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파면이 해임으로 경감..외부 입김 없었나
[편집자 주]
지난해 초 국가정보원 안에서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국정원 실세 간부가 부하 여직원을 성추행했다는 불상사와 관련된 것이었다. 국정원 요원들 사이의 입소문이 엄연한 현실이 된 건 극적인 순간을 맞으면서다. 피해자의 신고에 따른 내부 감찰 착수가 동력이었다.
감찰 결과를 토대로 국정원은 징계위원회를 열어 가해자를 파면(※소청심사위서 해임으로 감경) 처분했다. 이 사건은 지난 대선 막판에 불거진 박완주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3선) 등 진보 진영 인사들의 이중적 행태를 연상케 한다. 안이한 성의식과 성인지감수성의 민낯이 드러난 국정원판 성비위라는 시각도 있다. 국정원의 폐쇄적인 문화 탓에 세상 밖으로 알려지지 않았던 '국정원 간부 성추행 징계' 사건의 문제점 및 대책을 다룬 하(下)편이다.
국가정보원은 S씨에게 파면의 중징계를 결정했지만 S씨는 파면되지 않았다. 어찌된 일일까. 당초 전직 국정원 제보자는 "S씨가 국정원의 파면 징계에 불복해 법원에 행정소송을 냈고 법원이 징계 수위를 한 단계 낮춰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서울행정법원을 통해 S씨 이름으로 제기된 소송이 있는지 찾았으나 검색되지 않았다. 법원에는 오지 않았다는 의미다. 다시 수소문했더니 인사혁신처 소청심사위원회에 구제를 신청한 것 같다는 정보가 입수됐다. 소청심사위는 1963년 설립된 공무원 권익 구제 기관이다. 국민의힘 조수진 의원이 S씨가 소청을 제기한 사실이 있는지에 대한 자료를 소청심사위에 요구했다. "구제 심사를 신청했는지와 내용이 뭔지, 결과가 언제 나왔는지, 파면에서 해임으로 감경한 게 맞는지, 맞다면 사유와 판단 근거 등의 자료를 달라"면서다. 그러나 소청심사위는 "개인 정보라서 당사자 외에는 제공할 수 없다"며 난색을 표했다. 소청심사위를 관장하는 인사혁신처도 매한가지였다. 다만 "국정원 공무원도 소청 심사를 신청할 수 있다"고 언급해 여지를 남겼다.
결정적으로 사실 관계를 확인해 준 사람은 국정원 전직 고위 관계자였다. 조 의원을 통해 그에게 질의했더니 "국정원은 원칙대로 (파면)했다. 해임으로 낮춘 건 인사혁신처 소청심사위"라는 답이 돌아왔다.
사실 국정원직원법 제26조(징계 절차)는 '직원의 징계는 징계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국정원장이 한다. 다만, 3급 이상 직원에 대한 강등ㆍ해임ㆍ파면은 징계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국정원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한다.'고 돼 있다. 파면의 최종 결정권자는 대통령이라는 의미다.
파면되면 퇴직금 감액, 해임되면 전액 수령 큰 차이
국정원이 파면을 결정한 사안에 대해 소청심사위가 해임으로 낮췄을 때는 이유와 근거가 있었을 것이다. 중징계인 파면과 해임은 배제 징계(※강제 퇴직 처분)라는 점은 같지만 큰 차이가 있다. 파면되면 향후 5년간 공무원이 될 수 없으며, 퇴직금은 5년 미만 근무자는 1/4을 감액하고 5년 이상 근무자는 1/2을 감액한 후 지급한다. 해임의 경우에는 3년 동안 공무원으로 임용될 수 없다. 연금법상의 불이익은 없다. S씨는 파면에서 해임으로 낮춰짐으로써 퇴직금을 전액 수령할 수 있었다. 이에 대해 S씨는 "소청심사위에서 해임으로 경감한 이유는 그 일이 있고 나서 상당 기간이 흐른뒤에 문제 제기(성추행 감찰 신고)가 됐고 그런 행위가 지속적인 게 아니었다는 해명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며 이는 결정 주문서에도 나와 있다"라며 "부적절한 측면은 있지만 법적으로 책임질 정도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사법 처리 사례는 별론으로 하고 고위 공무원이 소속 기관에서 성추행으로 징계를 받았는데 파면된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소청심사위에서 성추행 파면이 해임으로 낮춰진 사례도 극히 드물었다. 소청심사위 홈페지의 '소청 사례 검색' 코너에 2021년 1월부터 현재까지 '성희롱'과 '성폭력'을 키워드로 넣고 검색했더니 각각 70건, 38건의 사례가 떴다. 성희롱 사례 70건 중에는 파면, 해임(이상 중징계)부터 강등, 정직 1~3월, 감봉 1~3월, 직위해제, 전보, 징계부가금 2배, 견책(이상 경징계) 등으로 소속 기관에서 받은 원래 징계 처분의 종류가 다양했다. 이중 파면은 2건에 불과했다. 소청위 처분 결과도 청구 기각이 56건이나 됐고 감경 등 인용은 경징계 사안 14건에 그쳤다. 성폭력 사례 38건 중 31건도 기각(또는 각하)이었다. 원처분이 파면인 사례는 6건이었는데 이중 5건이 기각됐고 1건만 '강등'으로 낮춰졌다.
국정원 고위층 영향력 행사?...소청심사위 "심사 독립" 부인
법조계에는 당시 서훈 국가안보실장 또는 박지원 국정원장이 행정안전부, 인사혁신처 등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는 시각이 존재한다. S씨는 서 전 실장의 측근이고 박 전 원장 취임 직후 단장으로 승진한 것과 연결지어서다. 소청심사위 측은 "심사는 독립적으로 이뤄져 가능성이 낮다"고 부인했다. 조 의원은 "이번 사안은 오거돈·박원순 전 시장의 성추행 사건에 대해 침묵해온 문재인 정부 성 인식의 국정원판"이라며 "소청위 징계 감경 과정에 당시 고위층의 입김이 작용한 것은 아닌지를 확인키 위해 김규현 국정원장에게 자료제출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석연찮은 점은 또 있다. 소청심사위 홈페이지에 올라있는 성폭력 등 소청 심사 사례 108건 가운데 S씨의 성폭력 사례는 보이지 않았다. 선별적으로 사례를 올리더라도 자체 기준이나 규정에 따른 것이라면 문제될 게 없다. 하지만 국정원 간부 파면 사건의 민감성을 감안해 일부러 검색 대상에서 뺀 것이라면 부적절한 조치다. 특정인의 개인정보는 보호하고 다른 사람의 개인정보는 보호하지 않는다는 건 또다른 차별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소청심사위 측은 "명문 규정은 없지만 개인정보보호법이나 공공기관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사례를 공개하는데 당사자가 특정될 수 있다고 판단하면 뺀다"며 "전체 심사 사례 중 92% 정도가 공개되며 S씨 사례가 빠졌는지, 빠졌다면 왜 그랬는지 등은 확인해 보겠다"고 말했다.
그나마 소청위를 통해 알게 된 정보는 소청인은 징계 결정이 내려지고 한 달 안에 소청 심사를 신청해야 하고, 심사 결과는 통상 90일 안에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파면 징계가 지난해 6월 확정된만큼 소청위 심사 결과는 같은해 9~10월에는 나왔을 것으로 추정됐다. 소청인은 심사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앞서 확인한 대로 S씨가 제기한 소송은 없었다. 해임 결론을 수용하면서 사건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하지만 팩트가 있는 한 진상은 드러난다. 지난 대선 결과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시작된 국정원 1급 간부 27명 전격 대기 발령 등 '신적폐 청산'의 소용돌이 속에 파면 징계 결정이 난지 1년여만에 뒤늦게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피해 사실을 알려도 정보기관 특성인 폐쇄적인 조직 문화와 강한 위계질서에 눌리고 묻히는 일이 반복되면서 사태가 커진다고 분석한다. 성추행 사건이 터질 때마다 되풀이되는 '꼬리 자르기'식 징계와 축소·은폐·무마, 쉬쉬하기와 모르쇠 대응이 국정원내 성폭력, 성희롱 범죄가 줄어들지 않는 이유라는 것이다. 국회 입법조사처의 허민숙 조사관은 "오히려 외부에 사건 처리 결과를 알리고 적극적인 사법 처리 등을 고려하는 게 재발 방지를 위한 방안일 수 있다"고 제시했다.
조강수·석경민 기자 pinej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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