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여직원 성추행 파면' 국정원 단장, 해임으로 징계 낮아졌다

조강수, 석경민 2022. 8. 1.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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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정권 간부 60여명 좌천 등 적폐 청산 주도했던 2급 단장
인사처장 재직 때인 2020년 6~7월 부하 여직원 성추행 비위
이듬해 피해자 신고, 감찰 조사 후 징계위서 파면 중징계 처분
소청심사위가 해임으로 낮춰 퇴직금 전액 수령..뒷배 의혹도

[편집자 주]

지난해 초 국가정보원 안에서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국정원 실세 간부가 부하 여직원을 성추행했다는 불상사와 관련된 것이었다. 국정원 요원들 사이의 입소문이 엄연한 현실이 된 건 극적인 순간을 맞으면서다. 피해자의 신고에 따른 내부 감찰 착수가 동력이었다. 감찰 결과를 토대로 국정원은 징계위원회를 열어 가해자를 파면(※소청심사위서 해임으로 감경) 처분했다. 이 사건은 지난 대선 막판에 불거진 박완주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3선) 등 진보 진영 인사들의 이중적 행태를 연상케 한다. 안이한 성의식과 성인지감수성의 민낯이 드러난 국정원판 성비위라는 시각도 있다. 국정원의 폐쇄적인 문화 탓에 세상 밖으로 알려지지 않았던 '국정원 간부 성추행 파면' 사건의 전말과 문제점 및 대책을 상·하로 나눠 싣는다.

문재인 정부 때 국가정보원 정문에 놓였던 원훈석. 윤석열 정부 출범 후 국정원 창설 당시의 원훈석(아래 사진)으로 전격 교체됐다. 뉴스1


국정원 간부 성추행 사유 첫 파면

"문재인 정부 막바지인 2021년 6월, 국정원 안이 '조용히 요동쳤다'. 국정원 내 요직 중 하나인 차장 직속 단장(2급) S씨가 1년여전 인사처장(3급) 때 부서 여직원(6급)을 성추행한 비위가 인정돼 파면 결정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파면은 공무원에 대한 최고 수위 중징계다."

최근 만난 국정원 직원의 귀띔은 충격적이었다. 국정원 2급 간부가 성추행으로 파면이라니? 1961년 중앙정보부(국정원의 전신) 창설 이래 초유의 일일텐데 슬그머니 묻혔다니?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해당 고위 간부의 이력도 충격이었다. 서훈·박지원 전 국정원장의 신임을 두루 받던 측근이었기 때문이다.

31일 중앙일보 취재에 따르면 S씨는 문 정부 초기 서훈 국정원장 부임(2017년 6월초) 직후부터 요직인 인사과장(4급)·인사처장(3급)을 잇따라 맡았다. S씨는 서 전 원장이 대북전략국 과장 시절, 소속 과의 막내 직원으로 근무한 인연이 있다. 2017년 9월 보수 정권 시절에 잘 나가던 2~4급 간부 60여명의 보직을 박탈하는 인사의 실무를 담당했다. 그들은 국가정보대학원에 교육 보내졌고 지방으로 좌천됐다. S씨는 이듬해 처장으로 승진했다. 정규 기수를 5기 이상 뛰어넘는 파격 인사였다. 박지원 원장 부임(2020년 7월말) 직후엔 단장으로 승진했다. S씨는 서 전 원장 라인인 노모 전 국정원장 비서실장의 감사관실 인맥 중 핵심으로 통했다. 노 전 실장이 대북공작국장(2018년 5월~2020년 7월)일때 대북 업무를 잘 모르는 감사관실 직원들을 대북공작국·방첩국·해외공작국 등의 인기 부서로 대거 배치하는 인사에도 관여했다. 노 전 실장 역시 문 정부 출범 후 1년만에 3급에서 1급으로 고속 승진했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고향 친구(전남 장흥)라는 점이 작용했다는 얘기가 많았다.

승승장구하던 S씨가 파면 중징계까지 받은 사유는 뭘까. 지난해 4~5월 진행된 감찰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0년 6월말 같은 부서 여직원을 일요일에 집무실로 불러내 추행하고 며칠 뒤 서울 근교로 데려가 차 안에서 추행한 것으로 인정됐기 때문이다. 감찰 과정에선 S씨가 단장 승진 이후에도 여직원을 지속적으로 괴롭혔는지 등에 대한 조사도 이뤄졌다고 한다. 성추행 발생과 여직원의 감찰 신고 사이에는 9~10개월의 시차가 났다. 감찰 조사 끝에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S씨에겐 파면이 결정됐다.

직원 강제추행 등의 혐의로 기소된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지난해 6월 29일 부산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재판부는 이날 오 전 시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2심에서도 "권력형 성폭행"이라는 이유로 징역 3년이 선고됐다. 송봉근 기자


S씨는 사무실 추행 의혹에 대해 "서로 감정적인 교류감이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지속적인 게 아니었다"며 "중요한 보직에 있던 공직자로서 부족한 부분이 있었기에 감수하고 책임을 졌다"고 말했다. 차 안 추행 의혹에 대해선 "상대방이 먼저 만나자고 하고 약속 장소를 본인 집이 있는 경기도 근처로 잡은 것인데도 제가 데려간 것처럼 몰아간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 정치적 이유로 불만이 있는 분들이 저를 겨냥해 그 일을 언론에 얘기한 것으로 안다"며 "과거 선례에 비춰볼때 그 정도(파면)까지 세게 나올 줄 솔직히 몰랐다"고 했다. 국정원 내에서 성추행으로 파면 징계를 받은 사례는 없는 것으로 안다면서다.

당혹스러운 건 감찰 조사 과정에서 같은 부서 5급 남자 직원도 피해 여직원을 상대로 성비위를 저지른 사실이 드러나 직위해제 후 징계 처분을 받았다는 점이다.

"파면은 과해" vs "사법처리 했어야"

S씨는 파면이 과했다는 입장이지만 그는 피해 여직원의 인사를 좌우할 수 있는 직속 상사였다. 대학교수와 제자간의 사이와 유사하다. 조직 내에서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저지른 성범죄나 성비위를 '권력형 성범죄(성비위)'라고 부른다. 성폭력범죄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10조(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에 따르면 '업무, 고용이나 그 밖의 관계로 인하여 자기의 보호, 감독을 받는 사람에 대해 위계 또는 위력으로 추행한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돼 있다. 처벌 수위는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다. 원래 검찰에 수사를 의뢰해야 할 사안인데 징계로 끝낸 것 자체가 봐주기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 국정원 관계자는 "문 정부 때 유독 성비위 사건이 많았고 국정원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는데 징계만 하고 쉬쉬했으니 뒷배를 의심하는 게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회 입법조사처의 허민숙 조사관(여성학 박사)은 "해당 사건이 내부 징계로 그친 배경에는 성추행 사건이 외부로 알려지는 걸 극도로 꺼리는 정보기관의 특성이 작용했을 수 있다"며 "피해자에게 내부에서 징계를 할 테니까 외부로 유출하지 말라고 입막음하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2개월간 뭉개다 감찰 착수" 의혹도

국정원의 감찰 조사, 파면 징계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고 한다. 직장 상사에 의한 성추행 피해 신고가 접수됐지만 사건 배당 자체가 늦춰졌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그 사이 국장과 처장급 윗선 및 동료들의 피해 여성에 대한 회유와 설득이 있었다는 게 국정원 관계자의 전언이다.

"성추행 신고가 들어오면 곧바로 감찰에 착수하는 게 정상이다. 감찰실에 사건을 배당하는 부서, 실제 조사하는 부서 등 3개처가 있었는데 배당이 두달간 늦춰졌다. 그 사이에 '꼭 처벌까지 해야겠느냐'는 설득이 있었고 피해자로부터 '형사처벌은 원치 않는다'는 진술을 받아 내부 감찰 및 자체 징계로 갔던 것으로 안다."

국가정보원은 지난 6일 문재인 정부 시절 발생한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과 '탈북어민 북송사건'과 관련해 각각 박지원-서훈 전 국가정보원장을 대검찰청에 고발했다고 밝혔다. 박지원 전 원장은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과 관련해 국정원이 공용전자기록 등 손상 혐의로 자신을 고발한 것에 대해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지난해 2월 당시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왼쪽)과 박 전 원장이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중앙통합방위회의에 참석해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외부에 알려지면 국정원 이미지에 상처가 날 것을 우려해 단도리를 했다는 것이다. 당시는 박지원 국정원장 때였고 S씨를 양아들처럼 아낀다는 서훈 전 원장은 국가안보실장으로 있었다. 본지가 국회를 통해 파악한 결과, 피해 여성 설득에 나섰던 국정원 직원들은 이후 승진하거나 좋은 자리로 이동했다. 사건 배당을 늦춘 부서장은 단장으로 승진했고 인사처 여직원 한명은 감찰실 4급 자리에 보임됐다. 국정원 관계자는 "단풍처럼 곧 활짝 피는 자리, 즉 '단풍직에 보임됐다'는 얘기가 나왔다"고 전했다. 또 다른 여직원 한명은 해외 공관에 파견근무중이다. 한편 피해 여성은 해외 학위 연수 대상자로 확정돼 최근 출국했다.
현직 국정원 직원은 "여러 명의 국정원 직원들이 피해자를 설득하고 이후 좋은 자리로 갔다면 일종의 부패 스캔들 아니냐"며 "당시 감찰실 라인, 설득 가담자와 승진자들을 전부 조사해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직 국정원 간부의 지적이다.
"문 정부가 '국정원 적폐청산 TF'를 만들어 인적 청산을 한다고 열을 올릴때 그 키를 쥐고 있던 처장은 딴짓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원래 북한이 요구하는 단골 메뉴가 '국가보안법 철폐', '주한미군 철수', '국정원 해체'였다. 어느 순간부터 '국정원 해체' 요구가 쑥 들어갔다. 이미 해체됐다고 보기 때문 아닌가. 정권 교체기마다 되풀이되는 '학살 인사' 악순환의 고리부터 끊어야 국정원이 바로 설 수 있을 것이다."

조강수·석경민 기자 pinej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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