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야, 젠더가 경제야"..유명 美싱크탱크 이유있는 한국 진단 [뉴스원샷]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 입성하는데 일등공신이었던 선거 문구입니다. 클린턴의 핵심 선거 참모, 제임스 카빌이 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 내세운 메시지였죠. 당시 대통령이었던 조지 H. W. 부시(1924~2018)의 경제 정책이 실패했다는 공격은 주효했고, 아버지 부시는 단임 대통령으로 백악관을 나옵니다.
먹고 사는 걱정 없는 고복격양(鼓腹擊壤)은 동서고금을 떠나 중요하고, 2022년 7월의 대한민국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래서일까요, 미국의 경제 분야 주요 싱크탱크가 지난 27일(현지시간) 한국 경제 관련 릴레이 보고서를 냈다는 소식에 귀가 번쩍 뜨였습니다. 싱크탱크는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PIIE). 미국의 중앙은행 역할을 하는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의 제롬 파월 의장이 종종 이곳에서 강연을 할 정도로 신망 있는 싱크탱크입니다.
릴레이 보고서들의 주제는 ‘미ㆍ중 간 기술 갈등에 한국이 대응할 준비를 해야 한다’부터 ‘유럽연합(EU)과 미국의 탄소배출권 제한에 한국이 취약하다’로 다양합니다. 유독 눈길을 끄는 보고서의 제목은 이랬습니다. ‘한국의 노동시장에서 젠더 차별은 왜 사라지지 않는가.’ 국내에선 이대남 이대녀 논쟁 등 정치 사회 논란 비중이 큰 젠더 이슈가 사실은 경제, 즉 먹고 사는 문제에 중요하다는 논지입니다. 주가와 부동산 시장뿐 아니라, 노동시장에서의 젠더 이슈를 한국이 진심으로 마주하고 해결해야 전망도 밝다는 거죠.
남녀 경제학자 3명이 공동 집필한 이 연구는 “젠더 격차의 원인과 영향을 이해하는 것이 한국의 단기뿐 아니라 장기 경제 전망의 핵심(central)이다”라고 시작합니다. 총 42쪽으로 구성된 보고서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한국의 일하는 여성은 일과 가족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심각한 상황이고, 그 핵심 요인은 한국의 노동 시장 구조다. 비록 지난 20년간 한국의 근로시간이 상당히 줄어들긴 했으나 한국의 평균 근로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고임금 국가 중 가장 길다. 한국에서 가사 노동과 육아에 할애되는 시간이 여성에 극도로(extremely) 편중되어 있다는 것은 이런 도전 과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또 다른 요소는 한국 노동 시장의 ‘인사이더(정규직)-아웃사이더(비정규직)’ 구조다. 여성이 비정규직이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지난 20년간 한국 정부 정책 등으로 상황은 개선되고 있으나 여전히 충분하지 않다. (중략) 한국이 미취학 아동 교육에 소비하는 금액은 이미 OECD의 앵글로 색슨 회원국과 일본을 넘어섰다. 부모 모두가 출산 휴가를 갈 수 있도록 한 정책은 잘 되어 있으나 남녀의 임금 차이는 여전하고 아버지들의 출산 및 육아 휴직은 여전히 국제적 기준으로 보면 미약하다.”
보고서는 아래의 제언으로 마무리됩니다.
“한국 정부는 비정규직 부문에서도 노동 시장 정책을 보다 더 적극적으로 강화해 적용하여 경력 단절 여성이 다시 피고용 상태가 되는 것이 더 쉬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경력 단절 여성의 원문 표현은 ‘interrupted careers’였습니다. 방해받은, 중단된,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일하는 여성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한국 경제의 전망을 밝게 할 수 있다는 것이죠. 다 아는 이야기 아니냐고요? 그래서 더 큰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알고도 고치지 못하는 현실, 국내에서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한국 경제의 문제점으로 젠더를 꼽았다는 것은 그만큼 문제가 심각하다는 증거일 테니까요. 여성가족부 폐지에 이대남 표심 잡기에 급급한 정치권, 그 정치권 눈치 보기에 급급한 정부 관료들이 이런 지극히 상식적인 시각을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결국, 문제는 경제니까요.
전수진 투데이ㆍ피플 뉴스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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