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의무휴업 10년..국민 57만명은 폐지에 힘 실었다
대형마트 의무휴업이 10년 만에 폐지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정부가 앞장서 규제를 바꾸겠다는 의지를 나타내고 있는 데다 소비자 여론도 우호적이어서 어느 때보다 규제 폐지가 가시권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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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넘은 규제…국민도 ‘폐지해야’
정부는 지난달 21일부터 열흘간 총 10개 안건을 ‘국민제안 온라인 국민투표’에 부쳐 상위 3건을 국정에 반영하기로 했다. 투표 마지막 날인 7월 31일 대통령실에 따르면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는 57만7415개의 ‘좋아요’를 받으며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 의무휴업은 2012년 골목상권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영업시간 제한과 함께 ‘유통산업발전법’을 통해 도입됐다. 규제는 이듬해 ▶매월 2회 의무휴업 ▶매일 0~10시 영업제한으로 강화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해당 규제가 전통시장 활성화로 이어지지 못한 채 소비자 불편만 가중한다는 지적이 일고, 최근 온라인 쇼핑이 일상화하면서 법 개정 필요성이 제기 돼 왔다.
규제 완화 움직임은 민간 주도 경제를 내세운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서 본격화했다. 국민제안 투표에 앞서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6월 말 대형마트들이 의무휴업일과 심야시간대에도 온라인 배송을 할 수 있는 방안을 규제 개선 과제에 포함해 산업통상자원부와 협의에 들어갔다.
주말 고객 많아, 매출 1조 증가 효과
대형마트를 운영하는 유통 대기업들은 정부발 규제 완화를 크게 환영하는 분위기다. 대부분의 의무휴업일이 둘째·넷째 일요일인데 주말 매출이 평일보다 많게는 두 배 가까이 많아 당장 실적 개선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NH투자증권은 의무휴업이 폐지될 경우 이마트 연간 매출이 9600억원, 영업이익은 1440억원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영업이익 순증액만 이 증권사가 올해 예상하는 영업이익(2630억원)의 절반을 훌쩍 넘는다. 이마트보다 점포 수가 적은 롯데마트 역시 연간 매출 3480억원과 영업이익 499억원이 증가할 것으로 봤다.
미래 성장에 필수인 e커머스(전자상거래) 사업 확장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현행법상 대형마트가 온라인몰에서 물건을 팔거나 새벽 배송을 하려면 별도의 물류창고를 만들어야 한다. 법제처가 ‘대형마트의 물류·배송기지를 활용해 온라인 영업을 하는 행위는 점포 영업을 하는 것과 같다’는 유권해석을 내렸기 때문이다.
정소연 교보증권 연구원은 “의무휴업과 영업시간 제한이 폐지된다면 대형마트의 기존 물류창고를 온라인 주문용으로 활용할 수 있어 온라인 매출확대와 비용절감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대형마트 관계자는 “10년 전 유통시장이 대형마트로 기운 운동장이었다면 지금은 쿠팡이나 마켓컬리 등 온라인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며 “유통환경이 크게 달라진 만큼 마트를 역차별하는 규제도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업계가 규제완화의 가장 큰 명분으로 삼는 건 소비자 편익 침해다. 실제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가 지난 6월 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67.8%가 대형마트 영업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특히 대형마트가 의무휴업일 때 절반에 가까운 49.5%가 온라인과 동네 슈퍼마켓 등 다른 쇼핑 채널을 이용하고, 33.5%는 ‘문 여는 날에 대형마트를 방문한다’고 했다. 대신 전통시장을 이용한다는 답은 16.2%에 그쳤다. 이에 경기도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은 유통산업발전법이 지자체장에게 부여한 재량권을 활용해 의무휴업일을 일요일에서 평일로 바꿔 운영하고 있다.
장관도 반대…법 개정 시간 걸릴 듯
반면 규제 완화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성명서를 통해 “대형마트 의무휴업은 건전한 유통질서 확립, 근로자의 건강권 및 대규모 점포 등과 중소유통업의 상생발전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이자 마지노선”이라며 “마지노선이 무너지면 골목상권과 전통시장이 위기에 직면하고 유통질서 확립과 상생발전이 후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도 지난달 28일 국회 업무보고에서 “코로나19 이후의 영향평가 없이 바로 (의무휴업 폐지를) 강행하면 안 된다”고 반대 의사를 밝혔다.
무엇보다 의무휴업 폐지는 법안 개정이 필요해 여야 합의를 거쳐 국회를 통과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경제 주체마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히는 만큼 일각에선 법 개정에 앞서 지자체별로 조례를 개정해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조정하는 게 현실적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에 대해 유통업계 관계자는 “대형마트는 체인 형태라 전국적으로 영업일이 통일돼야 소비자 혼선을 줄이고 신선식품 등 재고관리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며 회의적인 의견을 나타냈다.
우태희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은 “해당 규제는 일몰제로 5년 뒤 폐지할 예정이었는데 명확한 규제영향 분석 없이 계속 연장됐다”며 “외국에도 노동자 휴일권을 위해 주정부·지자체별로 휴업을 지정하는 경우는 있어도 특정 업태 전체를 강제적으로 영업 제한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그는 “10년간 산업 환경이 크게 달라진 만큼 이번 기회에 객관적인 연구를 근거로 업태별로 실효성 있는 지원책을 새롭게 마련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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