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은 '경찰위'..이상민과 전혀 다른 32년 전 장관의 약속 [경찰국 설치 논란]

조혜지 2022. 7. 29.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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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경찰 독립' 국회 속기록 분석] "장관이 경찰 권한 장악, 경찰중립화 안 하겠다는 뜻"

[조혜지 기자]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26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경찰국 신설’ 등의 내용을 담은 대통령 업무보고 사전브리핑을 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 권우성
7월 25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 "12.12 쿠데타에 준하는 상황."
7월 26일 윤석열 대통령 : "중대한 국가 기강 문란."

대통령과 행안부장관이 연일 날선 단어를 써가며 경찰 내부의 경찰국 신설 반대 움직임에 경고를 쏟아내는 가운데, 관계 시행령은 위법 논란 속에도 이미 국무회의를 거쳤다. 행안부 내 경찰국은 오는 8월 2일 출범을 앞두고 있다. 일선 경찰들은 압박 속에 이번 주말 예고했던 전체 경찰회의를 취소했다. 다만 국회를 향해 "입법으로 경찰국을 시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마지막 SOS 신호이자 사실상 백기다.

윤석열 정부의 경찰국 신설 명분은 '경찰 중립화'다. 사실 이 명제를 둘러싼 논쟁은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다만 현 국면과 달리, 경찰 중립 논쟁은 순조롭든 삐걱대든 국회 입법이라는 토대 위에서 합의와 조정을 거쳐왔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고문수사로 악명 높았던 내무부 소속 치안본부를 경찰청으로 분리, 경찰의 중립화를 꾀했던 때가 대표적이다.

30년 전 '독립', 30년 후 '통제'... 달라진 목표

결과적으로 노태우 정부가 3당 야합 국면을 활용, 경찰위원회 실질화 대신 내무부장관 아래 경찰청을 두는 방향의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밀어붙였지만, 논쟁 양상은 달랐다. '경찰청은 내무부장관 영향에서 분리된 독립적 운영 기관'이라는 정부 측의 구두 보증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점차 퇴행하긴 했지만, 첫발을 뗄 때는 국가 경찰위원회라는 민주적 통제 기구의 설치도 보장했다. 30여 년 전 나온 이 논의가, 경찰위를 자문기관으로 축소 해석하고 경찰국 설치를 통한 통제를 강조하는 현 이상민 행안부장관의 입장보다 더 진일보한 방향이라는 씁쓸한 평가도 나온다.

이는 국회 속기록으로도 남아있다. 국회 행정위원회, 법제사법위원회, 본희의 등 정부조직법 개정안 통과 각 단계마다 불려간 당시 총무처(총무처와 내무부가 통합되기 전 행안부 인사담당 부처의 이전 명칭) 장관의 말들이 대표적이다. 이는 32년 후 이상민 장관이 경찰국 신설의 목적을 '행안부장관의 경찰 통제'에 방점을 둔 것과는 사뭇 다른 취지의 발언들이다.

아래는 1990년 12월 1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이연택 당시 총무처장관이 "경찰을 내무부장관 밑에 두면 경찰 중립화를 기대할 수 없다"는 박상천 평화민주당 의원의 질타에 답변한 발언을 발췌한 것이다.

"(경찰청이) 치안본부처럼 (내무부의) 보조기관이라면, 내무부장관의 지휘와 감독 아래에서 모든 인사와 예산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중앙 행정기관으로 독립되므로, 그 예산과 인사에서 독자 권한을 행사할 수 있고, 물론 그 산하 조직에 대한 지휘 감독도 가능합니다."

이연택 장관은 당시 대통령 직속 기구인 행정개혁위원회의 자문 결과를 바탕으로 경찰의 중립을 위해 경찰위원회가 필요함을 언급하기도 한다.

"주요 정책이나 인사, 예산 이런 주요 기능을 경찰위원회에서 한 번 거르도록 제도를 두는 것이 우리 여건에 바람직하겠다는 것이 행정개혁위의 건의였습니다."

30여 년 후 이상민 장관이 기자간담회와 대정부질문 등을 통해 경찰위를 단순 '자문기구'로 해석, 그 기능의 실질화보다 행안부장관의 지휘를 강조한 대목과는 다른 뉘앙스다. 이 장관은 지난 27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도 "(경찰위는) 행안부 내 자문위로, 경찰의 장기적 발전 계획이나 경찰청장이 의뢰하는 사안에 대해 심의, 의결하는 기구"라며 그 역할에 제한을 둔 바 있다.

'경찰 중립 좌절의 역사=경찰위 약속 파기의 역사'
 
 지난 28일 오후 광주경찰청에서 열린 '행안부 경찰제도 개선 관련 의견수렴 간담회'에 일선 경찰들이 참석하고 있다. 2022.7.28
ⓒ 연합뉴스
 
박상천 평화민주당 의원 : "정치 각료인 내무부장관께서 경찰 권한을 장악할 때, 이건 실질적으로는 경찰 중립화를 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경찰 중립화 여부를 단시일 내 이렇게 국민 의견도 수렴하지 않고 결정하는 게 옳은 것이냐?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김종완 평화민주당 의원 : "경찰을 중립화 시키세요. (중략) 단순히 경찰의 막대한 병력을 정권 안보의 도구로... 아주 주구로 만들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중략) 제2의 안기부가 됩니다. 독재자들이 기구 많이 만들어 서로 경쟁을 붙여서 충성심(경쟁)에 끌어들이려는 이런 얄팍한 수단 가지고는 안 됩니다."

경찰위 설치까지 약속했음에도, 30년 전 야당 의원들의 반대는 거셌다. 애당초 여소야대 국면에서 합의했던 '경찰청 분리 및 국무총리 산하 중앙행정기관으로 경찰위원회 설치' 안이 노태우 정부 들어 정치 지형이 정반대로 바뀌면서 변질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당시 노태우 정부가 정부안으로 제출, 여당이 단독으로 처리한 안은 경찰위와 경찰청을 내무부장관 소속으로 두는 후퇴 안이었다.

이연택 장관은 비판을 쏟아내는 의원들을 달래기 위해 재차 약속했다. 그는 당시 법사위 회의 자리에서 "경찰위원회의 근거는 행정개혁위원회의 건의에 따라 그대로 반영하고, 앞으로 정부가 내는 경찰법안 내용에도 이 건의에 의해 경찰위원회가 설치될 것"이라면서 "경찰위는 우리 경찰의 중립을 보장하는 기능이 보장된다"고 말한 바 있다.

30년 전 이 장관의 약속은 경찰위의 위상을 강조한 경찰법 7조와 8조에도 담겨있다. '국가경찰사무에 관한 인사, 예산, 장비, 통신 등에 관한 주요정책 및 경찰 업무 발전에 관한 사안은 국가 경찰위원회의 심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 '행안부장관은 경찰위 위원 임명을 제청할 때 경찰의 정치적 중립이 보장되도록 해야 한다'는 조항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 약속은 매 정부마다 제대로 이행되지 못했다. 법 취지와 달리 경찰청 또한 경찰위를 단순 자문기관으로 삼아온 것이 사실이고, 국회도 이후 이 같은 병폐를 보완할 입법에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찰위를 단순히 '자문기관'으로 설명한 이 장관의 인식 또한 다르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전문가들의 돌림노래 "경찰위 실질화가 답"... 답 없는 국회
 
 국가공무원노조 경찰청지부, 경찰청주무관노조 조합원들이 지난 27일 오후 서울 용산역 앞에서 경찰국 반대 대국민 홍보 기자 회견을 마치고 선전물을 시민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 이희훈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3일 국회입법조사처에 제출한 자문의견서에서 "1955년, 1660년, 1987년부터 1991년, 2017년 각각 경찰제도 개선 방안으로 치안 사무의 민주적 관리, 운영기관으로서 경찰위를 중앙행정기관으로 두고, 그 아래 치안사무를 집행할 기관으로 경찰청을 두는 방안이 깊게 논의되어 왔다"면서 "(그러나) 경찰위를 중앙행정기관이 아니라, 심의 의결 기관으로만 규정하고 경찰위와 경찰청을 내무부 소속으로 하는 등 불완전하게 제도화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라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이어 "(지금까지) 행안부에서 경찰위를 심의, 의결기관도 아닌 자문기관으로 분류하며 현행법상 부여된 지위와 기능도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여온 것은 잘못"이라면서 "실패한 제도인 내각 부서에 의한 통제가 아니라, 국민에 의한 통제라고 할 수 있는 경찰위원회를 정상화 내지 실질화 하는 데서 (개선점을) 찾는 것이 옳다"고 강조했다.

경찰개혁네트워크 운영위원인 이창민 변호사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정부조직법이 날치기 통과될 당시의 그 법안마저도 경찰의 최고 심의 의결 기관은 경찰위였다. (이상민 장관은) 경찰위 위에 행안부가 있다는 이야기를 계속 하고 있다"면서 "이 장관의 논리에 학자나 법률가들 대부분 '말도 안 된다'고 하는데, (말이 안 되는 이유는 경찰법을 간과한) 이러한 논리 때문"이라고 말했다.

32년 전 가열차게 논의됐던 '경찰위 실질화' 논의는 여전히 멈춰 있다. 와중에 이상민 장관은 지난 25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경찰국 신설은) 경찰위의 심의, 의결 사안이 전혀 아니다"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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