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 둘러싼 엇갈린 신호들.."R 넘어 S 진입" vs "고용 좋아 속단 일러"

명순영, 배준희 2022. 8. 1.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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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곧 경기 침체에 들어갈 것이다.”

피에르-올리비에르 고린차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가 지난 7월 26일(현지 시각) “미국이 경기 침체를 피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IMF가 세계경제전망 수정보고서를 내놓은 직후 기자회견에서다.

고린차스 수석은 “현재 환경은 미국이 경기 침체를 피할 가능성이 매우 낮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며 “(경기 침체를 피하는 것은) 매우 협소한 경로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IMF는 보고서에서 미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3%로 제시했다. 3개월 전의 4월 전망에 비해 무려 1.4%포인트나 내린 수치다. IMF는 또 경기 침체를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이라고 정의할 때, 미국의 경기 침체가 이미 시작됐을 수 있다고 했다. 사실상 세계 경기 침체를 기정사실화한 셈이다.

고린차스 수석은 미국 노동 시장이 강력하고 실업률이 3.6%로 매우 낮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미국 통화 긴축 정책이 계속되면 실업률이 상승하고 노동 시장도 점차 냉각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IMF뿐 아니라 많은 경제 전문가들이 경제 침체를 예고한다.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지낸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미국 경제의 연착륙 가능성에 대해 “매우 희박하다”고 단언했다. 그는 미국 경제가 ‘구조적 장기 침체(secular stagnation)’에 빠질 확률이 60% 정도라는 주장을 편다. 앨빈 한센 하버드대 교수가 처음으로 언급한 구조적 장기 침체는 민간 투자 부진과 과잉 저축이 맞물리며 경제가 만성적인 수요 부진으로 침체되는 상황을 뜻한다.

서머스는 지난해 2월 워싱턴포스트(WP) 기고를 통해 “한 세대 동안 경험하지 못한 인플레이션이 올 것”이라고 한 바 있다. 지난해 1월과 2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전년 동월 대비)은 1.4%와 1.7%. 여전히 저물가 상태였다. 그럼에도 서머스는 친정인 바이든 행정부의 돈 풀기를 대놓고 비판하며 물가 경고의 선봉에 섰다. 그 과정에서 크루그먼 같은 민주당 성향 인사에게서 ‘바보’ ‘정치꾼’이라는 조롱까지 들었다. 그런데 “결국 서머스가 맞았다”는 말이 요즘 미국 월가와 학계에서 자주 회자된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재닛 옐런 재무장관, 제롬 파월 연준(Fed) 의장 등을 제쳐두고 서머스와 통화한 사실까지 알려졌다.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지난 7월 27일(현지 시간)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했다. 지난달에 이어 2회 연속 ‘자이언트스텝(Giant step)’을 밟았다. 40년 만에 최악으로 치달았던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연준은 공격적인 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AFP)

▶국내는 이미 스태그플레이션?

▷경제학자 54% “이미 초기 진입”

단순한 침체(recession)를 넘어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을 우려하는 목소리마저 나온다.

스태그플레이션은 스태그네이션(stagnation·경기 침체)과 인플레이션(inflation)을 합친 신조어다. 경기가 어려운 가운데 물가가 오르는 ‘이중고’ 현상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경제가 좋지 않을 때 물가가 하락한다. 경기가 좋을 때는 물가가 오른다. 경기가 어려울 때 자제해왔던 소비가 한꺼번에 분출하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까지만 해도 이 논리는 맞아 떨어졌다.

하지만 1970년대 다른 양상이 나타났다. 1973년과 1979년에 발생한 오일쇼크로 전 세계 경제 공황이 일어났다. OPEC(석유수출기구) 가격 담합으로 석유 가격이 치솟으며 경제에 충격을 줬다.

40여년이 지난 지금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단어가 언급되는 이유가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에 주요 국가가 천문학적인 돈을 시장에 뿌렸다. 인위적인 경기 부양은 인플레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여기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한국도 스태그플레이션 단계에 다다랐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국경제학회가 ‘스태그플레이션’을 주제로 한 설문 결과에 따르면, 국내 경제학자 39명 중 21명(54%)은 ‘우리나라가 초기 진입 단계에 있다’는 응답지를 선택했다. ‘상당히 진행되고 있는 상태’라고 답한 학자는 2명이다. 응답자 59%(23명)가 스태그플레이션 단계에 있다고 본 것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스태그플레이션 자체는 이미 진행 중”이라며 “이에 따른 위험성으로 외환·금융 시장이 불안하게 전개되고 있다”고 말했다.

▶‘고용 있는 침체’ 해석 분분

▷고용·경기 상관관계 둔화 해석

경기 침체 징후가 곳곳에서 목격되지만 시장 참여자들을 헷갈리게 하는 신호도 동시에 관찰된다.

대표적인 신호가 고용이다. 적어도 수치상 관찰되는 일자리 시장은 경기 침체와 동떨어진 듯 보인다. 실제 지난 6월 미국 내 비농업 부문 일자리는 전월 대비 37만2000개 늘어 월가 예상치보다 10만개가량 많았다. 미국의 6월 실업률은 3.6%로 최근 넉 달 연속 같은 수준을 기록 중이다. 이는 50년 만에 최저치였던 2020년 2월(3.5%)과 비슷하다. 3%대 실업률은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실업을 고려했을 때 사실상 완전고용 상태로 평가된다.

고용과 침체가 따로 노는 것은 이례적인 현상이다. 미국 경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2번의 경기 침체를 겪었지만 예외 없이 실업률이 증가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를 두고 ‘고용이 풍부한 경기 후퇴(jobful downturn)’라고 표현했다. 경기와 고용이 따로 놀고 있다며 경제학자 사이에서 ‘고용 있는 침체’를 진짜 침체로 봐야 할지 논란이 확산 중이다.

제롬 파월 의장이 7월 27일(현지 시간) “현재 미국이 경기 침체 상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한 것도 이 같은 고용 상황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 경제에서 아주 잘 기능하고 있는 영역이 너무나 많다”며 “노동 시장이 매우 강한데 경기 침체에 진입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앞서 재닛 옐런 재무장관도 “일자리 창출이 일부 더뎌질 가능성이 있지만, 그것이 경기 침체의 징후는 아니다”라며 경기 침체설을 일축했다.

사정이 이렇자 경기 침체를 어떻게 정의할 것이냐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미국에서 경기 순환 국면을 공식적으로 판단하는 전미경제연구소(NBER)는 2분기 연속 GDP 성장률이 감소(마이너스 성장)하면 경기 침체에 진입했다고 판단한다. 물론 NBER은 소득, 제조업 활동, 고용 등 다양한 지표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뒤 경기 침체를 결정한다. 고용 시장이 아직까지 견조하다 보니 GDP 성장률을 중심으로 경기 침체를 판단하는 것이 적절한가를 두고 갑론을박이 오간다.

‘고용 있는 침체’를 두고 제기되는 설득력 있는 가설은 고용과 경기 간 상관관계가 예전보다 약화했다는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실업률 변동과 경기 순환의 상관관계가 크게 줄어드는 추세라는 게 학계 진단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경기 침체 국면에서는 실업률이 상당 수준 높아졌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에는 경기 침체 국면에서도 실업률이 하락하거나 횡보하는 패턴을 자주 보였다. 은퇴 세대의 노동 시장 잔류, 기술 진보에 따른 제조업 자동화, 노동 집약 산업의 해외 이전, 정부의 직접 고용 정책 강화, 노동 시장의 경직성 등이 실업률과 경기 변동 간 상관관계 약화의 주요 요인으로 분석된다.

▶베어마켓 랠리 연출하나

▷미 증시도 코스피도 반등세

미국 인플레이션이 최악의 상황은 지났다는 의견도 나온다.

유가 하락세가 이를 방증한다. 국제유가는 7월 들어 배럴당 100달러 선을 밑돌고 있다. 6월만 해도 120달러에 달했던 유가가 20% 빠졌다. 두바이유나 브렌트유도 조만간 100달러 선이 무너질 것으로 예상된다. 3.5%까지 올랐던 미 국채 10년 금리도 3% 선에서 등락하는데, 이는 원자재 가격이 조정된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경기 둔화 우려에 따른 하락으로 풀이되지만 적어도 스태그플레이션으로 갈 가능성은 낮춘 셈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인플레이션이 진정되고 있다는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고 했다. 미국 휘발유 가격은 지난 6월 중순 갤런당 5.02달러로 정점을 찍은 이후 10%가량 떨어졌다. 옥수수 선물 가격 역시 지난 6월보다 27%, 밀 선물 가격은 5월보다 37% 하락했다.

글로벌 투자 정보 업체인 에버스코어의 에드 하이먼 회장은 “현재 각종 지표를 참작한다면 지난 6월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 9.1%는 정점이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최근 발표된 미시간대의 7월 소비자태도지수에 따르면, 12개월 기대 인플레이션은 5.2%, 5년 기대 인플레이션은 2.8%로 각각 전달 수치보다 낮아졌다.

증시에서는 하락장에서 단기 반등하는 ‘베어마켓 랠리’의 가능성도 점친다. 베어마켓 랠리는 증시가 급락한 이후 일시적인 반등세가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대비 낙폭이 지나치다고 판단한 투자자 매수세가 유입돼 기술적 반등장이 펼쳐지는 모양새다. 코스피지수는 최근 반등에 성공해 2400선을 넘어섰다.

파월 의장이 최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지난 6월에 이어 또다시 0.75%포인트 인상할 것이라고 했지만, 시장은 곧바로 이어진 파월 의장의 비둘기(통화 완화 선호)적 발언에 더 주목했다.

파월 의장은 “통화 정책 스탠스가 더욱 긴축적인 방향으로 가면서 (나중에는) 금리 인상의 속도를 늦추는 게 적절해질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 발언이 나오자마자 뉴욕 증시 3대 지수는 일제히 상승폭을 늘렸다. 금리에 민감한 기술주 위주로 구성된 나스닥지수는 장중 4% 이상 치솟기도 했다.

김지산 키움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미국의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이 7월에 마무리되고 인플레이션은 6월이 정점일 수 있다는 기대가 기술적 반등세를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베어마켓 랠리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불투명하다. 1970년 이후 미국 증시에는 총 7번의 약세장과 16번의 베어마켓 랠리가 있었다. 16번의 베어마켓 랠리에서 S&P500지수는 평균 12.7% 상승했다. 코스피지수 역시 베어마켓 랠리 구간에서 평균 15%가량 상승세를 보였다. 그러나 증시를 짓누르는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 우려는 여전히 시장 불확실성을 키운다. SK증권은 “현재 반등은 베어마켓 랠리”라고 진단하면서도 “상승장의 서막이라 판단하기는 이르다”고 밝혔다. 기업 실적 측면에서 봤을 때 지금 반등이 지속 가능하기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안영진 SK증권 애널리스트는 “유럽 국가들이 러시아 제재를 일부 푼다는 아이러니는 얼마나 현실이 팍팍한지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고용 없는 ‘진짜 침체’는 이제부터?

▷재고 급증·수요 둔화 우려 고조

일각에서는 ‘고용 없는’ 진짜 침체가 내년 상반기 중 닥칠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한다.

코로나와 정치적 변수가 맞물린 초인플레이션과 이를 잡으려는 긴축 정책이 갑작스레 진행되다 보니 실물 시장으로 충격이 전이되기까지 시차가 걸릴 것이라는 분석이다. 대부분 글로벌 기업은 당해 연도 사업계획을 직전 연도 말에 확정하고 적어도 원자재와 재고자산은 선물 계약 등으로 미리 헤지를 해뒀기 때문에 올 상반기는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올 하반기와 내년에도 지금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면 충격이 전염되는 속도가 점차 빨라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각종 소매 지표와 재고자산 회전율, 구조조정 등 침체의 전조가 목격된다는 점은 이런 시각을 뒷받침한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시장조사 업체 퀵과 팩트셋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전 세계 2349개 상장 제조업체의 올 3월 말 기준 재고는 전분기 대비 970억달러 증가한 1조8696억달러(약 2415조원)로 집계됐다. 증가폭과 총액 모두 10년 만에 최대치다. 재고 급증은 각국 기업이 공급망 병목 현상을 우려해 선제적으로 원자재 등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재고 증가를 무조건 부정적으로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초인플레이션과 강도 높은 긴축으로 전방 산업의 수요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게 문제다.

재고자산은 취득원가와 순실현가치(NRV) 중 낮은 금액으로 평가하는 저가법을 따라 장부에 기록한다. 정상적인 경제 상황이라면 대부분 재고자산은 NRV보다 낮은 취득원가로 기록된다. 선제적으로 재고를 매입한 덕분에 시장에서 평가받는 재고자산의 NRV가 상승했더라도 장부에는 원가로 기록되지 별도 평가이익을 기록하지는 않는다.

경기 침체 국면에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수요 침체로 재고자산의 NRV가 뚝뚝 떨어져 취득원가를 밑돈다면 재고자산평가손을 반영하게 돼 있다. 이는 손실 가능성을 최대한 보수적으로 반영하라는 회계처리의 대원칙 때문이다. 예를 들어 100원(취득원가)에 매입한 재고가 팔리지 않고 쌓여 있어 그 가치가 80원(NRV)으로 하락하면 20원의 재고자산평가손을 인식해야 한다. 이는 기업 이익을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실제 삼성전자·LG전자 가전제품의 북미 최대 판매처인 IT 쇼핑몰 베스트바이에는 재고가 쌓이는 중이다. 미국·캐나다 현지 매장 1000곳의 지난 1분기 매출은 1년 전보다 8% 하락했다. 매장에 나온 제품이 판매되는 데까지 걸리는 기간은 기존 60일에서 74일로 늘어났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디스플레이서플라이체인(DSCC)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올 2분기 재고 회전 일수(재고가 팔리는 데 걸리는 시간)는 평균 94일을 기록했다. 예년보다 2주가량 늘어난 수준으로 역대 최고치다. 제품을 만들어 시장에 내놔도 팔리는 데 걸리는 시간이 훨씬 더 길어졌다는 의미다.

고용 시장 위축 조짐도 엿보인다. 미국에서는 빅테크를 중심으로 고용을 축소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최근 전체 인력(18만여명)의 1%에 해당하는 인력을 감축하기로 했다. 구글은 올해 하반기 신규 채용을 줄인다. 애플은 퇴사자 자리를 채우지 않는 방식으로 인원을 늘리지 않기로 했다. 테슬라는 비용 절감 차원에서 자율주행 보조기능인 ‘오토파일럿’ 분야 직원 200여명을 해고했다.

근로자 사이에서도 감원 쓰나미를 우려하기 시작했다. 인력 서비스 회사인 인사이트글로벌이 지난 6월 미국 근로자 100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 78%가 해고를 염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명순영 기자, 배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70호 (2022.08.03~2022.08.0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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