쥬시쿨·프라이로 하루 사는 그들..尹표 '핀셋복지' 첫발 뗐다 [View]

신성식 2022. 8. 2.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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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생활보장법 바로 세우기 공동행동, 장애인과 가난한사람들의 3대 적폐 폐지 공동행동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25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보건복지부 앞에서 이날 열리는 '기준 중위소득'을 결정하는 중앙생활보장위원회를 앞두고 기준중위소득 대폭 인상, 급여 현실화 등을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성북구 기초생활수급자 은희주(44)씨는 1일 오후까지 1000원짜리 음료수(쥬시쿨) 하나로 끼니를 때웠다. 달걀 프라이로 저녁을 대신했다. 밥솥이 고장난데다 반찬이 거의 없다. 컵라면은 아낀다. 그는 "진짜 배고플 때 먹으려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중앙일보 취재진과 통화했을 때 몸이 안 좋아 미음을 먹는둥 마는둥 했는데, 그새 좀 나아졌다. 그는 최근 한두 달에 단백질을 섭취한 기억이 없다. 주요 공급원은 햄이다. 유명 브랜드 햄은 언감생심이다. 동묘시장에 가서 유통기한이 임박한 싼 걸 산다. 우유·컵라면도 가장 싼 제품을 산다. 최근의 고물가가 두렵다.

은씨는 모야모야병이라는 희귀병 환자이다. 6년 전 뇌수술을 했고 주기적으로 뇌혈관 확장 시술을 받는데, 건강보험이 안 되는 진료비가 50만원 나온다. 정부의 생계급여(월 58만원)에서 매달 5만원씩 모은다. 부족해서 복지기관에서 빌렸고 매달 3만원을 갚는다. 9만원 빚이 남았다. 은씨는 지난달 19일 시민단체와 함께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앞에서 "기준중위소득을 대폭 인상하라"고 기자회견을 했다.

은씨의 바람대로 기준중위소득이 상당폭 올랐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29일 중앙생활보장위원회(이하 중생보)에서 2023년 기준중위소득을 5.47% 올렸다. 4인가구 기준으로 올해 512만 1080원에서 내년에 540만 964원이 된다. 기준중위소득은 기초수급자의 생계급여·의료급여, 긴급복지, 국가장학금, 치매 검진 등 12개 부처의 76개 복지수당(서비스)의 기준이다. 이걸 올리면 신규 복지대상자가 늘고, 복지수당이 오른다. 가령 은씨 같은 1인가구 기초수급자의 생계급여는 '기준중위소득의 30%'가 기준이다. 이게 올해 월 58만3444원에서 내년엔 62만3368원이 된다. 은씨의 생계급여가 이만큼 오른다. 은씨는 "부족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올라가서 좋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이번 인상률은 2015년 기준중위소득 제도가 도입된 이후 7년만에 가장 높다. 2020년 과거 3년치 중위소득 변화를 반영해 자동으로 인상률을 계측하는 방식이 도입된 이후 처음으로 계측치를 100% 반영했다. 내년 인상률 계측치는 5.47%(기본인상률 3.57%에 추가인상률 1.83% 반영)였고, 중생보에서 그대로 반영했다. 올해 계측치는 6.34%였는데 실제 5.02% 올랐다. 그 전년에는 6.36% 계측치에 실제 2.68% 올랐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신영석 선임연구위원은 "중생보 회의 결과를 보고 너무 놀랐다. 결코 상상한 적이 없는 결과"라고 말했다. 중생보 부위원장인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위원회에서 정한 대원칙과 룰이 이번에 처음으로 실행에 옮겨졌다"고 평가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1차관이 지난달 2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중앙생활보장위원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결정은 그만큼 파격적이라고 볼 수 있다. 보건복지부 박인석 사회복지정책실장은 "취약계층에 집중한다는 새 정부의 복지 기조를 이번에 반영한 것"이라며 "기준중위소득은 취약계층 복지의 바로미터"라고 말했다. 그동안 윤석열 대통령은 각종 회의와 복지 현장 방문에서 취약계층 집중지원을 강조해왔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전 정부가 올해만 기준중위소득을 5% 올렸고 2018~2021년 1.2~2.9%만 올렸다. 제일 어려운 계층을 더 죘더라"며 "취약계층이 표에 도움이 안 된다고 보고 전형적인 포퓰리즘 복지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 정부가 늘린 재정 지출을 우리가 바짝 죄되 취약계층은 제대로 챙긴다는 게 윤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구인회 교수는 "진보 정부인 문재인 정부가 중생보에서 정한 원칙을 안 지킨 게 아이러니다. 이번 정부가 지킨 점은 평가할 만하다"고 말했다. 구 교수는 박근혜 정부 때 복지 기준을 기준중위소득으로 바꾸면서 상대빈곤(국제 기준)으로 전환하고 맞춤형 복지를 도입한 점, 이번 정부가 생계급여 기준점을 기준중위소득의 30%에서 35%로 올리려는 점 등도 평가할 만하다고 본다. 구 교수는 "민주당이 '기준중위소득의 30%'를 고착화하고 (올리는 데) 역점을 두지 않았는데, 보수 정부가 의지를 갖고 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신영석 박사는 "전 정부가 코로나 전국민 재난지원금을 많이 풀었는데, 대기업·공공기관 직원에겐 감흥이 별로 없다. 재원에 한계가 분명하니 저소득층에 집중하는 게 괜찮다고 본다"며 "다만 저소득층 범위를 좀 넓게 잡아야 누락을 막을 수 있다. 위기상황에는 넓게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재원 마련도 문제다. 기준중위소득 인상에는 중앙정부 예산만 1조229억원이 든다. 생계비 기준선 인상에도 2조원이 필요하다. 기초연금 인상(5년 간 45조원), 부모급여 도입(7조원) 등에도 적지 않은 돈이 필요하다. 법인세·소득세 등의 감세정책이 국회를 통과하고 경제상황이 더 악화하면 재원 마련에 애를 먹을 게 뻔하다. 기초생보자 재산기준 완화, 의료급여 대상자의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 3급 단일 장애인(종전 기준)의 장애인연금 지급 등 취약계층 복지 과제도 산적해 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이번 인상이 물가인상보다 낮다는 지적도 있다. 참여연대는 지난달 29일 논평에서 "6월 이후 물가인상률이 6%대인데 여기에 크게 미치지 못하게 인상됐다"며 "주거급여 기준선도 낮아져 아쉬움을 더한다"며 "감염병 재난의 장기화, 고물가 등으로 인한 서민의 고통이 큰 데다 가난하고 취약한 계층의 생존투쟁을 고려하면 긍정적으로만 평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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