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유사시 대비한다..반도체로 뭉친 美·日
미국과 일본이 차세대 반도체 개발을 위해 손을 맞잡는다. 대만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공급 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올해 안에 일본에 연구 개발 시설을 짓고 시범 제조라인을 설치할 계획이다. 목표는 2025년 2㎚(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반도체 생산이다. 이 분야 세계 최고인 대만 위탁생산(파운드리)업체 TSMC의 목표와 같다.
미국과 일본의 외교장관과 경제장관은 지난 29일(현지시간) 미 워싱턴DC에서 ‘경제판 2+2’로 불리는 미·일 경제정책협의위원회(EPCC)를 열었다. 미국 측의 토니 블링컨 국무부 장관과 지나 러먼도 상무장관, 일본 측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일본 외무상과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경제산업상은 이날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4명의 장관은 양국이 양자컴퓨터나 인공지능(AI)에 필요한 차세대 반도체 개발을 위해 공동 연구센터를 설립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성명에선 구체적인 계획이 공개되진 않았다. 하지만 31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연구센터는 올해 일본에 지어질 예정이다. 일본 최고 국책연구기관인 산업기술종합연구소나 이화학연구소와 국립대학인 도쿄대 등이 센터에 참가한다. 미국은 국립 반도체기술센터(NSTC)의 장비와 인재를 투입한다. 연구센터는 2025년까지 2㎚의 반도체 양산을 목표로 삼는다.
반도체는 회로 폭이 좁을수록 고성능이고 전력 소비도 적다. 2㎚는 아직 이 분야 세계 최고 기술을 가진 삼성전자와 TSMC도 상용화에 성공하지 못했다. 삼성전자가 지난 25일 세계 최초로 3㎚ 공정을 통한 파운드리 제품 양산에 성공했고, TSMC도 올해 하반기 3㎚ 제품을 내놓는다. 미국과 일본 반도체 연구의 최종 목표가 ‘대만과 한국 따라잡기’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미·일 두 나라가 뭉친 건 반도체 생산에서 대만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로이터통신은 10㎚ 미만 첨단 반도체 생산 능력은 TSMC 등 대만 업체가 90%를 차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사히신문은 “중국의 대만 침공 등으로 대만이 위기 상황에 빠질 시 미국과 일본에 반도체 공급이 중단될 위험이 있다”며 “대만 의존을 조금이라도 낮추는 것이 경제 안보상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첨단 반도체는 스마트폰, 자동차뿐 아니라 인공지능(AI), 5G 통신, 사물인터넷(IoT) 등 미래 산업에 필수적인 전략 자원이기 때문이다.
러몬도 상무장관은 “반도체는 양국 경제와 국가 안보의 핵심축”이라고 강조했다. 요미우리신문은 “미국은 반도체 설계와 개발, 일본은 제조 장치와 재료에 강점이 있다”며 “양국이 서로 보완해 첨단 제품을 개발하겠다는 목표가 있다”고 전했다.
두 나라는 거액의 투자도 준비 중이다. 미 하원은 지난 28일 2800억 달러(약 366조원)를 투자해 반도체 산업을 중점 육성하는 '반도체 칩과 과학 법'을 처리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조만간 법안에 서명할 예정이다. 법안엔 반도체 칩을 제조하는 기업에 520억 달러(약 67조8000억원)의 보조금과 추가 세금 공제를 제공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를 통해 TSMC와 삼성전자 등 미국에 생산공장을 지은 해외 기업이 혜택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법안의 궁극적 목표는 한국·대만 의존도 줄이기다. 뉴욕타임스(NYT)는 “법안은 미국의 반도체 제조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전했다.
일본도 대규모 자금을 투자하기로 했다. 일본 정부는 최근 일본 반도체 기업 키옥시아가 미국 기업 웨스턴디지털과 함께 미에현 욧카이치시에 건설 중인 반도체 공장에 최대 929억엔(약 8900억원)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닛케이는 일본이 향후 10년간 1조엔(약 9조6000억원)의 연구개발비를 확보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두 나라가 한국과 대만의 도움 없이 첨단 반도체 개발에 성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를 의식한 듯 하기우다 경제산업상은 “연구센터에는 같은 생각을 가진 다른 국가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개방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일본은 한국과 대만의 정부 연구기관과 민간기업에도 협력을 요청할 계획이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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