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이 정녕 도시에서 소외된 뒷방이란 말인가

이영천 2022. 7. 31.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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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전유 공간, 낙원동과 송해길을 찾아

오랜 시간 삶의 ‘흔적’이 쌓인 작은 공간조직이 인접한 그것과 섞이면서 골목과 마을이 되고, 이들이 모이고 쌓여 도시 공동체가 된다. 수려하고 과시적인 곳보다는, 삶이 꿈틀거리는 골목이 더 아름답다 믿는다. 이런 흔적이 많은 도시를 더 좋아한다. 우리 도시 곳곳에 남겨진 삶의 흔적을 찾아보려 한다. 그곳에서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를 기쁘게 만나보려 한다. <기자말>

[이영천 기자]

이곳에 서면 도도한 시간의 흐름이 날로 전해 온다. 허허로운 일상을 보내는 노년 세대가 점유한 공간은, 마치 뒷물에 밀려 하구에 다다른 강물처럼 보인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이 풍경 속 출연자는 분명 우리로 대체되어 있을 것이다. 시간이 만들어 낼 흐름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소비하는 도시공간이 이채롭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 한 시점에 멈춰 서버린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오래된 흑백사진처럼, 한 세대 전 모습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다.
 
▲ 낙원동 전경(1983) 공원을 빙 둘러 'J'형상으로 들어선 상업시설(파고다아케이드)과 종로 대로변에 선 건물이 보임. 주변 모습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아 시간이 멈춘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 서울역사박물관
 
도시에서 지대(地代) 지불 능력은 소비행태 및 구매력이 결정한다. 따라서 지대가 구획한 공간조직은 세대별 특성을 부각시키려는 경향성을 띤다. 전유 공간 형성이다. 이런 공간은 반드시 배타성을 갖게 되며, 이는 한 공간에 형성된 그 세대의 문화와 공간소비 행태로 치환되어 유기체적 흐름으로 변화한다.
 
▲ 송해길 북단 종로3가역 5번 출구에서 남쪽으로 바라 본 송해길. 7월 폭염에 거리가 낮잠을 자는 듯하다.
ⓒ 이영천
 
홍대 앞이 20∼30대 공간이듯, 이곳도 시니어 공간으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탑골공원을 위시한 낙원동 일대 '송해길'이라 명명한 곳에 형성된 특이한 공간조직이다. 일종의 '환원 공간'인 셈이다.

노년이 채운 공간

언제부턴가 탑골공원에 은퇴한 노인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노년 문화가 생겨났다. 바둑이나 장기를 두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는 열띤 목소리로 시국 강연하는 연사가 있었다. 악기를 연주하거나 직접 서화를 그리고 써 현장에서 판매하는 부류도 있었다.

물론 크고 작은 일탈도 빠지지 않았다. 음주와 다툼은 물론, 빙산의 일각이겠으나 노인을 대상으로 매매춘하는 '박카스 아줌마'가 사회적 조명대상으로 부각하기도 했다. 그래도 공간조직은 대체로 평온했고, 한낮의 느슨한 활력이 공원과 주변을 지배하고 있었다. 노인들 간에도 장애는 없어 보였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처지를 공감하는 보이지 않는 느슨한 관계망이 형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세상은 이들을 터부시했다. 이들 사이에도 욕망이 작동하는 엄연한 하나의 '사회'라는 사실을 외면하고, 자꾸 밀쳐내려 했다. 또한 이 공간을 타자화하며 지우려 했다. 집단으로 모인 이들 행태를 곁눈으로 흘겨보며 비난하기 바빴다.

이렇듯 이곳은 소외된 도시의 '외딴방이거나 뒷방' 취급을 받아 왔다. 월드컵 개최를 빌미로 서울시는 운현궁 맞은편에 '서울노인복지센터'를 지어 이들을 수용할 의지를 내보인다. 명분은 탑골공원 성역화 사업이었다.
 
▲ 서울노인복지센터 운현궁 맞은 편에 21세기 초 들어선 노인복지기관. 탑골공원 노인을 수용하려는 의도였으나, 명백한 한계를 보임.
ⓒ 이영천
 
물론 서울노인복지센터 프로그램은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무척 훌륭하다. 식생활에서부터 건강, 취미, 교육은 물론 취업 알선까지 이 시대 노인들이 당면한 제 분야를 망라한다.

그러함에도 탑골공원에서 밀려난 노인들이 종묘공원으로 자리를 바꿔, 하루 2∼3천 명씩 모여들었던 현상은 왜 일어났을까? 이들을 관리와 통제대상으로 상정하고 일정 공간에 '가두어' 두려 한 서투른 행정이, 시작부터 이미 절반은 실패한 건 아니었을까?

이제 탑골공원이건 종묘공원이건 수천이 군집하던 모습을 찾기는 쉽지 않다. 코로나19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두 공원이 갈 곳 잃은 그 많던 노인들을 어디론가 다시 쫓아버린 셈이다. 그러나 두 공원 주변엔 적잖은 수의 노인들이 지금도 모여들고 있다.

설 자리가 없는 노년

노인은 누구이며, 노인이 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딱히 법이나 제도로 규정되어 있진 않으나 '반강제로 경제활동을 끝내야만 하는 연령대'로 규정하는 게 타당해 보인다. 다니던 직장을 내 뜻과 무관하게 그만두어야만 하는, 정년을 맞이하는 시점으로 간주하는 게 사회통념이다. 생물학적 노쇠는 물론 생리적, 심리적으로 급격한 퇴화가 밀려드는 시점이기도 하다. 만 65세 이상을 노인으로 보고 있다.
 
▲ 일상풍경 낙원상가 왼쪽 전면, 탑골공원 북쪽 빈터에서 일상으로 벌어지는 풍경.
ⓒ 이영천
 
현재 구백만 명인 노인 인구가, 2032년 천사백만 명으로 예측된다. 급격한 노령사회로의 진입이다. 대중교통 이용요금이 면제된다. 나라에서 지급하는 얄팍한 연금에 의존하는 전혀 다른 세계로 생활행태 천이가 강제된다. 노인 빈곤이다. 불과 1백여 년 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나락이 펼쳐진 것이다.

노인이 핵심이던 대가족체제가 산업화 이후 급격히 해체되고, 그 자리를 핵가족화한 도시형 가구 구성이 차지했다. 이는 노인의 권위와 경륜은 물론 안락한 노후마저 보장해 주지 못했다. 노환이나 병이 찾아들면 요양원이나 병원에 갇혀 자식이 부담하는 화폐 단위에, 언제가 끝일지 모르는 여생을 저당 잡혀야 하는 처지로 내몰렸다. 잉여 존재로의 전락이다.

이 길에서 누군들 예외이겠는가? 강의 뒷물은 항상 앞 물을 밀어낸다. 지금의 물은 어제의 그 물이 아니다. 세대도 마찬가지다.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묻는다. 그대는 효용가치가 영원한 존재로 살아남을 것이라 자부하는가?

그래도 작동하는 공간조직

이곳 노인들은 대체로 이중의 존재 의식에 사로잡혀있다. 물리적 신체나이는 물론 사회·경제적으로 도태된 상황을 심리적으로 거부한다. 이곳에 나와 있어도, 스스로는 철저히 '관찰자'라 여긴다.

빈한한 경제 능력에 무료급식소를 이용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과거를 살아낸 시간에 의식의 끈을 묶어 두고 있다. 열정적이던 과거 자신의 모습을 현재 시공간에 끊임없이 투영시킨다. 분명 현실과 괴리된 몽상임에도, 이런 의식이 이곳을 노인 전유 공간으로 변화시킨 힘이라 여겨진다.

이곳은 변화하는 도시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 '나이 듦'은 속도와 반대개념이다. 따라서 이 공간도 사라질 위험성에 항시 노출되어 있다. 그러함에도 이곳에 작동하는 나름의 법칙이, 이 공간을 지켜줄 최후 보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구매력한계에 따른 지대 때문이다. 지대가 배타적 노인 전유 공간으로 살아남게 한 핵심 요소다.
 
▲ 허리우드클래식 실버 전용 영화관으로 이용료가 저렴하며, 낙원동 일대 노인 문화의 대표적 상징이다.
ⓒ 이영천
 
음식값이 무척 저렴하다. 20세기 말에 형성된 가격대가 아직도 지켜지고 있다. 무료급식에 의존하기 싫은, 최소 지불 의사와 자존심을 지키려는 노인이 주로 이용한다. 이발소가 그렇고 목욕탕이 그러하며 아주 값싼 커피값이 또한 그렇다. 술집과 간이주점이 그렇고, 패스트푸드 주 고객마저 이들이다. 낙원상가에 있는 영화관 허리우드클래식이 '실버 전용'으로 운영되는 사례가 대표적 본보기다.
탑골공원 북측 빈터에선 바둑과 장기 대결이 일상이다. 이곳을 중심으로 경운동, 봉익동, 돈의동과 피맛골 등지 골목을 소비하는 걸음도 마찬가지다. 이렇듯 공간조직은 여전히 살아 퍼덕이고 있다. 속도와 무관하게 지나간 젊음을 회상하며 느리게 변해가는 철저한 '환원 공간'으로 생존해있다.
 
▲ 공터 간이주점 탑골공원 동측 담장과 송해길 사이에 형성된 간이주점. 잔술을 팔고 있으며, 대낮임에도 이용자가 상당수다.
ⓒ 이영천
 
외부자 시선에 포착된 몇몇 스틸컷은, 이 공간이 오히려 넘쳐나는 활기를 버겁게 껴안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아직도 숨 쉬며 살아있는 존재라는, 감출 수 없는 욕망을 품고 있다는, 다가오는 미래를 내 것으로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의지를 이들은 결코 숨기려 하지 않는다. 온갖 욕망을 이 공간에 그대로 투영시키고 있다. 모두 한때는 찬란한 시절을 구가하던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잉여 존재로 밀려난 '노인'들이 점유·소비하는 장소기억이다.

'송해길'이 가진 힘으로

지난 6월 방송인 '송해'씨가 타계했다. 1985년 낙원동에 자리한 '원로연예인상록회'가 사랑방 역할을 맡게 되면서, 고인은 이곳 주민들과 깊은 유대관계를 형성한다. 낙원동 일대에서 일상생활을 펼쳐나간다.
 
▲ 송해길 상징 최근 타계한 송해 씨 흉상과, 그를 추모하는 화환이 놓여 있는 종로3가역 5번출구 송해길 상징 장소.
ⓒ 이영천
 
이곳을 활성화하려는 그의 여러 봉사와 노력이 주민들 지지를 얻게 되었고, 주민들 요청으로 명예도로명인 '송해길'이 2016년 탄생하였다. 수표로 북쪽 끝 240m 구간으로 종로2가에서 종로3가역 5번 출구까지다. 이곳이 아슬아슬한 노년의 삶을 보듬어 주며, 이들을 젊은 시절로 환류시켜주는 공간이다.
공간조직은 대체로 소탈하고 허름하며, 좁은 골목마다 점포가 상당수다. 꼭 노년만을 위한 점포들도 아니다. 젊은 세대도 얼마든지 이용할 넉넉한 품을 갖췄다. 젊은이들이 이곳을 찾아 자연스레 지혜와 경륜을 엿보고 익힌다면, 지금보다 더 너른 품의 '어른 공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지 않을까.
 
▲ 송해길 남측 초입 종로에서 송해길로 드는 초입. 보도에 문을 세워 명명한 길을 표현하고 있으며, 오른쪽 붉은 집이 시인 박인환이 운영했던 '마리서사' 서점 자리.
ⓒ 이영천
 
자본과 도시 권력의 촉수는 현재 진행형으로 이곳 역시 개발 압력이 상당하다. 최후 보루라 할 수 있는 낙원상가가 한때 존폐위기에 놓이기도 했었다.

'송해길'은 지역주민들 힘으로 탄생하였다. 모두가 공존하자는 지혜가 담긴 제안이었고, 한 대중문화예술인의 삶과 헌신에 대한 보답이었다. 송해길이 무자비한 자본의 개발 압력으로부터, 이 공간조직을 든든히 지켜내는 힘이 되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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