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 소통카페] 또 겨우 열린 국회의 문

2022. 8. 1.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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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기 한양대 명예교수·커뮤니케이션학

거리와 지하도에 늘어만 가는 폐업 점포를 보며 마음이 무거웠다. 사람들이 드나들던 생업의 터전은 문이 닫힌 채 우두커니 적막하였다. 임대를 놓는다는 알림과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는 힘에 부쳐 보였다. 가게 주인은 새까맣게 탄 가슴을 한 채 세상을 헤매고 있을 것이다.

‘늘 맨발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잃고 서는 새가 부리를 가슴에 묻고 밤을 견디듯이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으리라/ 아- 하고 집이 울 때/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맨발로 하루 종일 길거리에 나섰다가/ 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 같은 집으로 돌아오면/ 아- 하고 울던 것들이 배를 채워 저렇게 캄캄하게 울음도 멎었으리라.’ (‘맨발’, 문태준). 생계의 수단을 잃은 맨발 가장은 가게 문을 다시 열고 불을 밝혀서 ‘가족의 배를 채우고’ 따습게 살아보려고 안간힘을 다하고 있을 것이다.

「 고질병처럼 되풀이 ‘국회휴업’
국민보다 소속당 이익에만 혈안
문 닫는 동안 세비·특전 없애야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귀가하니 똑같은 뉴스가 한 달 넘게 물레방아처럼 반복되고 있었다. 국회 상임위원회와 위원장 배분 협상 실패로 국회가 문을 열지 못한다는 보도였다. 문 닫힌 점포들의 ‘견뎌내는 슬픔’과 ‘움막’ 같은 모습이 떠올라 분통이 터졌다. 코로나 사태, 고물가, 고금리, 불경기 때문에 상점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서민은 속이 타는데, 국회는 열려 있어야 할 문을 스스로 닫고 있는 것이다.

국회의 폐문이 돌발적인 발병이 아니고 상시적인 고질병이어서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그러나 고단한 서민의 삶과 나라의 장래를 위해서는 고쳐야 할 병이건만 환자는 그런 사실을 아는지, 또 그럴 의지가 있는지도 모호하니 걱정이다. 무소불위한 환자 자신이 고치지 않으면 누구도 고칠 수 없는 병이니 더 막막한 거다.

국회의원은 각자가 헌법기관으로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함’(헌법 46조 2항)으로써 ‘모든 국민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행복을 추구할 권리’(헌법 10조)를 충족게 하는 데 책임을 다해야 한다. 그러나 국민의 눈에 비치는 의원들의 모습은 ‘국가 이익’과 ‘국민 행복’이 아니라 ‘소속당의 이익’에 혈안인 독선과 아집의 화신이다. 안중과 행동에 국민은 없고 당과 자신의 영달만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많은 날과 시간을 쏟은 협상이 미타결 행진을 반복해도 국회의 공전에 대해 문제점을 비판하고 해결방안에 대해 의견을 내는 의원은 찾아볼 수가 없다. 협상에도 타협은 없고 주장과 비난만 있고, 책임감은 없고 책임 전가만 있다. 그들이 입에 달고 사는 ‘민생 국회’ ‘국민 행복’ ‘국민의 뜻’ ‘국민이 주인’과 같은 미사여구는 그래서 공허하다.

개원 협상을 하면서 타결을 약속한 많은 날짜에는 7월 17일 제헌절도 끼어 있었다. 국회가 본분을 수행하는데 무슨 특별한 날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제헌절이 어떤 날인가.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한 헌법을 제정하고(1948년 7월 12일) 헌법의 탄생을 공표한 날이다. 5대 국경일의 하나로 헌법에 따른 사회체제의 수호를 다짐하는 기념일을 걸고 한 약속도 못 지켰다. 자신들의 모태인 제헌절마저 모독한 꼴이다.

이번 협상은 지난달 22일 타결되었다. 후반기 국회 개회일로부터 53일이나 지체되었는데 내용은 특별할 것이 없다. 여야가 1년씩 번갈아 ‘과방위’와 ‘행안위’의 위원장을 맡기로 한 것이다. 국민은 물론이고 폐점 상가의 문들도 허탈할 수밖에 없는 수준이다. 국민의 인내는 냉소와 체념으로 바뀌고 있다. 이제는 국회가 ‘비정상적으로 국회의 문을 열지 않는 동안에는 세비와 자신들이 누리는 특전을 정지하는 법 제정’으로 반성해야 한다.

또한 이번 국회는 전반기 국회처럼 다수당이 국민의 여론과 절차를 무시하고 ‘회기 쪼개기’ ‘위장탈당’과 같은 법의 오용과 남용을 통한 ‘편법 입법부’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국회가 만들어야 할 법은 자기 당이나 의원 자신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물 같은 법’이다. 법(法)은 물 수(水) 변에 갈 거(去)가 합친 것으로 ‘물처럼 흘러가야 하는 것이 법’이라는 의미이다. 물은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흐르지만, 항상 그리고 결국 아래로 흐른다. 아래로 흘러야 국민의 가슴에 닿고 국민의 갈증을 풀어 줄 수 있다.

김정기 한양대 명예교수·커뮤니케이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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