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만쌍 무료예식 천사 쓰러졌지만..부인·아들이 그 빈 자리 채운다
“할 수 있는 데까진 해봐야죠”
1일 오후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서성동 ‘신신예식장’. 예식장 실장인 최필순(81)씨는 80대 노부부의 ‘리마인드 웨딩’을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4남매 자녀·손주들과 함께 서울에서 왔다는 황혼의 신랑·신부 턱시도·드레스 준비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이 와중에도 예약 전화는 계속 걸려왔다.
최씨가 분주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3개월 전까지만 해도 함께 예식장을 지키던 백낙삼(90) 신신예식장 대표가 뇌출혈로 투병 중이기 때문이다. 지난 4월 16일 오전 6시쯤 건물 옥상에 심은 채소를 보러 간 백 대표가 한 시간이 다 되도록 돌아오지 않자, 최씨는 남편을 찾으러 갔다가 옥상에 쓰러져 있는 그를 발견했다. 인근 병원으로 옮겨진 백 대표는 다행히 의식은 찾았다. 하지만 팔·다리에 마비 증세가 와 요양병원에서 재활치료 중이다.
최씨는 “의사 선생님이 몸은 나아졌다고는 했는데, 나이가 있다 보니 예전처럼 회복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며 “그래도 남편과 제가 평생 함께 해왔고, 지금도 예식장을 찾아오는 분들을 생각하면 쉽게 그만둘 수 없다”고 말했다.
백 대표 부부는 1967년부터 형편이 어려운 이들에게 무료로 예식을 치러줬다. 지금까지 이곳에서 무료로 결혼식을 올린 부부만 1만4000쌍이 넘는다. 백 대표는 이런 선행으로 2019년 국민훈장 석류장, 2021년 LG의인상 등 받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한 TV 예능 프로그램에 백 대표가 출연하면서 예식장이 더 알려졌다.
신신예식장은 영화에도 나왔다. 2014년 개봉해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국제시장’에서 덕수(황정민 역)의 동생 끝순이(김슬기 역)가 결혼식을 올리는 장면을 여기서 촬영했다. 영화 속 결혼식에서 “자, 여기 보세요. 찍습니다”라며 사진을 찍던 이가 백 대표다.
처음엔 사진관으로 개업했던 백 대표는 돈이 없어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사람들이 마음에 걸려 무료예식장을 열었다. 백 대표도 부모님을 포함해 가족 13명이 한방에서 살 정도로 곤궁했던 삶을 살았다. 처음에는 사진값 6000원만 받고 결혼식을 진행했다. 그렇다 보니 1980~90년대엔 문전성시를 이뤘다. 하객 70여 명이 들어갈 수 있는 신신예식장의 1개뿐인 예식홀에서는 하루 17쌍이 결혼식을 올리기도 했다. 지금은 주례사, 사진 촬영·인화, 신랑·신부 메이크업, 턱시도·드레스 준비와 신발 대여 등 최소 비용으로 70만원 정도만 받고 결혼식을 진행하고 있다.
백 대표가 병석에 눕자 아들과 친척들이 나섰다. 창원에 살면서 별도 사업체를 운영하는 아들 남문(52)씨는 아버지가 쓰러진 뒤부터 사진촬영과 예식 진행을 도맡아 해오고 있다. 그는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한 덕분에 비교적 수월하게 예식 진행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백 대표가 맡았던 주례는 친척인 백태기 전 창원여자중학교 교장이 하고 있다. 남문씨는 “어머니 연세도 있으시지만, 주변에서 계속하길 바라시는 분들도 많다”며 “아버지와 어머님이 50년 넘게 지켜온 곳인 만큼 제가 힘닿는 한 최선을 다해 예식장을 운영하고, 비용도 더 줄이겠다”고 말했다.
창원=안대훈 기자 an.dae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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