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행 펠로시에 中 "타죽을 것"..25년 전 깅그리치는 달랐다

전수진 2022. 8. 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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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 수도 타이베이에서 한 여성이 국기를 들고 있다. AP=연합뉴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가운데, 갑자기 추억 속에서 소환된 인물이 있다. 뉴트 깅그리치(79) 전 하원의장이다. 미국 권력 서열 3위인 하원의장의 마지막 대만 방문이 사반세기 전인 1997년이었으며, 당시 주인공이 깅그리치였기 때문이다.

펠로시 의장 측의 대만 방문은 1일 오후, 기정사실화됐다. 중국은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직접 “불을 갖고 장난 치면 타죽는다”(지난달 28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통화)부터 “중국의 마지노선에 도전하는 것”(중국 외교부) 등의 반대 입장을 직접 표명했기에 일촉즉발 상황이다. 중국 당국은 미국에 대해 대만 문제를 언급할 때 “불장난”이란 표현을 자주 등장시킨다.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은 깅그리치 이후 미국 최고위급 인사의 방문이다.

뉴트 깅그리치 당시 하원의장이 1997년 대만을 방문해 리덩후이 총통을 만나는 장면. AP=연합뉴스


1997년 당시 상황은 사뭇 달랐다. 미ㆍ중 관계의 국제정치학뿐 아니라 순방의 성격도 180도 달랐다. 깅그리치는 당시 야당인 공화당 소속 하원의장으로, 미 국무부와 긴밀히 소통하며 아시아 순방을 조율했다. 깅그리치가 당시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중국 베이징(北京). 당시 장쩌민(江澤民) 주석을 만나고 베이징의 미래 외교관들을 만나 강연 및 토론을 했다. 장 주석은 그에게 “지금의 중ㆍ미 관계는 비 온 뒤 내리쬐는 햇볕과 같다”고 했고, 깅그리치는 “미국과 중국은 양국 관계라는 난초를 망가뜨리지 않고 아름답게 잘 피워나갈 방법을 논의해야 한다”고 화답했다.

당시 방문에서 갈등이 불거졌던 순간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깅그리치가 당시 대학생들과의 강연에서 6ㆍ25를 ”북한의 침공과 중국의 연합으로 한국이 공격당했다“고 설명한 것에 대해 학생들이 손을 들고 반발한 정도였다고 한다. 당시 로스앤젤레스(LA)타임스는 이 순방을 비판하면서 기사 제목을 “깅그리치가 당초 (대중) 강경 입장을 바꿔 중국 지도부를 높이 평가하다”로 달았다.

낸시 펠로시 의장. 대만에 갈 것인가 말 것인가. AP=연합뉴스


깅그리치의 방문 당시에도 대만은 뜨거운 감자였으나 당시 “불장난”과 같은 표현은 나오지 않았다. 깅그리치가 “중국 지도부에 ‘대만을 공격한다면 미국은 방어에 반드시 나설 것’이라고 말했으며, 중국 측은 ‘우리가 공격할 일이 없으니 (미국이) 방어할 일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말한 정도다.

이유가 있다. 중국은 당시 대만과의 관계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 전해인 1996년, 대만은 첫 직선제로 리덩후이(李登輝) 총통을 선출했는데, 리 총통은 당시 확고한 친중 색채를 보였다. 깅그리치의 방문에 대해 당시 대만 정부가 낸 공식 문서에선 “중국과 대만은 하나라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재확인한다”는 문구가 적시되어 있다. 리 총통은 그러나 임기 말년인 2000년대 초에 들어와서는 노선을 변경해 중국과 대만이 별개 국가라는 양국론(兩國論)을 제창한다. 이 과정에서 리 총통이 핵심 측근으로 삼았던 인물이 현 총통인 차이잉원(蔡英文)이었다. 차이잉원은 당시 학자였으나 리 당시 총통의 비밀 지시로 일명 ‘양안 관계 재정립’ 프로젝트를 맡았고, 이후 정계에 진출했다.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 EPA=연합뉴스


깅그리치 본인은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미국 정치 전문 매체, 더 힐은 지난달 31일 “깅그리치는 ‘97년에는 (미국) 국방부를 믿을 수 있었기에 우려가 없었지만 지금은 국무부와 다를 것이 없어 걱정된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고 전했다. 현재 여당인 미국 민주당이 국방 아닌 외교 논리를 우선시하고 있기에 대만을 더 강경히 옹호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그러나 깅그리치와 펠로시의 대만 방문은 국제정치적 역학 구도가 바뀌어 있다는 점에서 단순 비교는 어렵다.

깅그리치도 대만 방문 후 정치적 부침을 겪었다. 그해 빌 클린턴 대통령의 성추문 사건으로 인해 탄핵 소추에 앞장섰지만 그 후폭풍으로 자신이 오히려 이듬해 사임했다. 이후에도 워싱턴DC 정가에 남아 베테랑으로 활약하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후보 시절 러닝메이트 후보군에도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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