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손잡고 3일내 눈감는다" 서울대병원 8평 그곳의 비밀

황수연 2022. 7. 3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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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원샷]

지난 21일 오전 찾은 서울대병원 124병동 19호실, 8평쯤 되는 곳에 환자 침대 외에 보호자 침대ㆍ탁자ㆍ전자레인지ㆍ냉장고ㆍ정수기 등이 눈에 들어왔다. 1인실 같은 이곳은 서울대병원에 1개 있는 임종실이다. 임종이 임박한 환자가 머무는데, 병원에선 ‘편히 쉴 수 있는 1인실’로 부른다고 했다.

김범석 서울대병원 완화의료ㆍ임상윤리센터 센터장(혈액종양내과 교수)은 “가족들이 편히 식사할 수 있게 탁자를 놨고 보호자 침대도 넓고 편한 것으로 신경 썼다”며 “조명도 주황빛으로 해 환자가 아늑함을 느낄 수 있게 했다”고 전했다. “편안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의학적으로 중요한 임종 돌봄 중 하나”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창틀에 놓인 오디오와 서적도 다른 병실에 없는 것이다. 김 센터장은 “가장 끝까지 남는 게 청각이니 ‘아버지 사랑해요’ ‘어머니 고생 많으셨어요’라고 얘기해달라고, 평소 좋아했던 음악이 있으면 들려드리라고 한다”라고 했다.

서울대병원 임종실 모습. 병원은 임종실이 아닌 ‘편히 쉴 수 있는 1인실’로 부른다. 지난 6월 이영술 후원인으로부터 전달받은 2000만원을 활용해 임종실 환경 개선 공사를 완료했다. 황수연 기자.

자문형 호스피스에 등록된 환자 가운데 72시간 이내 임종할 것으로 보이는 이들이 주로 이곳에 온다.
임종실에서 의료진은 증상 조절을 위해 진통제를 투여하거나 활력 징후를 확인하는 정도만 한다. 개입을 가급적 줄인다. 완화의료ㆍ임상윤리센터 유신혜 교수는 “갑자기 처치를 뚝 끊으면 ‘이제 우리를 방치하는구나’ 느끼는 분들도 있는데 임종실 치료의 목적이 환자를 편안하게 하는 것”이라며 “환자를 괴롭히는 치료는 빼고 웬만하면 모니터링기도 떼는 게 좋겠다고 한다”고 말했다. 기계와 함께 들어가는 순간, 가족들이 환자의 얼굴보단 모니터링기의 수치만을 주시해서다. 유 교수는 “얼굴 한 번이라도 더 보시고 그간 치료하면서 못했던 얘기 하시라고 하면 다들 수용한다”라고 했다.

최근 5년(2017~2021년)간 이곳을 다녀간 환자는 552명이다. 이날 오후에도 70대 간암 환자 A씨가 임종실에 왔다. 출혈 때문에 이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가 중환자실에서 치료한 지 한 달째 되어가던 환자다. 각종 의료 기계를 달고 고통스러운 치료를 이어간다고 해도 일반 병실로 갈 희망이 극히 적은 상태였다. 이대로 중환자실에서 임종할 수도 있겠다고 판단한 의료진은 가족을 만나 상황을 알렸다. A씨가 그나마 대화할 수 있는 상태일 때 중환자실이 아닌 병실에서 손 한 번 더 잡고 눈 맞추고 얘기할 시간을 보내자고 가족들이 의견을 모았다. A씨도 그러길 원했다. 이날 오전 A씨는 인공호흡기와 24시간 돌리던 투석기를 몸에서 뗐다.

기계음 가득한 중환자실에서 벗어나 124병동 19호실로 올라온 뒤 가족 손을 잡고 목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유신혜 교수는 “하루 반나절 정도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임종했다”며 “가족들이 오랜만에 환자를 보고 손잡을 수 있어 좋아했고, 환자도 큰 고통 없이 편안하게 가셨다”고 했다. 김범석 센터장은 “임종 직후 상실감 탓에 보호자들이 제대로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만족도가 높다”라며 “죽음은 모든 사람한테 트라우마로 남는데, 우리가 조금만 신경 쓰면 환자에 편안한 환경을 제공하고 가족이 잘 애도하고 떠나보낼 수 있게 도울 부분이 많다”고 했다. 과거 한 환자는 특별한 임종 사진을 남기길 원했다. 병원 도움으로 사진 기사를 불러 환자복 대신 턱시도를 입고 사진을 찍었다.

서울대병원 임종실에는 상대적으로 넓고 편안한 보호자 침대가 놓여있다. 창틀에는 오디오와 서적도 보인다. 황수연 기자.


이런 임종은 흔치 않다. 임종실이 전국에 많지 않아서다. 현행법상 임종실 설치를 의무로 둬야 하는 곳은 호스피스 전문기관뿐이다. 전국에 이런 기관 88곳에서 108개의 임종실을 운영한다. 서울대병원 이외 빅 5 병원에서는 서울아산병원 1곳, 세브란스병원 2곳 있다. 서울성모병원은 3개 형태의 호스피스 병동을 갖추고 있어 임종실을 3개 운영한다. 삼성서울병원은 별도 임종실이 없고 병동 내 처치실에서 임종 직전 환자의 가족 면회를 돕는다. 요양병원, 종합병원에선 찾기 힘들다.

국내 사망자 10명 중 8명(75.6%, 2020년)은 의료기관에서 생을 마감한다. 임종실이 부족하다 보니 마지막 장소는 보통 다인실ㆍ응급실ㆍ중환자실이 된다. 환자가 원치 않는 연명치료가 이어지기도 한다.

서울대병원 다인실에 입원해 있던 암환자 80대 B씨는 어느 날 산소포화도와 혈압 등 활력 징후가 유지 안 되며 임종 과정이 빠르게 진행됐다. 가족들은 1인실이나 임종실 이용을 원했지만 병실 사정이 여의치 않았고 B씨는 그날 밤을 넘기지 못하고 임종했다. B씨 옆 환자들은 불안해했고, B씨 가족은 다른 환자들을 신경 쓰느라 소리 내 울지 못했다.

냉장고와 전자레인지, 정수기 등의 편의시설이 마련돼 있다. 황수연 기자.


김범석 센터장은 “임종실은 언제 어떻게 환자가 올지 몰라 비워놔야 한다”라며 “환자가 5, 6시간 만에 임종하면 행정적으로 하루 입원 처리가 안 돼 비어있는 거로 체크된다. 병원을 경영하는 입장에선 임종실 유지가 달갑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했다.

국회에서 대형병원 내 임종실을 의무로 설치하게 하는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최근 논란이 된 조력 존엄사 관련해서도 임종실 확대 등이 우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범석 센터장은 “법을 만들면 추진력은 얻겠지만 거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예산과 인력이 지원돼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유신혜 교수는 “감염병 시대에 맞는 지침도 필요하다”고 했다. 현재 코로나 19 관련해서도 임종 후의 시신 처리 지침만 있을 뿐이다. 유 교수는 “임종 전까지 면회는 어떻게 할지 등 임종 돌봄 관련한 지침이 없어 관련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또 “호스피스가 없는 상급종합병원 대상으로도 임종의 질을 평가하는 지표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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