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주를 만난 사람들] 망상에 빠져 고통의 시간을 보내다 복음으로.. 행복 넘치는 삶으로 돌아와

2022. 8. 1.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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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한마음교회 간증 스토리


부모님은 태몽으로 용꿈을 꾸고 나를 낳았다고 특별나게 길렀다. 오빠들만 있고 딸은 혼자뿐이라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는 사이에 소통이 잘 되지 않는 아이가 되어갔다. 그러다 중3때 낯선 서울로 전학을 오며 어디에도 마음을 붙이지 못했다. 약한 몸은 더욱 나빠져 가슴에 불덩이가 있는 것처럼 꽉 막히고, 머리도 깨질 듯 아프고 밤엔 불면증에 시달렸다. 고등학교 때에는 공부의 부담과 스트레스로 탈모현상도 나타났다. 몸과 마음은 지쳐갔지만 그래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감사하게도 대학에 진학했다.

대학생이 된 언제부터인가 생각과 실제를 구분하지 못하는 망상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나를 너무 좋아하여 스토킹을 한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집안에 CCTV를 설치했다는 생각에 집안 활동도 자유롭지 못하고, 악몽과 가위 눌림에 시달리며 꿈과 현실의 구분도 늘 모호했다. 오빠는 ‘도대체 왜 그래? 뭐가 문제냐?’며 안타까워했지만 낯선 사람만 보면 망상 속 남자와 관련된 사람이라는 중압감에 어디서 무엇을 해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창밖에서 나를 감시한다는 생각에 밖이 보이는 내 방에 검은 비닐로 도배까지 했다.

환상은 점점 구체화되어 근처 명문대에 다니는 모든 조건이 완벽한 남자가 확실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결국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부모님이 정신과병원으로 데리고 갔고 1년간 약물치료를 했다. 중3때부터 시작된 이런 고통은 10년 넘게 나를 괴롭혔다. 어두운 방에 우두커니 혼자 앉아서 흐느껴 울고, 감정이 절제되지 않아 방문을 걷어차 부서지기도 하고, 메고 있던 가방을 길바닥에 내동댕이치는 비정상적 행동이 계속되자 부모님은 환경을 바꾸어주는 수밖에 없다며 아무 연고도 없는 인천으로 이사를 했다.

대학에서 컴퓨터를 전공하며 겨우 졸업을 하고 컴퓨터 회사에 들어갔다. 적응을 하지 못해 잠시 다니다 그만두고 큰 오빠의 권유로 두 번째 대학인 교육대학에 입학했다. 망상 속의 사람은 여전히 주변 어디에 있는 것 같았지만 애써 생각을 지우며 생활과 공부에 집중했다. 그런데 임용고시를 준비해야 하는 4학년이 되자 다시 마음이 요동치고 불안감이 최고조에 달했다. 그러나 이번만은 기필코 내 힘으로 극복하겠다는 각오로 뼈를 깎는 노력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당시 기독교 베스트셀러 책을 읽다가 ‘사랑’이란 단어가 눈에 딱 들어오며 하나님이 생각 나 친구를 따라 춘천한마음교회에 첫발을 디뎠다. 생각이 복잡하니 말씀도 거의 듣지 못한 데다 예수님의 부활 말씀은 너무 어려웠다. 사람이 죽었다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으로 의심은 끝이 없었다. 그러나 기필코 확인하겠다는 의지로 많은 기독교 서적, 성경, 로마와 유대의 역사서까지 읽었다. 그런데 부활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었다. ‘아! 부활이 사실이구나! 하나님이 살아계시구나!’는 고백이 터져 나왔다.

구약에 많은 예언을 주시고 성경대로 죽고 성경대로 다시 살아나셔서 하나님이심을 증명한 부활은 우리의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랜 시간 망상에 빠져 고통의 시간을 보낸 것은 누구 탓도 아닌 하나님을 버리고 내가 주인 되어 하나님을 대적했기 때문이다. “다시는 내가 주인된 죄를 짓지 않겠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내가 주인 되었던 죄를 용서해 주세요.” 진심으로 고백하며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했다.

더 이상 마귀가 넣어주는 생각에 끌려 다니지 않고 망상도 사라졌다. 소통이 되지 않던 인간관계도 주님의 사랑 앞에 녹아내리며 행복에 넘치는 삶으로 돌아왔다. 예수님을 모르고 자라는 귀한 아이들을 그냥 둘 수 없어 교실에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소아 우울증 증상으로 수업 중에 뛰쳐나가던 아이를 사랑으로 품고 도너츠를 사 주며 예수님을 전했다. 놀랍게도 우울증이 사라지고 다음 학기에 부회장으로 선출되어 리더십을 발휘했다.

‘하나님 안 믿어요. 그런 것은 없어요.’ 하던 전학온 탈북 아동은 일대일 학습지도에 놀이도 함께했더니 학교생활에 모범적으로 적응하며 수시로 다가와 말씀 공부하자고 한다. 또 미용실에서 만난 어느 분에게 고등학생인 아들이 사람을 너무 의식해 학교를 그만두었다는 얘기를 듣고 퇴근 후에 만나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가족 모두가 주님께 돌아오는 놀라운 일도 일어났다.

늦은 나이에 공동체의 축복 속에 결혼을 하고 시험관으로 세 쌍둥이를 임신했다. 의사는 셋은 무리라고 했지만 하나님이 우리 가정에 주신 귀한 선물이란 생각에 심한 입덧을 견디며 거의 누워 있다가 무사히 출산했다. 2달간 인큐베이터에 있었지만 친정 부모님의 도움으로 지금 건강한 5살이 되었다. 그런데 자라면서 아이들의 언어발달이 너무 느렸다. 문득 육아로 정신없이 사는 사이에 말씀과 기도를 놓쳤다는 생각에 유치부 예배와 주일예배를 사수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도 우선적으로 말씀을 전했고 아이들의 상태는 많이 호전되고 있다.

복음을 몰라 마귀가 주는 생각대로 끌려다니며 고통의 삶을 살아왔지만,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 지금은 삶은 힘들어도 마음은 늘 천국이다. 성격 좋은 사람, 분위기 메이커라는 얘기를 듣는 기쁨의 삶으로 변화시켜주신 하나님께 감사, 또 감사드린다.

정충민 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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