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10년 족쇄'..이번엔 수술 성공?

배준희 2022. 8. 1.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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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업계는 '만시지탄' 한목소리

대형마트 의무휴업 규제 완화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대형마트 규제 완화는 소상공인 반발이 거세고 국회에서 법안 개정이 필요한 사안이어서 논의 과정에서 갑론을박이 오갈 것으로 보인다.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 논란이 들끓는다. 대형마트 규제 완화는 국회에서 법안 개정이 필요한 사안이어서 논의 과정에서 갑론을박이 오갈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

▶대형마트 규제 완화 급물살

▷소상공인 단체는 거센 반발

정부 당국에 따르면 최근 공정위는 대형마트의 새벽배송 제한 등 44건에 대해 규제 타당성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관계부처와 논의를 진행 중이다. 공정위는 매년 불공정 경쟁 논란이 제기되는 법규를 선별해 소관부처와 개선 방안을 협의해왔다. 통상 이견이 크지 않은 사안을 중심으로 관계부처와 논의를 벌였으나 올해는 대형마트 규제처럼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안건도 테이블에 올렸다. 과감한 규제 완화를 당부한 윤석열정부 정책 기조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유통 대기업은 자정 이후 새벽배송을 못하고 있어 관련 업계에서는 역차별 논란이 진작부터 들끓었다. 이들의 발목을 잡은 법안은 2010년 제정된 유통산업발전법이다. 이 법은 대형마트 영업시간을 오전 10시부터 자정까지로 제한하고 매달 이틀의 의무휴업일을 지정했다. 전통시장 반경 1㎞ 이내에 면적 3000㎡ 이상 대형마트 출점도 금지됐다. 법안 제정 당시에는 전통시장 인근으로만 대형마트 입점을 금지했으나 2012년 박근혜정부에서 경제 민주화가 화두로 대두되면서 영업시간 규제가 더해졌다.

이 틈을 타 이커머스 시장이 고속 성장하면서 마켓컬리나 쿠팡 등 온라인 쇼핑업체는 새벽배송이라는 차별화된 배송 전략을 들고나와 시장점유율을 크게 늘렸다. 반면, 오프라인 기반 유통 기업은 자정 이후 새벽배송을 못해 역차별 논란이 거셌다.

공정위 논의와 별개로, 지난 7월 21일부터 대통령실이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 최저임금 차등 적용, 휴대전화 모바일 데이터 잔량 이월 허용 등 국민 제안 10건을 선정해 온라인 투표를 진행한 것도 관련 논란에 불을 지폈다. 대통령실은 이 가운데 국민 호응이 높은 안건 3개를 뽑아 실제 정책에 반영할 계획이다.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가 10개 안건 중 1위를 달렸다.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서도 소비자 10명 중 7명(68%)은 ‘대형마트 영업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형마트 영업 규제의 정책적 효과를 둘러싼 찬반 주장은 평행선을 달린다. 소상공인단체는 이번 논란에 단단히 뿔이 났다. 최근 한국소상공인자영업자총연합회는 성명을 내고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은 2018년 대형마트 7곳이 낸 헌법소원에서 합헌으로 결정됐다”며 “적법성이 인정됐음에도 새 정부는 국민 투표를 통해 골목상권 보호막을 제거하고 대기업 숙원을 현실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유통분과(마트노조)도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기 휴무가 생긴 후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음에 행복을 느꼈다”며 “휴식권·건강권을 빼앗으려는 윤석열정부와 신세계·이마트를 규탄한다”고 비판했다.

▶‘골목상권 살리기’ 효과 미약

▷소매점 매출 증대 효과 없어

이번 규제 완화를 찬성하는 쪽 주장도 드세다. 대형마트 규제는 정치적 목적의 입법이었을 뿐 경제적 효과를 면밀히 고려한 것은 아니라는 게 산업계의 일반적인 견해다. 지난 2015년 대법원에서 대형마트 영업 규제에 관한 지방자치단체의 처분은 정당하다는 판결이 나왔지만 이는 각 지자체의 재량권 일탈·남용에 관한 판단이지 규제의 경제적 효과에 관해서는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관련 학계에서는 대형마트 규제를 통한 ‘골목상권 살리기’의 경제적인 효과에 관해 근거가 부족하다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설문조사를 인용한 연구 중 일부는 대형마트 영업제한으로 소매점 매출이 증대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실제 자료를 이용한 대부분 실증연구에서는 소매점 매출과 대형마트 영업제한 사이에 아무런 인과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관찰됐다. ‘대형마트 영업제한은 대형마트 매출을 줄이는 효과는 있었으나 그렇다고 소매점 매출을 늘리는 효과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다수 논문에서 관찰된 결과다.

가령, 2017년 서용구 숙명여대·조춘한 경기과학기술대 교수는 대전, 인천, 안양, 김포, 안산, 오산 등에 소재한 6개 대형마트 주변 신용카드 가맹점과 2010년 1월 1일부터 2017년 6월 30일까지 소비자 신용카드 거래 자료를 수집해 대형마트 영업제한 효과를 실증 분석했다. 그 결과, 대형마트 영업제한으로 줄어든 소비의 대부분은 온라인 구매, 백화점, 하나로마트 등으로 이전됐으며, 대형마트 소비자가 전통시장과 개인 슈퍼마켓으로 소비를 이전하는 현상은 일시적일 뿐, 장기적으로는 규제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로 눈을 돌려도 규모를 기준으로 일괄적인 영업 규제를 적용한 경우는 찾기 힘들다. 마트의 일요일 영업제한은 유럽과 일본에서 시행됐지만 지금은 대부분 규제가 큰 폭 축소되거나 아예 폐지됐다. 유럽에서는 종교적 관점에서 기독교 국가들이 일요일 영업제한을 실시했으나 이는 국내와는 입법의 목적 자체가 다르고 현재는 관련 규제가 크게 완화된 상태다. 그나마 국내와 비슷한 규제의 예로 일본의 ‘대규모소매점포법’을 꼽을 수 있다. 1973년 제정된 대규모소매점포법은 소매업 보호와 소비자 이익 보호 등을 목적으로 점포 면적 1500㎡ 이상의 대형소매점을 규제했다. 1978년에는 규제 대상이 점포 면적 500㎡ 이상으로 확대됐으나, 1990년 이후 소비자 반발로 규제가 점차 완화되면서 1998년에는 법 자체가 폐지됐다.

정진욱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2018년 한국규제학회에 낸 ‘대형소매점 영업제한의 경제적 효과’에서 “대형소매점 영업제한은 소비자 선택권을 제한하고 거래 비용을 높여 수요 측면 효율성을 악화시킨다”며 “설령 대형소매점 영업제한으로 형평성이 개선된다 해도 동일한 형평성 개선 효과를 내면서 효율성 훼손을 피할 수 있는 정책적 대안이 많으므로, 대형소매점 영업제한 정책을 형평성의 측면에서 정당화하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유통업계는 규제 완화를 반기면서도 새벽배송 허용에 대해서는 늦어도 한참 늦었다는 반응이다. 신선식품에 특화한 새벽배송은 별도 콜드체인과 전용 물류센터 구축을 기반으로 소비자 수를 빠른 속도로 늘려야 막대한 고정비를 감당할 수 있다. 특히 배송 반경이 좁은 신선식품 특성상 물류 네트워크 단위가 매우 좁고 흩어져 있어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은 시장이다. 이런 이유로, 자본력과 투자 타이밍이 매우 중요한 시장이지만 이미 마켓컬리와 쿠팡 등 온라인 유통업체가 대규모 설비투자로 진입장벽을 쌓은 상태다. 롯데와 GS 등 상당수 유통 기업은 새벽배송 사업을 철수했고 별도 온라인 유통 채널을 갖고 있는 SSG와 쿠팡, 마켓컬리 등만 피 말리는 점유율 경쟁을 벌이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기업 규모를 기준으로 한 획일적인 규제는 산업 성장을 가로막는 요인이라는 점에서 이제라도 관련 법안이 합리적으로 개정됐으면 한다”고 토로했다.

[배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70호 (2022.08.03~2022.08.0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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