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 북클럽] 올 여름 휴가를 풍성하게 만들어준 사탕 같은 에세이
책을 통해 책 너머의 세상을 봅니다. 서평 쓰는 사람들의 모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북클럽'입니다. <편집자말>
[김지은 기자]
여행을 떠날 땐 어떤 책을 가져가면 좋을지 고민이 된다. 너무 쉽게 읽히는 책은 한 번에 다 읽어버려 남은 일정 동안 짐이 되기 일쑤고 깊은 생각을 해야 하는 책은 아예 펼치지도 않을 가능성이 크다. 너무 쉽게 읽히지도 너무 안 읽히지도 않는 그 중간 지점의 책. 뭐가 있을까. 이번 휴가를 가기 전에도 어김없이 같은 고민에 빠졌다.
친구의 추천으로 이번 여행에 가져 온 김달님의 에세이 <우리는 비슷한 얼굴을 하고서>는 그 조건에 잘 부합하는 책이었다. 프롤로그에서 작가가 최근에 본 연극 이야기를 하는데 마치 내가 그 연극을 보는 것 같다. 저절로 상상하게 된다. 재미있지만 그 장면에 머무르고 싶어 책장을 빨리 넘길 수 없다.
▲ 책 '우리는 비슷한 얼굴을 하고서' 표지 |
ⓒ 수오서재 |
"앞으로도 힘을 내서 살아가기 위해선, 혼자서도 남은 길을 마저 걸어가기 위해선 따뜻하고 단 기억들로 호주머니를 채워놓아야 한다고. 언제든 쓸쓸해지는 날에 손을 집어넣어 내게 남아 있는 것들을 만져 보고 꺼내 볼 수 있도록." (20쪽)
나에게 여행은 이런 사탕 같은 추억을 만드는 일이다. 김달님의 <우리는 비슷한 얼굴을 하고서>는 작가 김달님의 곁에 있었던, 또는 곁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와 아빠, 엄마, 동생들과 친구들. 작가가 힘들 때 까먹을 수 있는 사탕 같은 이야기 모음집이다.
작가의 이야기를 읽으며 자연스럽게 내 곁에 있었던 사람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특히나 여행지에 오면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서 이런저런 추억들이 저절로 떠오른다. 곁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생각하며 지금, 이 순간을 좋은 추억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이 여행도 나중에 까먹을 수 있는 사탕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악의 없는 목소리였지만 질문을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어 우물쭈물하며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인 희진은 말했다. "나는 아빠 없는데. 우리 친구 할래?"
열 살 인생에 들어본 가장 떨리는 말이었다. 아마도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반하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 말을 시작으로 희진과 나는 친구가 되었다." (141쪽)
희진과의 에피소드를 읽으며 나도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같은 반 아이에게 놀림 받았던 기억, 그 와중에 내 곁에 함께 있어 준 친구들, 그들과 즐거웠던 여러 에피소드가 좌르륵 머릿속에 펼쳐진다.
그러다 내 앞에서 미소를 지으며 카톡을 하는 딸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가족여행은 지루하고 빨리 집에 가서 친구들과 놀고 싶다는 아이의 말이 여행 내내 서운했는데 어쩌면 나도 어렸을 때 그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열 살의 여름. 희진과 나는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되었던 것처럼 이후에도 많은 친구를 만나며 살아왔다. 친구와 함께 있을 때는 슬픔과 외로움, 심심함과 두려움이 제 모습을 까먹는 것을 희진이 알려준 덕분이다. 나는 지금도 친구들과 있을 때 가장 큰 소리로 자주 웃는다." (144쪽)
책에서 잠깐 눈을 떼고 아이를 보며 기도한다. 아이와 아이 곁의 친구들이 희진과 작가처럼 서로에게 좋은 친구가 되길. 함께 있을 때 즐겁고 크게 웃을 수 있는 그런 추억을 알알이 만드는 친구 사이가 되길. 아이는 점점 내 품을 떠나고 있다.
결국 남은 휴가 기간 동안 바다는 남편과 나만 들어갔고 아이는 바닷가에서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고 친구들과 카톡을 하고 유튜브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못마땅했지만 그래도 함께 보드게임을 하며 깔깔 웃는 시간이 있었고 같은 음식을 먹으며 즐거워하는 시간이 있었다. 완벽한 사탕은 아니지만, 아쉽게도 살면서 100% 달콤한 순간은 흔치 않다. 거친 삶 속에서 반짝이는 순간을 잘 캐내 간직해야 한다.
"내게 글쓰기는 이러한 일이다. 기억에 남아 있는 사람의 이름을 불러 내 쪽으로 돌아보게 하는 것. 오랜만에 마주하는 돌아본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고 맞아. 너 거기 있었지. 반가워하는 것. (중략) 너를 다시 볼 수 있어서 좋다고 나에게만 들리는 목소리로 말해보는 것. 그리고 혹시라도 들려올지 모를 너의 대답을 지금 여기에서 기다려보는 것. 그렇게 너를 다시 사랑해보는 일이다." (261쪽)
작가가 말하는 '글쓰기'가 내가 생각하는 '여행'과 비슷하다. 여행할 땐 여러 장소에 가고 여러 경험을 하며 여러 사람을 떠올린다. 또한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의 몰랐던 모습, 새삼 깨닫게 된 모습을 보며 다시 사랑하게 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여행을 가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우리는 비슷한 얼굴을 하고서>를 추천한다. 여행을 가는 사람은 이 책과 함께 더 풍성한 여행을 즐길 수 있고, 여행을 가지 못하는 사람은 여행에 가서야 하는 여러 생각들을 방구석에서도 떠올리며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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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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