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라이트]투항한 일본장수의 '義'..혼돈을 눈빛으로 말하다
항왜 정체성 변화가 '義' 찾아가는 과정으로..
조선 시대에 투항한 일본인을 항왜(降倭)라고 한다. 임진왜란 시기에 크게 늘었다. 왜군과 싸울 아군으로 주목받았고, 상당수는 조선에 남아 삶을 이어갔다.
지난해 10월 학술지 에는 ‘임진왜란과 민족 구성원의 확대’라는 글이 실렸다. 저자인 허준 연세대 글로벌한국학연구소 교수는 "항왜의 조선 정착 과정은 한 공동체가 ‘타자’의 유입에 대응, 수용하는 대표인 일례로서 전근대 사회의 공동체와 그 구성원들의 자기 정체성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연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썼다. 뒤집어 보면 외부 구성원이 새로운 공동체에 흡수돼 연대감이 강화되는 일면 또한 비슷한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항왜의 투항은 전쟁에 대한 혐오에서 비롯한 일탈로 보기 어렵다. 대부분이 다시 전투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스스로 밝혔기 때문이다. 전황의 불리라는 외부적 요소가 작용한 결과로 보기에도 불충분하다. 대표적인 인물인 사야가의 경우 조선군이 불리한 상황에서 밀양부사 박진에게 투항했다. 다른 여타 전쟁에서 이뤄진 항복과 구별되는 특이한 성격의 귀복이었다. 영화 ‘한산: 용의 출현’의 김한민 감독은 한산도대첩을 조명하며 이 점에 주목했다. 정체성의 변화를 ‘의(義)’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다뤄 전쟁의 성격을 새롭게 규정했다.
막중한 임무는 배우 김성규가 그린 준사가 짊어진다. 사천에서 조선 수군에 패해 포로가 되는 배역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결연한 태도로 일관한다. 이순신(박해일)은 "목숨을 거두지 마라. 분명 다른 뜻이 있는 자다"라며 살려준다. 준사는 진저리를 치며 묻는다. "대체 이 전쟁은 무엇입니까?" "의와 불의의 싸움이지."
의(義)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으로서 지키고 행하여야 할 바른 도리 또는 사람이 마땅히 지키고 행해야 할 도덕적 의리다. 김성규는 신물이 난 듯한 목소리로 애초 준사가 불의와 거리가 먼 인간임을 표현한다. 전사(前史)를 늘어놓을 필요가 없을 만큼 함축적이고 상징적이다. 다리를 질질 끌려가며 옥에 투옥되는 모습을 본 부하들이 근심하고 염려해 평소 인간 상호 간의 참다운 사귐을 중요시한 인물로 각인된다.
준사가 생각하는 의는 무엇일까. 아시아경제를 만난 김성규는 "시나리오를 읽고 인간의 죽음을 가장 먼저 생각했다"고 말했다. "참전이 본인의 선택이었을지라도 대부분은 흥분된 분위기에 휩쓸렸을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준사가 무엇을 위해 이토록 처절하게 싸우는지 스스로 질문하고 고민했다. 그렇게 답을 찾아가다 보면 의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준사는 목적은 분명하나 구조상 표현에 어려움이 많은 배역이다. 양 진영을 오가지만 대사가 많지 않고 부각이 되는 장면도 손에 꼽힌다. 준사의 시선으로 임진왜란 형국을 보여주며 보편타당한 정의를 내리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김성규는 그 안에서 말에 무게 두고 마땅히 행해야 할 바른길에 무사히 안착한다. 그는 "이순신과의 대화 등이 많지 않지만 준사의 성숙해가는 모습이 또 다른 이순신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믿었다"고 밝혔다.
"당시 항왜가 꽤 많았다고 한다. 하나같이 전란 속에서 수많은 죽음을 안고 살아갔을 듯싶더라. 그 마음을 가슴에 새기고 연기한다면 처참한 광경과 한데 묶여 도리가 강조될 것 같았다."
자신감의 근원은 그늘이 깃든 특유의 눈빛이다. 드라마 ‘킹덤’, 영화 ‘범죄도시’ 등에서 맹수처럼 번쩍 빛나면서도 언제 그랬냐는 듯 불안한 기운을 내곤 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조명을 덜 받아도 배역을 입체적으로 그려냈다. 이번 영화에서는 같은 방식으로 영화의 주제 의식까지 가리켰다. 겉보기에는 무난하게 관통하나 구조상 연대감이 강화되는 과정 등이 생략돼 아쉬운 면도 적잖다. 김성규도 자각하는 듯했다.
"위태로운 상황에 계속 놓이는데, 갈수록 책임은 커지는 듯하다. 더 많이 공부하고 연마해야겠지만 표현할 기회가 조금 더 많아지길 희망한다. 준사의 다른 면면도 분명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을 테니."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성유리 "억울하다" 했지만…남편 안성현, '코인상장뒷돈' 실형 위기 - 아시아경제
- "결혼해도 물장사할거야?"…카페하는 여친에 비수꽂은 남친 어머니 - 아시아경제
- "37억 신혼집 해줬는데 불륜에 공금 유용"…트리플스타 전 부인 폭로 - 아시아경제
- "밤마다 희생자들 귀신 나타나"…교도관이 전한 '살인마' 유영철 근황 - 아시아경제
- '814억 사기' 한국 걸그룹 출신 태국 유튜버…도피 2년만에 덜미 - 아시아경제
- "일본인 패주고 싶다" 日 여배우, 자국서 십자포화 맞자 결국 - 아시아경제
- "전우들 시체 밑에서 살았다"…유일한 생존 北 병사 추정 영상 확산 - 아시아경제
- "머스크, 빈말 아니었네"…김예지, 국내 첫 테슬라 앰배서더 선정 - 아시아경제
- "고3 제자와 외도안했다"는 아내…꽁초까지 주워 DNA 검사한 남편 - 아시아경제
- "가자, 중국인!"…이강인에 인종차별 PSG팬 '영구 강퇴' - 아시아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