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미 박사의 성경 속 이야기] 베다니 마리아의 나드향유

2022. 7. 31.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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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미 박사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막 14:9)

베다니(Bethany)는 예루살렘성에서 동쪽 여리고로 가는 길목인 약 3㎞ 지점의 감람산 남동기슭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다. 현재 지명은 ‘엘 아자리에’(el-Azariyeh)라고 불리며 ‘나사로의 집’이란 뜻이다.(이곳은 죽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난 장소이기도 하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주님의 발에 향유를 부어 죽음을 목전에 둔 그 분의 마음을 헤아렸던 한 여인, 베다니의 마리아이다.

A.D. 30년 봄 산헤드린 공회에서 가야바가 “한 사람이 그 백성을 위해 죽으리라”고 예언한 후(요한 11:47­53) 주님은 베다니의 나병환자였던 시몬의 집을 방문하셨다. 시몬은 나사로의 친구이거나 친척이었을 것이다. (한때) 죽었던 나사로도 주님 옆에 앉았다. 그곳에서 주님을 위한 잔치가 베풀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예전엔 문둥병자였지만 깨끗이 치유함 받은 시몬과 그리고 얼마 전 무덤에서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소생, 부활(?)한 나사로를 기억하면서 조금 들뜬 기분으로 잔치음식을 나누었을 것이다.

흥겨운 저녁 만찬의 분위기가 무르익어가고 있을 때에 향유 항아리를 든 한 여인이 등장했다. 그 여자는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 주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분의 발을 씻겨드렸다.(당시 유대인은 특별히 초대한 손님의 머리에 기름을 부어 존경심을 표현했다고 한다.) 마리아는 항상 주님 발아래 앉아 목마른 사슴과 같이 그 분의 말씀을 기다렸다. 그녀의 믿음은 주님이 머지않아 죽음을 맞이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마태 26:12) 그러나 제자들은 (그것을) 믿지 아니하였다.

마리아는 가장 큰 슬픔에 빠져있을 때 주님도 눈물을 흘리시고 긍휼을 베푸셔서 오빠인 나사로를 살려주셨다. 마리아는 주님의 장사할 날을 위해 값비싼 향유 옥합을 고이 간직해두었다. 그녀도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요한 11:32)라고 말씀드렸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녀가 하려고 하는 일은 소중한 친구들(혈육)과의 만남도 아니며 또한 자신의 필요한 간청을 토로하는 것도 아니었다. 더 나아가 주님께 세상의 시험과 유혹에서 이길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얻고자 나온 것도 물론 아니었다. 오직 그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의 전부를,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아 포로로 만드신 그 분께 아낌없이 부어드리기 위해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두려움 없이 나왔다. ‘오직 주님’ 만이 그녀의 영혼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진정한 예배자의 모습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Arthur W. Pink)

그런데 제자 중 하나인 가룟 유다가 말하길,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요한 12:5)고 비난했다. 성경에 기록된 최초의 그의 말이다. 그는 자신의 비천한 탐욕을 자선이라는 가면아래 숨기려 했다. 주님이 잡히시던 그날 밤에도 배신자 유다는 주님께 위선적인 입맞춤을 하였다.(마태 26:48) 주님을 배반하는 자가 (어찌) 마리아의 아름다운 봉헌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마치 장미덤불 뒤에 사악한 뱀이 도사리고 있는 장면과 같지 않은가? 예컨대 그녀는 삼백 데나리온의 나드향을 주님께 바쳤지만 도둑인 유다는 그 후 주님을 은 삼십개에 팔았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주님 인격의 향기에 집중하게 했지만 반항자 유다는 그들의 관심을 소위 ‘가난한 자들’에게 돌리게 했다. 이른바 성령께서 마리아를 감동시키사 주님의 장례를 위해 향유를 붓게 하신 바로 그때에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 향유를 팔아야 한다는 주장은 분명히 사탄이 유다의 마음을 부추긴 망령된 행동이었다.(신약에서 이 사건은 마태와 마가에 의해서도 기록되었다. 하지만 요한 사도만이 주님께 향유를 부은 여자의 이름과 함께 그녀를 책망했던 자가 누구인지 밝히고 있다.)

가룟 유다와 제자들 및 초대받은 다른 손님들은 그녀의 행동을 오해하면서 꾸짖었지만 주님은 그녀의 뜨거운 사랑의 선물을 허락하셨다.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해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요한 12:7) 마리아는 마치 술람미 여인과 같이 “왕이 침상에 앉았을 때에 나의 나도 기름이 향기를 뿜어냈구나”(아가 1:12)라고 예언한 노래를 무의식적으로 성취시켰다. 요컨대 사랑은 가장 값비싼 나드향 마저도 그 분의 존재에 비해 보잘것없는 것이라고 평가하게 만든다. 또한 사랑은 아무리 많은 것을 주어도 오히려 부족하다고 생각하게 한다. 그래서 사랑의 희생은 결코 낭비가 아니다. -요한은 그녀가 주님의 발에 향기로운 향유를 부었을 때 눈물을 흘렸다고 기록하진 않았으나 (그녀가) 자신의 긴 머리를 풀어 그 분의 발을 씻겨드렸을 때 진주와 같은 눈물방울도 함께 부어드리지 않았을까? 느껴진다.-

맺음말: 이 세상에서 우리도 주님을 증언하도록 특권을 부여받은 사람들이다. 그 분의 고난에 동참할 수 있도록 선택받은 사람들이다. 마리아가 주님의 장례를 위해 (미리) 그 분께 향유를 가지고 왔듯 말이다. 그러나 그녀가 주님을 향한 순수한 사랑을 고백할 수 있는 기회를 붙잡지 않았더라면 그 기회는 (다시) 얻지 못했을 것이다. 성도인 우리도 마찬가지다. 보다 더 거룩한 열정을 가지고 주님의 구원하심의 역사를 담대히 선포할 수 있는 기회를 잘 분별할 수 없다면 그것은 곧 지나가 버릴 것이다. 다함이 없는 그 분의 신실하심이 우리를 끝까지 강권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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