘이라는 한 도시를 통해, 거시적으로는 현대 문명의 특징 분석을 통해 현대화된 세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2부에서는 현대 복음주의 교회가 현대 문화의 개인주의, 대중주의, 전문주의, 진리에 대한 상대주의 등에 어떻게 영향을 받았는지를 진단한다.

이어 현대 복음주의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거룩하신 하나님에 대한 회복으로 제시한다. 웰스의 ‘신학실종’은 오늘 우리 한국 사회와 한국 복음주의 교회를 비추어 볼 수 있는 중요한 거울이다. 또 한국교회의 세속화된 모습에 대한 진단서이자 좋은 처방전이다.

백금산 독서클럽 ‘평공목’ 대표·예수가족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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