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갈급 빛의 예술가, KAIST에 둥지 튼 까닭
대전 KAIST 학술문화관 1층 구석엔 KAIST와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수사(修士)의 ‘창작실’이 있다. 지난달 26일 중앙일보 취재진이 이곳을 찾았을 때 107㎡(약 33평) 남짓한 작업실엔 500호와 300호짜리 초대형 캔버스들이 가득했다. 한국의 서예 붓과 서양의 화구인 나이프로, 때로는 스프레이로 그린 특유의 화려한 색감을 담은 추상화들이다. 이렇게 그린 그림은 전사(轉寫)와 추가 수작업을 거쳐 스테인드글라스로 변신하게 된다.
수사의 정체는 프랑스 도미니코 수도회 소속 김인중(82) 신부다. 그는 프랑스에서 50년 가까이 활동해 온 세계적인 스테인드글라스 작가이기도 하다. 프랑스 중남부 브리우드의 생 줄리앙 성당 등 세계 50곳의 성당이 그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으로 장식돼 있다. 한국에도 경기도 용인의 신봉동 성당이 그의 작품을 품고 있다.
세계적 미술사가 겸 수녀인 웬디 베케트(1930~2018)는 “만약 천사가 그림을 그린다면 그의 작품과 같을 것”이라고 평한 바 있다. 김 수사는 스위스 일간지 ‘르 마탱(Le Matin)’이 선정한 세계 10대 스테인드글라스 작가에 샤갈·마티스와 함께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는 “작품활동을 하는 것은 하느님에 대한 감사의 행위”라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린다”고 말했다. 그에게 그림과 스테인드글라스는 신을 향한 구도(求道)의 도구인 셈이다.
세계적 거장은 모국으로 돌아와 지난 5월부터 이곳에서 작품에 열중하고 있다. KAIST 중앙도서관인 학술문화관 3층의 가로 10m, 세로 8m의 천창(天窓)을 53조각의 스테인드글라스로 채우기 위한 사전 작업이다. 완공 목표일은 내년 3월이다.
KAIST는 왜 세계적 예술가인 김인중 수사 신부를 미술대학도, 종교학과도 없는 과기특성화대학으로 모셨을까. KAIST는 지난달 29일 김 신부를 산업디자인학과의 정식 초빙석학교수로 임명하기도 했다. 작업실은 ‘초빙석학교수 연구실’도 겸하게 되는 셈이다. 그의 우선 임무는 스테인드글라스 완성이지만, 오는 2학기부터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특강도 할 예정이다. 이광형 KAIST 총장은 “KAIST가 세계 정상으로 나아가려면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걸 해야 하는데 그림과 음악 등 예술에서 그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더구나 김인중 신부님처럼 세계 정상에 오르신 분이 캠퍼스에 계시면 학내 구성원들도 창의성뿐 아니라 자신감 등 배울 것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김 신부의 역할은 예술에만 그치지 않을 듯하다. 그는 “얼마 전 우울증에 시달리던 교수 한 분이 작업실로 찾아와 상담해 주기도 했다”며 “그림이나 특강이 아니더라도 필요하다면 학생이든, 교수든 누구라도 찾아오면 대화를 나눌 것”이라고 말했다.
KAIST가 이공계 교육에 예술을 접목하려는 시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10월에는 세계적 소프라노 조수미씨를 문화기술대학원 초빙석학교수로 임용했다. 지난 2월에는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가 전산학부 석학초빙교수가 됐다.
글=최준호 과학·미래 전문기자, 논설위원 joonho@joongang.co.kr, 사진=프리랜서 김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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