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성동 대표대행 사퇴..여당, 비대위 체제로
여당인 국민의힘이 집권 82일 만인 31일 지도부가 사실상 붕괴했다. 지난달 8일 이준석 대표가 ‘당원권 6개월 정지’ 징계를 받은 데 이어 권성동(사진) 원내대표마저 이날 당 대표 직무대행에서 사퇴하면서다. 비상대책위 체제로의 전환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권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페이스북에 “당이 엄중한 위기에 직면했고, 국민의 뜻을 충분히 받들지 못했다는 직무대행으로서의 책임을 통감한다”며 “직무대행으로서의 역할을 내려놓고 조속한 비대위 체제 전환에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이준석 대표의 징계 이후 직무대행 체제를 추인받은 지 20일 만이다. 다만 그는 원내대표직은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앞서 조수진 최고위원도 이날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각성과 변화를 요구하는 민심의 엄중한 경고에 책임지기 위해 최고위원직에서 물러난다”고 밝혔다. 그는 “바닥을 치고 올라가려면 여권 3축인 대통령실·당·정부의 동반 쇄신이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최고위원인 윤영석 의원도 이날 오후 “집권당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지도부의 일원으로서 큰 부끄러움과 안타까움을 느낀다”며 사퇴했다.
이로써 지난달 29일 사퇴한 배현진 전 최고위원을 포함해 이날까지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3명이 사퇴하게 됐다. 남아 있는 최고위원은 권성동 원내대표, 성일종 정책위의장, 정미경·김용태 위원 등 4명이다. 한 명 더 사퇴하면 과반이 지도부에서 물러나게 돼 사실상 ‘최고위 기능 상실’에 이르게 된다. 권 원내대표는 최고위원에서 물러나려면 원내대표직에서도 물러나야 하지만, 정책위의장인 성 의원은 이날 “직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놓아 최고위원직 사퇴는 시간문제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날 최고위원이 잇따라 사퇴하고, 권 원내대표가 직무대행직을 놓으면서 사실상 비대위 체제로 전환하는 데엔 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이 직·간접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비대위로 갈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주말 사이 당에 전달했다”며 “이런 방향으로 곧 당 상황이 정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참모는 “지금보다 더한 비상상황이 어딨냐”며 “현 상태를 계속 유지하는 건 어렵다는 게 윤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전했다. 국민의힘 관계자 역시 “주말 당 지도부 인사나 친윤계 등 여러 의원 사이에서 많은 대화가 오갔는데, 이 과정에서 윤심(尹心)이 자연스레 전달되지 않았겠느냐”고 전했다.
대통령실도 ‘비대위 불가피’ 윤 대통령 의중 당에 전달
비대위 체제 전환은 결국 조기 전당대회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차기 권력 투쟁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으로도 해석된다.
대선 승리로 정권교체에 성공하고 6·1 지방선거까지 완승한 집권당이 정부 출범 82일 만에 지도부 붕괴 사태에 직면한 건 사상 초유의 일이다. 표면적으론 지난달 27일 윤 대통령과 권 원내대표의 텔레그램 메시지 노출이 당 지도부 재편의 도화선이 됐지만, 기저에는 집권 초 윤 대통령 지지율의 급격한 하락이 근본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한국갤럽 조사에서 28%의 지지율에 그쳤다. 국민의힘 중진의원은 “지방선거 승리 후 당 핵심들은 당권 경쟁에만 몰두했고, 정부는 뚜렷한 성과 하나 보여주지 못한 채 대통령 지지율 20%대 추락이라는 민심 이반에 직면했다”며 “부끄러움을 넘어 치욕스럽다”고 말했다.
여권 일각에서는 권 원내대표가 대표 직무대행뿐 아니라 원내대표직에서도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친윤계인 김태흠 충남지사는 이날 페이스북에 “권 대행은 본인의 사심과 무능으로 리더십의 바닥을 드러냈다”며 “권 대행은 모든 직을 내려놓고 비대위 체제로 전환하라”고 촉구했다. 대선 시절부터 윤 대통령을 가까이에서 보좌해 온 한 국민의힘 중진 의원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협상을 잘못했을 때, 또 ‘이준석 징계’ 직후 지도부를 다 바꿨어야 했다”며 “빠른 시일 안에 윤석열 정부와 원팀이 될 수 있는 지도부를 새로 꾸려야 한다. 윤 대통령이 고꾸라지면 당의 총선도 무조건 필패”라고 주장했다. 대통령실의 한 참모는 ‘물을 마실 때 그 물이 어디에서 왔는지 생각한다’는 뜻인 음수사원(飮水思源)을 언급하면서 “권 원내대표가 윤 대통령의 뜻과 정권교체를 원했던 민심이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며 결단을 촉구했다.
당 안에서 시작된 개편의 불씨는 대통령실 참모진에게로 옮겨붙는 모양새다. 이날 국민의힘에선 “당은 물론 대통령실과 정부의 전면적 쇄신이 필요하다”(조수진 의원), “여당, 내각, 대통령실 세 축은 무능함의 극치”(김태흠 충남지사) 등 인적 쇄신의 사정 범위에 대통령실도 포함했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언론 브리핑에서 “그런 이야기는 저희가 주의 깊게 듣고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개편은 내부에서도 제기된다. 익명을 원한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이 20%대까지 떨어졌으면 참모들도 무한책임을 지려는 모습이 보이는 게 맞다”며 “다들 자리를 내려놓겠다는 결심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참모 중에는 윤 대통령이 대선 때인 지난 1월 “초심으로 돌아가 국민과 호흡하겠다”며 캠프를 ‘리셋’했던 사례를 언급하기도 했다.
다만 대통령실과 정부 인사의 교체는 성급하다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 “3개월은 성과를 보여주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라며 “지지율이 떨어진다고 무조건 갈아치우면 그다음엔 어떡하나”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실의 국정운영 기조는 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국민 신뢰를 회복하려면 정책 성과를 도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그러려면 원칙론만 고집하는 건 비현실적”이라며 “윤 대통령도 이를 잘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일훈·손국희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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