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세 초등 입학 파장]학생·학부모 고려 없는 일방통행..거센 후폭풍
박순애 부총리 강한 의지 표명 "선택형 열어줄 것"
한글 습득, 학교 규칙 준수부터 조기 사교육 조장 우려도
학부모들은 학교폭력·따돌림 우려..대입·취업 불이익도
[아시아경제 한진주 기자] 교육부가 2025년부터 취학 연령을 1년 앞당기는 학제개편안을 추진하기로 하자 학부모와 교원들이 일제히 반발하고 있다. 사전 협의가 없었던데다 아이들의 학교 적응 문제에 대한 고려 없이 경제 논리에서 비롯된 정책이라는 점도 학부모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1일 사교육걱정없는 세상, 교사노동조합연맹, 국공립유치원교사노조, 사립유치원연합회 등 36개 단체는 1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앞에서 개편안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연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만 5세 조기취학은 유아 인지·정서발달상 부적절하며, 학부모들은 의무교육이 시작되는 시점을 본격적인 학습의 시기로 인지해, 조기 취학에 대비하기 위해 영유아단계부터 선행학습을 하는 과잉 사교육 열풍이 일어날 수 있다"며 "현재도 자녀의 초등학교 입학으로 직장을 포기해야 하는 부모들이 많은 상황에서 만5세 초등학교 조기취학 학제개편은 학부모들의 부담을 가중시킬 뿐"이라고 지적했다.
교육부는 지난달 29일 새 정부 업무보고에서 2025년부터 초등학교 취학 연령을 1년 앞당기는 학제 개편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25%씩 4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입학 연령을 확대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2025년에는 2018년 1월~2019년 4월생, 2026년에는 2019년 4월~2020년 6월생, 2027년에는 2020년 7월~2021년 9월생, 2028년에는 2021년 10월~2022년 12월생까지 입학하게 된다. 교육부는 학부모 사전 의견 수렴이나 교육청과 협의 없이 이번 내용을 발표해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이번 학제개편안을 발표한 박순애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의 정책 추진 의지는 매우 강하다. 박 부총리는 YTN과의 인터뷰에서 학제개편에 대한 반대가 거셀 경우 정책을 철회할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해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박 부총리는 "어머님들이 굳이 아니라고 하면 선택형으로 열어주는 것이며, 업무보고에서 정책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이 좋은 정책이 국가나 아이들의 미래에 혜택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연말까지 학제개편 시안을 마련하고 대국민 토론회, 공청회, 전문가 의견 수렴을 거쳐 국가교육위원회를 통해 최종안을 도출하겠다는 계획이지만 반발이 거세 추진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학부모들은 자녀들의 학교 적응 문제나 따돌림·학교폭력에 노출될 가능성, 대입이나 취업에서 경쟁 등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며 우려한다. 초등학교 취학 이후 점심을 전후해 수업이 끝나는데다 돌봄 공백이 크다는 점도 맞벌이 부모들에게는 큰 걱정거리다.
2019년생 자녀를 둔 학부모 이 모씨는 "놀이터 만 가봐도 나이 서열화가 심각하다. 한 교실에 7~8세를 함께 넣고 12년을 함께 지내게 하는것은 7세 아이들에게 너무 가혹하다"며 "유치원에서 2년을 배우고 온 아이들과 3년을 배운 아이들은 발달차이가 크고 그런 경험을 한 아이들이 주눅들 수 밖에 없다. 어린 아이가 포함된 교실에서 학교폭력도 더 심각하게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18·19년생 자녀를 둔 학부모는 "연년생 자녀가 같은 학년으로 입학하면 집에서는 누나라고 하고, 학교에서 뭐라고 불러야 하느냐"며 "수능도 형제자매끼리 경쟁해야한다는 게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초등학생 학부모는 "돈 벌 사람이 없으니 빨리 졸업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 교육격차 해소라는 명분은 설득력이 없다"며 "1년 빨리 학교에 들어갈수록 사교육만 더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 초등학교 교사는 "매년 1학년으로 입학하는 아이들이 학습능력이나 정서 면에서 예전보다 발달이 느려지고 있어서 파생되는 문제들이 많다"며 "1학년 학급 당 학생 수가 30명에 육박하는 곳이 많은데 만 5세까지 입학하게 되면 교육환경은 더 열악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교사노조도 성명서를 내고 "만5세 초등 입학 추진으로 교육부 장관과 대통령이 교육과정에 대한 기초적 이해가 전혀 없다는 사실에 경악했다"며 "누리과정, 초등교육과정은 대상자가 달라 교육과정 구성 방향도 다르다. 정부가 유아교육에 진정성 있다면 현재 유아교육을 의무교육으로 전환하는 것을 검토해야한다"고 촉구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설익은 정책을 발표하면서 무리하게 시도할 경우 사회적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시각이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부 교수는 "비용이나 취업, 대입 문제가 발목을 잡고 몇년 간 혼란이 발생할 수 밖에 없어 교육부가 결국 학부모들에게 선택권을 주는 방식으로 진행할 가능성이 크다"며 "입학 연령을 앞당기기 위해 교원이나 시설을 늘릴 경우 4년 후에 남아도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선택권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추진하려는 것인데, 이렇게 될 경우 입학유예를 하지 않는 해에는 최대 18개월~2년까지 차이나는 아이들이 함께 수업을 듣게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진주 기자 truepear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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