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부장검사 "경찰대학 졸업생 경위 임관은 위헌" 주장.. 13년 전 작성한 연구보고서 인용
[아시아경제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26일 “경찰대학을 졸업했다는 사실만으로 자동으로 경위부터 출발하는 건 불공정하다”며 경찰대 개혁 의지를 밝혀 논란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현직 부장검사가 경찰대학의 위헌성을 지적하며 폐지를 주장하고 나섰다.
서울고검 공판부에서 근무하고 있는 강수산나 부장검사는 28일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올린 ‘경찰대학교의 위헌성 검토’라는 제목의 글에서 “의대를 졸업해도 의사고시를, 약대를 졸업해도 약사 자격시험을, 로스쿨을 졸업해도 변시에 합격해야 하는 등 어느 직역도 대학 졸업만으로 공직 취업이 보장되는 경우가 없는데, 경찰대 졸업만으로 자동 경위로 임관되는 경찰대학 설치법 제8조는 이런 점에서 위헌의 소지가 높다”고 주장했다.
경찰대학 설치법 제8조(졸업생의 임명)는 ‘경찰대학의 학사학위과정을 마친 졸업자는 경찰공무원법에 따른 경위(警衛)로 임명한다’는 규정이다.
2009년 작성한 연구보고서에서 이미 경찰대 위헌성 지적강 부장검사가 올린 글은 사실은 13년 전 그가 서울중앙지검 검사로 근무했던 2009년 작성했던 ‘경찰대학교의 위헌성 검토’라는 제목의 연구보고서 내용을 발췌한 것이다.
그는 이 보고서에서 경찰대학교 설치법이 경찰대학 졸업생과 순경 혹은 경찰간부후보생을 차별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평등권 침해에 해당하고, 매년 시험을 통해 경위로 임관할 수 있는 경찰간부후보생 수가 제한될 수밖에 없게 만들어 헌법상 공무담임권을 침해해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강 부장검사는 게시글에서 “행정안전부 소속 경찰국 설치와 관련된 논란이 경찰대학 폐지론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찬반 여론이 언론에 게재되는 것을 보며 2009년 연구보고서로 작성했던 자료 중 일부를 소개하려 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A4 용지 13매 분량의 연구보고서를 게시글에 첨부했다.
첨부된 연구보고서에서 강 부장검사는 “경찰대학은 순경 입문자 중 대졸이 거의 없고, 경찰행정학과가 동국대학교 하나에 불과했던 1980년대 초반, 우수한 인력을 유치한다는 명목 하에 수업료 전액 국비지원, 기숙사 무료, 생활비 지급, 군복무 대체, 졸업 후 자동 경위 임관 등 엄청난 특혜를 보장받으며 설립됐다”고 했다.
그는 “그러나 2009년 기준 순경 입문자의 90% 이상이 대졸자에 이르고 경찰 관련 학과가 88개 이상에 달하는 상황에서, 경찰 간부 충원을 위해 국민의 세금으로 각종 특혜를 부여할 더 이상의 정책적 필요성은 사라졌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 부장검사는 한국교육개발원의 집계에 따르면 2009년 4월 1일 기준 4년제 대학 경찰행정학과는 59개, 3년제 전문대학은 5개, 2년제 전문대학은 24개라고 밝혔다.
그는 “경찰대학은 태생부터 민주국가의 기본가치에 배치되는 특혜를 안고 출발했으며, 경찰대학 출신들의 소수 엘리트 집단화, 경찰대 출신 인사 불평등이 초래하는 경찰 내부 반목, 위헌적인 특혜시비 논란 등 경찰조직의 가장 큰 병폐로 지적되고 있다”고 했다.
이어 “뿐만 아니라, 경찰 개혁 추진과정에서 경찰대학 출신들의 세력화와 영향력은 경찰 문민화나 세금 낭비를 피하는 경찰정책, 비간부 경찰의 입장이 반영되는 정책개발을 저해하는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어 조직관리 차원에서도 그 존폐를 논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됐다”고 주장했다.
강 부장검사는 “무엇보다 경찰대학생들이 졸업 후 자동 경위로 임관대는 경찰대학 설치법 제8조는 시험을 통해 경위로 임관하려는 간부후보생 수험생이나 경위로 승진하려는 경사들과의 관계에서 불합리한 차별로써 위헌 소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순경 경위 승진에 15년 6개월 필요… 경찰간부후보생과도 차별그는 경찰이 승진하기 위한 근속 연한을 규정한 경찰공무원법 제16조(근속승진) 1항을 소개하며 “경찰 내에서 가장 일반적인 입직 경로는 순경으로 경찰 생활을 시작하는 것인데, 현재 경찰의 인사 체계에서는 순경으로 입문해 경위로 근속 승진하기까지 15년 6개월이 필요하며, 평생을 경찰에 복무하면서도 간부 계급인 경위로 승진하지 못한 채 퇴직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러한 현상은 경찰대학 졸업생들이 매년 자동으로 경위로 임관됨에 따라 순경으로 입직한 하위직 경찰관들이 경위로 승진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줄어들고, 순차로 경위 이상의 진급 기회는 더욱 줄어드는 결과를 초래하기에 이르고 있다”고 덧붙였다.
경찰공무원법에 따르면 ▲순경을 경장으로 근속승진임용하려는 경우 해당 계급에서 4년 이상 ▲경장을 경사로 근속승진임용하려는 경우 해당 계급에서 5년 이상 ▲경사를 경위로 근속승진임용하려는 경우 해당 계급에서 6년 6개월 이상 각각 근속이 필요하다.
강 부장검사는 “경찰대학 졸업생은 4년간 경찰대학교 과정의 교육비, 숙식비를 무상으로 지급받고 경찰대학을 졸업하면 자동으로 경위로 임관되는데 비해 경찰간부후보생은 경찰직무에 필요한 형법, 형사소송법, 수사학 등의 시험을 통해 경찰간부후보생으로 임명이 되는데, 시험 과목이 대학수업을 필요로 하는 과목이고, 시험 합격 후 경찰종합학교에서 1년 교육과정을 이수한 이후 경위로 임관된다”며 “경찰간부후보생으로 채용된 경찰관과 경찰대학 졸업생간 차별로 평등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순경으로 경찰에 입사해 일선에서 1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경찰관과 경찰대학을 졸업한 20대 졸업생 중 누가 더 경찰 업무 전반에 대한 이해와 실무감각을 지니고, 경찰 간부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능력이 나은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고 했다.
이어 “더욱이 이러한 불평등은 오로지 수능 점수 몇 점 차이로 인해 경찰대학에 입학하는지, 일반대학에 입학하는지 여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인바, 대학 수학능력 평가기준인 수능 성적만으로 경찰의 능력과 자질이 검증됐다고 볼 수 없으며, 경찰 입직과 승진에 있어 이러한 과도한 차별을 합리화할 근거가 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올해 6월 기준 직급별 경찰대 출신 비율을 살펴보면 ▲치안정감 7명 중 3명(43%) ▲치안감 34명 중 25명(73.5%) ▲경무관 80명 중 59명(73.8%) ▲총경 632명 중 381명(60.3%)으로 전체 13만2421명의 경찰 중 불과 2.5%(3249명)에 불과한 경찰대 출신들의 경찰 고위 간부직 진출이 눈에 띄게 많은 것이 사실이다.
군과 경찰은 달라… “사관학교 졸업생 장교 임관과 비교해선 안 돼”강 부장검사는 경찰대학 존치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사관학교 졸업생들이 졸업과 동시에 장교로 임관되는 것과 경찰대학 졸업생을 비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경찰대학 존치론자들은 사관학교 졸업생들도 졸업과 동시에 장교로 임관된다는 점을 들고 있으나, 군과 경찰은 여러 면에서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했다.
강 부장검사는 “우선 전국민 징병제를 원칙으로 하고 있는 상황에서 군인의 대다수는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일정기간 의무 복무를 해야 하는 사병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전쟁 또는 국가 위난 사태에서 체계적인 전략·전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평시에도 장교 계급을 둬 지휘계통을 명확히 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러나 경찰은 직업공무원의 하나로, 자신의 선택에 의해 평생 직업의 개념으로 경찰직을 수행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조직이며, 하위직 경찰이 시험이나 경쟁을 통해 간부로 승진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경찰로 선발된 사람들에 대한 교육을 통해서도 충분히 경찰행정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므로, 일정한 인원을 수능 점수로 선발해 엄청난 세금과 특혜를 부여하며 경찰간부로 양성할 필요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는 “경찰대학생들은 재학 중 무상교육과 물품 수당을 지급받고, 졸업 후 경위로 자동임관해 빠른 승진의 기회를 보장받는 특혜를 누리는 바, 이는 우리 사회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특권이며, 그로 인해 국민의 평등권과 공무담임권을 과도하게 침해하거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따라서 경찰대학교 설치법은 이러한 이유에서 볼 때 위헌 소지가 높으며, 특히 ‘경찰대학 졸업자는 경찰공무원법에 의한 경위로 임명한다’는 제8조는 명백히 위헌이다”라고 강조했다.
세무대학 폐지 합헌·국공립 사범대 우선 채용 위헌… 헌법재판소 결정 사례 제시강 부장검사는 경찰대학 사례와 유사한 세무대학과 국공립 사범대에 관한 헌법재판소 결정을 소개하며 설립 당시와 달라진 사회 환경에서 경찰대학이 폐지돼야 하는 근거로 들었다.
헌재는 2001년 세무대학설치법폐지법률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세무대학 재학생, 휴학생 등이 학문의 자유, 신뢰보호의 원칙 등을 침해한다는 주장을 배척하고 기각(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세무대학설치법은 2년의 교육 연한을 마친 세무대학 졸업자를 전원 8급 공무원으로 특채하도록 정하고 있었는데, 헌재는 세무대학 설립 당시와 세무 교육 환경이 크게 달라졌다고 지적하며 세무대학을 폐지하는 법률의 제정 목적이 헌법적으로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또 헌재는 1990년 교사를 신규채용 할 때 국공립 교육대학·사범대학 졸업자를 우선 채용하도록 규정한 교육공무원법 제11조 1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강 부장검사는 보고서를 마무리하며 “5공 시절에 세워진 한국과학기술대학, 세무대학, 교원대학 등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한국과학기술대학은 KAIST 학사과정으로 편입되고, 세무대학은 폐교됐으며, 교원대학은 초창기의 특전들이 없어졌으나, 유독 경찰대학만이 특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이러한 특혜는 헌법상 평등권과 공무담임권을 침해하는 위헌적인 요소가 많다”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또 그는 “경찰대학으로 인한 1차 피해자는 경찰대학 출신의 간부 독점으로 인해 승진의 기회가 봉쇄된 하위직 경찰관이고, 2차 피해자는 경찰행정학과 출신의 경찰수험생들이며, 3차 피해자는 경찰대 출신이 아닌 경찰관들의 사기 저하로 인해 대국민 치안 서비스의 질이 낮아짐에 따른 국민들이라고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강 부장검사는 “경찰대 출범 이후 40여년간 우수한 인력들이 경찰 간부로 양성돼 긍정적인 역할을 해온 부분도 있을 것이다”라면서도 “그러나 경찰대 출신들의 소수 엘리트 집단화, 인사 불평등으로 인한 반목과 하위직 경찰들의 사기 저하는 큰 병폐로 지적되고 있으며, 군사정부 시절 설립돼 각종 특혜 시비를 야기해 온 경찰대학은 시대적 환경 변화에 따라 존립 근거를 상실했으며, 무엇보다 평등권과 공무담임권을 침해하는 위헌 소지가 높으므로 폐지를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졸속 입법으로 경찰대 출신 최대 수혜… “로스쿨 나온 경찰대 출신 전관예우 문제”강 부장검사는 아시아경제와의 통화에서 “아시다시피 지금 지난 정부에서 졸속으로 이뤄진 형사소송법 개정 때문에 수사지휘 공백 상태가 돼버렸다”며 “이번 사태를 주도하고 있는 것도 경찰대 출신들”이라고 했다.
그는 “실질적으로 사법에 있어서도 지금 검사의 수사지휘가 배제돼버렸고, 정보와 치안, 수사를 경찰이 다 독점하게 됐는데 경찰이 지금 경찰국 신설을 반대하는 것도 결국은 경찰대 출신들의 특권을 놓지 않겠다는 것이고, 실질은 경찰대 출신들이 검사 이상의 권한을 행사하는 그런 상황이 돼버렸다”고 지적했다.
강 부장검사는 경찰대 폐지 논의와 관련 “진작 위헌 논의가 있었어야 되는 사안인데 헌법소원이 제기되지 않았던 이유는 당사자 적격 문제 때문이다”라며 “장차 경찰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 헌법소원을 제기해야 되는데, 경찰이 되려는 사람이 경찰을 상대로 그 같은 헌법소송을 낸다는 건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최근 국가의 세금으로 지원을 받은 경찰대 출신이 로스쿨에 진학하는 사례가 점점 늘어나는 것에 대한 문제도 지적했다.
최근 한 시민단체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확인한 집계에 따르면 전국 25개 로스쿨에 재학 중이거나 휴학 중인 경찰대 출신은 196명에 달한다.
강 부장검사는 “요즘 가장 큰 문제가 경찰대 출신들 중 상당수가 로스쿨에 진학하고 있는 것”이라며 “의무복무 기간을 다 채우지 않더라도 반납해야 되는 돈이 많지 않다”고 했다.
이어 그는 “그렇기 때문에 국가의 돈으로 아마 1인당 4년 동안 한 2억 정도의 국가 돈이 들어갈 텐데, 그렇게 해서 국가의 세금으로 공부한 사람들이 로스쿨을 나와서 (변호사로 활동한다)”고 꼬집었다.
강 부장검사는 “더욱이 지금 수사권 조정 이후에는 경찰대 출신들의 몸값이 천정부지여서 오히려 지금 검찰의 전관예우가 문제가 아니라 경찰의 전관예우가 더 문제가 되는 상황이 돼버렸다”며 “민주당이 졸속으로 추진한 형사법 개정으로 가장 큰 혜택을 보는 사람들이 지금 경찰대 출신 경찰들이고 그 특권을 놓지 않겠다는 것이다”고 지적했다.
이어 “경찰이 그동안은 수사권 독립을 주장하다가 이제 경찰 독립을 주장하고 있는데, 전 세계 어느 나라에도 경찰이 독립하고 있는 나라는 없다”고 덧붙였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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