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성동, 원내대표직도 내놓는 게 옳다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데스크 2022. 8. 1.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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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마고우라면서 도움되긴커녕
국민에 소외감 주는 엘리트주의
경쟁 상대가 기껏 문정권인가?
국민의힘 권성동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지난달 29일 오전 당대표실을 나서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아만(조조의 아명)아. 네가 나를 얻지 못하였으면 어찌 이 문을 들어 서 보았겠느냐!”


관도대전(官渡大戰)에서 원소의 세력을 궤멸시킨 조조가 장수들을 거느리고 막 업성(鄴城)에 들어서는 길이었다. 죽마지우임을 자랑하던 허유가 말을 달려 다가오며 소리 질러 그렇게 말했다. 조조는 크게 웃을 뿐이었다. 허유의 허풍은 멈출 줄을 몰랐다.


[어느 날 허저가 말을 달려 동문으로 들어오려는데, 맞은편에서 허유가 말을 타고 오면서 말했다.


“너희들이 내가 아니더면 이 문을 이렇듯 출입해 보았겠느냐.”


허저가 노했다.

죽마고우라면서 도움되긴커녕

“우리가 천생만사(千生萬死: 천번만번 생사의 갈림길을 오감)하며 몸소 혈전을 무릅쓰고 이 성지(城池)를 얻은 터에 네가 어딜 감히 그따위 말을 하느냐!”


허유가 꾸짖는다.


“네까짓 필부들이야 말할 거리나 되느냐.”


허저는 크게 노하여 앞으로 달려들며 번개 같이 칼을 빼 한번 쳤다.


허유가 두 번 다시 입을 놀려보지 못하고 머리가 잘리어 말 아래 뒹군다.](나관중, 삼국지, 최영해 역)


‘윤핵관’이 여전히 세도를 부리고 ‘친윤그룹’이 여권을 주도하는 분위기다. 윤석열 대통령의 어릴 적 친구, 서울대 법대·검사시절의 선후배들이 핵심관계자 명부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고 알려졌다. ‘문재인 청와대’와 대립각을 세운 이후의 검찰총장 시절, 그리고 총장직 사퇴→정치권 진입→후보경선→대선 과정에서 눈에 띄게 조력한 정치권 안팎 인사들의 이름도 윤핵관·친윤그룹 명단에 물론 올라 있을 것이다.


이 사람들이 ‘윤석열 대통령 만들기’에 얼마만큼의 기여를 했는가를 다시 따져볼 필요가 있다. 정말로 큰 힘을 보탰는지, 소리와 몸짓만 요란했을 뿐 득표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던 건 아닌지, 되레 표를 깎아 먹은 측면은 없었는지를 밝혀내는 것이 정의의 원칙에 부합한다. 자기 몫이 아닌 것을 차지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될 테니까.


이에 앞서 해둬야 할 말이 있다. 정권교체는 문재인 정권의 연장을 원하지 않던 국민들의 염원과 투쟁의 결과였다. 그렇게 해서 성립된 윤석열 정부는지지자들만이 아니라 전 국민에 대한 헌신과 봉사의 중심체가 되어야 한다. 민주정치의 상식을 새삼스레 강조해야 하는 기분이 참으로 우울하다.


물론 대통령으로서는 자신이 믿고 일을 맡길 수 있는 사람, 그 능력을 직접 확인한 사람들을 요직에 기용하고 싶어 할만하다. 그래서 지역·학교·연령·성별 안배 인사는 안 한다는 원칙을 진작 공언했을 것이다. 지난 4월 10일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등 8개 부처 장관 내정자를 발표하면서 윤 대통령(당시 당선인) 자신이 직접 강조했었다.

“국가와 전체 국민을 위해 해당 분야를 가장 잘 맡아서 이끌어줄 분인가에 기준을 뒀다.”

업무 능력과 전문성을 중시하는 인사를 했다는 뜻이었다. 다음날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 부연설명 비슷한 언급을 했다.

“기본적으로 당선인은 전문성과 능력을 가장 중시하고, 대한민국 최고 에이스로 내각을 꾸리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국민에 소외감 주는 엘리트주의

자부심은 좋은데 허풍은 곤란하다. ‘최고의 에이스’라니? 윤 대통령에 의해 발탁되지 못한 인재들은 에이스 축에 들지 못한다는 뜻으로 들리게 마련이다. 대중민주주의 시대에 엘리트주의를 내세우는 심리적 배경이 궁금하다.


더 앞세워 해둬야 할 말이 있다. 국민에게는 ‘윤석열 대 문재인’ 대결 2라운드를 관전할 생각이 전혀 없다.

“과거에 민변 출신들이 아주 도배를 하지 않았나”(6월 8일, 도어스테핑).

“(능력적인 면에서) 전 정부와 비교할 바가 아니다. 도덕성도 전 정부가 밀어붙인 인사들을 보면 비교가 될 수 없다고 본다”(7월 4일 도어스테핑).

“그럼 전 정권에서 지명된 장관 중에 그렇게 훌륭한 사람 봤느냐”(7월 5일 도어스테핑).

인사와 관련, 부정적인 여론을 전하는 기자들에게 윤 대통령이 한 말이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정부 인사와 대통령 리더십의 새로운 패러다임 구축이지 문 정부와의 인기경쟁이 아니다.


엘리트주의는 윤 대통령의 입지를 점점 좁혀가는 악수(惡手)가 된다. 국민에게 소외감을 안기는 인사는 윤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지지철회를 초래한다. “잘난 사람들끼리 잘해보세요”라는 기분이 드는 데도 계속 기대하고 지지하는 국민이 얼마나 되겠는가. ‘탕평인사’가 덜 똑똑한 사람들의 입에서만 나오는 말이 아니다. 능력주의 인사도 중요하지만 민심이 흩어지지 않게 하는 인사, 소외감을 안기지 않는 인사는 더 중요하다.


그러지 않아도 문 정권을 거치면서 정치가 국민을 진영대결 구도 속에 끌어 넣어버렸다. 국민은 좌우로 갈려 서로에 대해 격렬한 증오심을 드러내며 대립하고 있다. 정치에 대한 최종적 심판자인 국민이 오히려 정치세력들에 의해 심판받고 조종당하는 해괴한 정치상황이 초래된 것이다.


정치인, 정치세력들은 그 극복책으로 ‘국민통합’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면서도 어떤 것이 통합인지는 말하지 않는다. 이념을 하나로 모으는 게 통합인가? 국민 모두가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을 지지하게 되는 것을 통합으로 여기는 건가? 불가능한 목표를 내걸고 그걸 해답이라고 하는 것은 국민 기만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차이를 인정하고 이해하고 존중하는 정치·사회 분위기의 조성이야 말로 절실하고 절박한 시대적 과제일 것이다.


(문 정권 때 저질러졌다고 주장되는 불법·비리 행위에 눈 감으라는 뜻이 아니다. 인류보편의 가치, 민주정치의 원칙에 반하는 권력작용이나 개인적·집단적 행위에 대해서는 엄징(嚴懲)이 필요하다. 그렇게 할 때에만 국민적 가치와 질서 체계를 바로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경쟁 상대가 기껏 문정권인가?

임기 초에 30%대도 무너진 여론 지지율은 윤 대통령에게 심리적 족쇄가 될 수도 있다. 민심이야말로 정권의 버팀목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엄한 꾸중으로 인식할 일이다. 지나치게 민감해서 허둥대는 건 안 좋다. 그러나 너무 무딘 인상을 주는 것은 더 나쁘다. 차분히 그러나 결연하게 민심회복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 첫걸음은 문 정권과의 경쟁의식 탈피다. 국민들이 그 정권과 씨름하라고 윤 대통령을 당선시킨 게 아니다. 더 원대한 꿈을 가지고 더 큰 걸음을 걸으라는 지지자, 나아가 온 국민의 소망에 부응해야 한다. 진정한 ‘선진 한국’을 만들어내는 것이야 말로 문 정권뿐만 아니라 역대 정권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길이다.


다음으로 요구되는 것은 엘리트주의 대신 화합주의적 인사·정치 기조의 확립이다. 사회는 엘리트, 에이스만으로 유지 발전될 수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깨달아야 한다. 능력자, 전문가 기용이 바람직하긴 하지만 이들을 윤 대통령과 측근들의 명부(名簿) 속에서가 아니라 국민 속에서 구하는 진지한 노력이 필요하다. ‘내 주머니 속의 인재’만으로 국정을 이끈다는 인상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다음으로, 그리고 당장 필요한 것이 윤핵관·친윤그룹으로부터의 해방이다. 윤 대통령으로서는 낯선 정치권에서 자신을 옹위하고 있는 사람들이 고마울 수도 있겠지만 이들의 존재야말로 여당인 국민의힘을 분열시키고 민심을 흩어버리는 요인임을 직시해야 한다.


윤 대통령과의 인연을 내세워 정치적 입지를 차지하고 다지려 하는 사람들은 무능력자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사람은 대통령에게 짐이 되고 정권의 걸림돌이 되기 십상이다. ‘친윤’의 득세는 당내에 광범위한 소외세력을 만들어내고 만다. 당의 구성원 모두를 친윤으로 만들어도 감당하기 버거운 게 지금 윤 대통령이 맞닥뜨린 국민신뢰의 위기다. 특정인이나 특정세력에 대한 직간접적 지지(혹시라도 그렇게 해왔다면)를 철회할 때 당은 단합된다.


윤핵관·친윤그룹에 속하는 사람들은 정치 전면에서 한 걸음 물러서는 것이 윤 대통령과 국민에 대한 예의다. 그 점에서 권 원내대표는 당 대표 직무대행직뿐만 아니라 원내대표직도 내놓는 게 옳다. 윤 대통령이 차고 있는 개인적 연고의 족쇄를 풀어줄 때에만 성공한 정권이 될 수 있다. 실패한 정권을 만드는데 일조해서 두고두고 나쁜 이름을 남기기보다는 성공한 정권을 만들기 위해 양보하는, 아주 쉽고 바른 길을 선택할 줄 아는 것이 곧 지혜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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