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화에 서예·풍경화 가미한 '추상 자연'
추테춘
그는 지난해 홍콩 경매에서 약 2억3000만홍콩달러(약 385억원)라는 낙찰가로 아시아 추상화가 가운데 자오우키 다음으로 높은 경매가 기록을 세웠다. 원래 중국 출생으로 1935년 미술학교에 진학해 서예와 전통 중국화와 더불어 1세대 파리 유학파 스승에게서 유화를 배웠다. 그러나 중국 내전으로 부모를 잃는 비운을 겪은 데다, 공산당 지배 체제가 되자 1949년에 대만으로 이주해 그곳 대학에서 서양화를 가르쳤다. 하지만 언제나 현지에 가서 서양화를 보다 깊이 있게 탐구하고자 열망했던 그는 드디어 1955년, 서른다섯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대학 교수로서의 안정된 삶을 버리고 과감하게 파리로 향했다. 그의 선택은 옳았다. 파리에 정착한 이듬해 그는 자신의 부인을 그린 초상화로 파리 살롱에서 입상한다. 또한 현지에서 서양 추상 화가들 작품을 탐색한 지 불과 5년여 만인 1960년대 전후로 ‘추상 자연’이라 불리는 자신만의 새로운 형태의 추상화를 개발하면서 1960년 파리 갤러리 개인전을 발판으로 탄탄한 성공 가도를 달리게 된다.
1960년작 ‘넘버 51-숲에 가려진 1000개의 생명들’을 보자. 이 작품은 서양의 기하학 추상화 특징과 서정적인 중국 풍경화의 혼합을 통해 추테춘이 창조해낸 ‘추상 자연’이라는 그만의 독창적인 추상화 스타일의 전형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이 작품에서 그는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형태와 색상을 사용하되, 이를 자신의 심상에 비친 대로 단순화하는 동시에 서양 기하학적 추상화 특질을 도입해 재구성했다. 또 여기에 전통 중국 풍경화와 서예의 자유로운 표현 요소를 가미했다. 푸른색, 푸른 초록, 진한 초록의 끝없는 변주는 울창한 숲을 연상시키면서 강하고 힘찬 검정 선들과 대비를 이룬다. 그러는 한편 견고한 형태와 빈 공간의 뚜렷한 대조를 통해 음양의 대조를 상징하며 자연을 중시하는 아시아 정신을 성공적으로 담아냈다.
이 작품에는 자연과 더불어 음악적 영감이 바탕이 돼 있다. 1964년 어느 날, 추테춘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프랑스 작곡가 드뷔시의 음악을 우연히 들었다. 해 돋는 바다의 풍경을 모티브로 작곡한 ‘바다-관현악을 위한 세 개의 교향적 소묘’였다. 이 곡을 자연에 관한 웅장한 교향곡이라 느낀 그는 기존에 구현해온 추상화와 서예와 산수화의 결합에 더해 자연의 소리를 회화에 도입할 수 있는 새로운 시각적 어휘를 개발하기로 결심하고 이 작품에 착수했다. 결과적으로 추테춘은 서예를 기반으로 하는 자유로운 붓질을 통해 리듬과 멜로디, 톤, 색채, 면, 선, 점들을 연결해 이제 막 오랜 겨울잠에서 깨어나려고 하는 이른 봄의 풍경 같은 ‘봄이 오기 전에’를 완성했다. 풍경, 파도 소리 같은 자연의 여러 측면을 포착해 마치 드뷔시가 자연에 대한 교향곡을 썼던 것처럼. 그가 이 작품을 얼마나 마음에 들어 했는지는 2012년 ‘추테춘: 추상 속의 자연’이라는 제목의 자신의 개인전 도록 커버로 선택했다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1960년대 초기 추상화에서 나아가 모든 관습적 제약에서 벗어난 데다, 심리학적 풍광의 비구상적 재현을 위해 꾸준히 자연에서 영감을 추구하면서 자연의 형태를 자신의 감정에 대한 추상적 묘사로 변형시킨 이 작품은 반세기가 넘도록 한 개인의 소장품으로 간직돼왔다. 2020년 12월 2일 처음으로 시장에 나오자 예상대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약 3600만홍콩달러(약 60억원)에 낙찰됐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69호 (2022.07.27~2022.08.0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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