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대한항공 내 성폭력, 법원 "회사도 손해배상" 판결

소중한 2022. 8. 1.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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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법, 피해자에 '1500만원 지급' 선고.. "실효적 방지조치 미비, 가해자와 연대 배상"

[소중한 기자]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대한항공 본사(자료사진).
ⓒ 이희훈
 
"피고(대한항공)는 ◯◯◯(가해자)의 사용자로서 그 사무집행에 관하여 발생한 강간미수의 불법행위로 인해 원고(피해자)가 입은 정신적 손해를 ◯◯◯과 연대해 배상할 책임이 있다."

직장 내 성폭력의 기업 책임을 인정하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2단독(유영일 판사)은 지난 7월 21일 대한항공 내 성폭력 피해자 A씨에게 지급해야 할 손해배상액을 5000만 원으로 정하고 이 중 1500만 원을 대한항공이 지급해야 한다고 선고했다. 이는 손해배상액 5000만 원 중 가해자가 피해자와의 조정으로 지급한 3500만 원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이다.

재판부는 "성희롱방지교육 등 다수를 상대로 한 교육을 넘어서 실효성 있는 위험발생 및 방지조치를 제대로 하지 못한 (대한항공의) 감독상의 미비가 있었다"며 "강간미수 행위는 외형적, 객관적으로 피고(대한항공)의 피용자인 ◯◯◯(가해자)의 사무집행에 관하여 발생한 사고라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결했다.

휴가 중 사건, '업무 중 성폭력' 인정된 이유

2020년 7월 대한항공 사내 성폭력 피해자 A씨는 직장 상사인 가해자와 대한항공(대표이사 조원태·우기홍)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2021년 1월 재판부의 강제조정을 가해자만 받아들이면서 피고는 대한항공만 남게 됐고, 2년 간 진행된 1심 재판의 결과는 '대한항공의 1500만 원 손해배상금 지급'이었다.

재판의 쟁점은 가해자의 성폭력이 '대한항공의 사무집행에 관해' 발생했는지 여부였다. 민법 756조는 "타인을 사용하여 어느 사무에 종사하게 한 자(대한항공)는 피용자(가해자)가 그 사무집행에 관하여 제3자(피해자)에게 가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가해자의 성폭력이 업무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인정돼야 대한항공의 손해배상 책임도 발생한다는 뜻이다. 

특히 사건 당시 가해자가 휴가 중이었던 상황이라, 대한항공은 '가해자의 성폭력이 사무집행에 관한 것이 아니'란 주장을 내세웠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강간미수 행위가 비록 휴가 중 행해진 것이긴 하나 (가해자는) 원고에 대한 업무감독과 평정 등의 권한을 행사하는 자리로 복귀할 예정이었다"며 "(업무 관련) 설명을 빌미로 원고를 불러 (강간미수 행위가) 감행된 것이어서 그 배경과 동기가 외관상 업무와 관련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높은 위험군에 속할 것으로 보이는 ◯◯◯(가해자)에 대해 성희롱방지교육 등 다수를 상대로 한 교육을 넘어서 실효성 있는 위험발생 및 방지조치를 제대로 하지 못한 (대한항공의) 감독상 미비가 있었다"라며 "민법 756조를 그 존재 이유 중 하나인 피해자의 보호강화라는 취지와 함께 객관적으로 살피면 (가해자의) 강간미수 행위는 외형적, 객관적으로 피고(대한항공)의 피용자인 ◯◯◯의 사무집행에 관하여 발생한 사고라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피해자, '무징계 사직'도 문제삼았지만
 
 서울중앙지방법원(자료사진).
ⓒ 소중한
 
한편 이 소송에선 '가해자를 징계하지 않고 사직 처리를 한 대한항공에게 손해배상 책임이 있는지' 여부도 쟁점이었다. 피해자 측은 대한항공이 남녀고용평등법을 위반했다고 지적했으나 재판부는 "피해자의 동의하에 진행된 사직 절차"라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판결문에 따르면 피해자 측은 "남녀고용평등법과 대한항공의 취업규칙에 따라 (성폭력 발생 후) 대한항공이 가해자를 징계할 의무가 있었다"라며 "더욱이 (대한항공은 사내) 조사과정에서 모순된 변명을 하며 도리어 피해자를 비난하는 직원(가해자)을 징계하지 않았고 그 입장을 원고에게 알려주지도 않은 채 사직처리를 함으로써, (피해자는) 형사고소 등 권리행사를 할 기회마저 상실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이어 "피해자는 대한항공에게 철저한 조사 후 회사의 절차에 따라 처리해줄 것을 요청했을 뿐 무조건적인 사직에 동의한 것이 아니다"라며 "피해자가 사직에 동의했다고 가정해도 이는 대한항공이 잘못된 정보(조사 및 징계가 공개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고 무징계 사직에 응하지 않을 경우 소문 등 불이익이 초래될 것)를 제공해 착오에 빠지게 함으로써 원고는 회사의 의견에 적극적으로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재판부는 "(가해자가) 일부 세부항목에 관해 이의를 제기하긴 했으나 결론적으로 (성폭력의 사실관계에) 수긍했고, 나아가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고용관계의 종료로 결론지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징계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다는 피고(대한항공)의 입장에 면담 당일 사직서를 제출했다"며 "이는 징계절차를 밟아서 도달하는 해고와 결과의 면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어 "(가해자가) 일부 원고의 기억이나 생각과 다르게 진술한 부분은 있더라도 권고사직의 근거인 강간미수라는 결론적인 사실관계는 분명히 시인한 것"이라며 "원고의 동의하에 결정되고 진행된 직장 내의 사후처리절차(가해자의 사직)의 원칙과 방향을 달리 변경할 사유가 되진 않는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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