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의 땅?.. 동남아 진출 금융사들 성공 열쇠는 현지화
은행, 증권사, 카드사들 앞다퉈
국내 점포 줄이고 동남아 영업 경쟁
외환은행 인수 ‘먹튀’에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으로 한국에서 악명을 떨친 론스타는 자국 입장에서 볼 때 성공한 해외 진출 모델이다. 반면 세계적 금융사인 씨티은행은 한국 소매시장에서 성공하지 못하고 철수를 결정했다. 해외 진출의 명암을 극명히 보여준 사례다.
국내 금융사들의 동남아시아 시장 진출 경쟁이 뜨겁다. 은행, 증권사, 카드사 가릴 것 없이 동남아 지역에 지점을 내거나 현지 금융사 인수합병(M&A)에 적극적이다. 국내 업황이 갈수록 어려워지자 베트남, 캄보디아 등 고성장이 기대되는 시장에서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부실을 떠안을 위험이 상존한다는 점에서 현지화와 내실화가 과제로 꼽힌다.
29일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의 해외 영업점포(지점, 사무소, 현지법인 포함)는 올해 3월 말 기준 117곳이다. 2018년 109곳에서 8곳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국내 점포는 4724곳에서 4100곳으로 13.2% 감소했다. 국내 10대 증권사(미래에셋·한국·NH·삼성·KB·메리츠·하나·신한·키움·대신) 역시 국내 점포가 25.3% 줄었지만 해외는 6곳이 증가했다.
해외 근무 직원도 급증했다. 5대 은행의 올해 3월 기준 해외 근무 임직원 수는 2189명으로 2019년(1809명) 대비 21% 증가했다. 농협은행이 49명에서 94명으로 91.8% 급증했고 국민은행도 129명에서 220명으로 70.5% 늘었다. 이어 하나은행(20.5%) 신한은행(13.7%) 우리은행(10.2%) 순이다.
은행, 증권사의 해외 진출은 동남아시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우리은행은 인도네시아 베트남 캄보디아 현지 법인을 동남아 3대 법인으로 설정하고 올해 영업 인력을 대폭 확대했다. 최근 4년간 이들 법인의 당기순이익 성장률은 26%에 달한다. 하나은행은 인구가 2억8000만명인 인도네시아에서 현지 점유율 2위 메신저 서비스인 ‘라인(LINE)’과 협업해 지난해 6월 디지털 지점인 ‘인도네시아 라인뱅크’를 공식 출범시켰다. 2009년 출범한 신한베트남은행은 지난해 당기순이익이 전년 대비 7.1% 증가한 1291억원을 기록했다. 신한은행 전체 해외 자회사 합산 매출액(약 2500억원)의 절반 규모다. 국민은행은 캄보디아에서 180여개 영업망, 시장점유율 44%를 차지하는 소액대출금융사 프라삭 마이크로파이낸스를 통해 지난해 2053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증권사들의 격전지도 동남아시아다. 지난해 증권사들의 해외 현지법인 당기순이익은 3억590만 달러(약 4000억원)로 전년 대비 62% 증가했는데 약 70%가 베트남과 홍콩에서 나왔다. 미래에셋증권 현지법인 ‘Mirae Asset Securities (Vietnam) JSC’의 지난해 순이익은 420억원으로 전년 대비 64% 급증했다. NH투자증권도 현지법인 ‘NH Securities Vietnam’에서 전년보다 2.9배 많은 순이익을 냈다. 한국투자증권도 ‘KIS Vietnam Securities Corporation’을 통해 지난해 281억원을 벌었다.
수익성, 성장성 측면에서 한계점에 도달했다고 평가받는 국내 시장과 달리 동남아는 많은 인구를 바탕으로 빠른 경제 성장세를 보이면서 금융 서비스 수요가 급증하는 추세다. 15세 이상 베트남 국민의 은행 계좌 보유율은 2014년 30.8%에서 2020년 기준 70%까지 증가했다. 캄보디아는 경제활동가능 인구 중 절반인 500만명만이 은행계좌를 보유하고 있어 앞으로 금융 수요가 늘어날 공산이 크다.
신흥시장은 선진시장과 달리 기업금융뿐 아니라 현지 고객을 대상으로 리테일 영업을 영위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힌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동남아 국가 입장에서 한국은 선진 금융이므로 국내 은행들이 금융 노하우를 심으면서 점유율을 늘릴 여지가 있다”며 “예대마진도 국내에 비해 훨씬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특히 증권사 입장에선 젊은 층의 비중이 높은 점이 진출 유인이 됐다. 고령층이 많은 시장일수록 공격적인 금융투자 수요가 적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증권사 관계자는 “베트남은 전체 인구 약 1억명 중 62%가 39세 이하로 공격적인 성향의 자산 관리가 이뤄진다는 점에서 증권사들이 매력을 느끼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도네시아, 캄보디아도 인구 구성비가 비슷하다.
떠오르는 시장이라고 모두가 론스타처럼 수조원의 거액을 챙길 수 있는 건 아니다. 국민은행은 2008년 카자흐스탄 센터크레디트은행(BCC)을 인수한 뒤 1조원에 가까운 손실을 입었다. 절치부심한 뒤 2018년 인도네시아 중형은행인 부코핀은행 인수전에 뛰어들었지만 큰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KB부코핀은행은 지난해 당기순손실이 2725억원이었다. 인수에 4000억원을 투입하고 수차례 증자를 거쳤지만 정상화는 요원하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내부에선 부코핀은행이 우리 이익을 다 깎아먹는다는 말이 나온다”고 말했다.
현지 당국의 규제와 정치·외교 상황에 따른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꼼꼼한 점검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해외 진출 시 단순 수치로 접근하면 위험하다”며 “해당 국가의 정치와 문화 등에 녹아들 수 있도록 신중하게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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