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참전' 피델 라모스 전 필리핀 대통령 별세..향년 94세

피델 라모스 전 필리핀 대통령. [AP=연합뉴스]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군인 출신의 피델 라모스 전 필리핀 대통령이 향년 94세 나이로 31일 별세했다.

이날 일간 인콰이어러 등 현지 언론과 외신에 따르면 필리핀 국영방송 PTV가 라모스 전 대통령의 별세 사실을 알렸으며, 봉 레빌라 상원 의원도 성명을 통해 별세 사실을 확인했다.

라모스 전 대통령은 1992년부터 1998년까지 재임하며 필리핀에서 꾸준한 성장과 평화를 동시에 이룬 지도자로 평가받는다. 집권 기간 그는 경제를 개방하고 규제를 철폐했고, 필리핀은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였다.

군인 출신인 그는 자기과시에 적극적인 정치인들과 달리 조용한 인품으로 반대파로부터 “용기없는 인물”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는 마르코스 정권 시절인 1972년부터 1981년 사이 경찰 총수로서 반체제 인사 탄압을 지휘한 전력도 있으나, 1986년 후안 폰세 엔릴레 국방부 장관과 함께 20년에 걸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의 독재 시대를 끝내고 라손 아키노 여사를 대통령으로 옹립하는 데 기여했다.

피델 라모스 전 필리핀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라모스는 아키노 대통령 재임 중 합참의장과 국방장관을 지내며 7차례 쿠데타를 진압해 ‘민주주의 수호자’로 거듭났고, 아키노 대통령의 지지 속에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필리핀이 급격한 변동을 겪는 와중에도 흔들리지 않아 ‘확고한 에디'(Steady Eddie)’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불을 붙이지 않은 시가를 문 모습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가톨릭 신자가 80%에 가까운 필리핀에서 첫 개신교인 대통령이기도 하다.

1928년 3월 18일 마르시소 라모스 전 외무장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미국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건축공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필리핀군에 자원 입대한 그는 한국전쟁 당시 필리핀군 제20대대 수색중대 소대장으로 참전했다. 1952년 1월 전선에 배치된 그는 그해 5월 강원도 철원의 ‘이어리(Eerie) 고지’에서 벌어진 중공군과의 전투에서 전공을 세워 이승만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부대 표창을 받기도 했다.

이보람 기자 lee.boram2@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