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된 한국인 위해 싸우다 구속.. 이 일본인은 왜 그랬을까
[윤성효 기자]
▲ '한국산연노조를 지원하는 모임' 오자와 다카시 사무국장과 부인 오자와 쿠니코 |
ⓒ 한국산연지회 |
일본 자본 산켄전기의 일방적인 청산·해산 발표에 맞서 '한국산연' 노동자들이 '폐업 철회' 투쟁을 벌이자, 일본에서 연대 활동에 나선 오자와 다카시(74)씨의 말이다.
산켄전기는 2020년 7월 홈페이지를 통해 창원 마산자유무역지역에 있던 한국산연(산켄)의 청산·해산을 발표했다. 노동자들이 가입해 있던 금속노조 한국산연지회는 공장과 서울 영업소 앞에서 천막·단식농성 등을 벌였다.
이런 가운데 한국산연지회는 사측(청산인)과 지난 6일 합의서에 서명했다. 구체적인 노사 합의 내용은 '비공개'였지만, 조합원들은 합의 내용을 받아들였다. 724일간의 긴 투쟁을 마무리한 것이다.
이 싸움에는 일본인들도 함께해왔다. 회사의 일방적인 폐업 방침 발표에 조합원들은 일본 '원정투쟁'까지 계획했지만 코로나19 상황에 갈 수 없었다. 그러자 일본 노동·시민단체와 개인이 나섰다. 도쿄를 중심으로 '한국산켄노조를 지원하는 모임'이 만들어졌고, 산켄전기 본사가 있는 지역에서는 '한국으로부터의 쟁의단과 연대하는 사이타마 시민모임'이 결성됐다.
이들은 매주 한 차례 산켄전기 앞을 찾아가 선전전을 벌이고 거리 행진하면서 '연대 투쟁'했다. 몸에 한국산연 노동자의 이름을 새기고 모형을 만들어 들고 다니며 거리로 나섰다.
이 과정에서 오자와씨이 구속되기도 했다. 투쟁하다 폭행 혐의로 경찰에 붙잡힌 뒤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 혐의가 추가돼 기소됐다. 현재 재판중이다. 그의 부인(오자와 쿠니코)은 지난 6월 산켄전기 주주총회에 주주로 참여해 한국산연 노동자들의 처절한 투쟁을 호소하면서 '직접 교섭'을 요구했다.
오자와씨는 "노동자들은 국경이 없다"며 연대투쟁에 나선 이유를 설명했다. 다음은 <오마이뉴스>가 오자와씨와 서면으로 나눈 인터뷰 내용이다.
"일본에서 호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 한국산연 노동자들을 지원하는 모임은 어떻게 결성됐나.
"한국산켄 노동자들의 해고 이야기를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같은 회사의 같은 노동자에 대한 해고 문제였다. 5년 전에 함께 했던 '해고 철회 투쟁'의 2차전이기도 했다."(한국산연지회는 2016년 구조조정 당시 원정투쟁을 벌여 '해고 철회'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 기자 말)
- 한국산연의 해산·청산은 어떻게 알게 됐나.
"몇 년 전부터 산켄전기의 움직임을 주시해 왔다. 2020년 7월 6일 산켄전기가 홈페이지를 통해, 그것도 사전에 아무 의논도 없이 일방적으로 한국산켄의 해산·청산을 발표했다. 그같은 사실을 확인하고 동시에 한국산켄 노조와 연대하기 시작했다."
- 해산·청산 발표에 한국산연 노동자들도 즉각 투쟁에 나섰는데.
▲ '한국산연노조를 지원하는 모임' 오자와 다카시 사무국장의 부인인 오자와 쿠니코 |
ⓒ 한국산연지회 |
- 한국 노동자 연대 투쟁을 하다 구속되기도 했다. 당시 상황은 어땠나.
"제가 체포된 게 2021년 5월 10일이었다. '월요일 항의행동'에 참가했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경남지방노동위원회는 판정을 내리기 전에 해고 문제를 노사의 의논으로 해결하도록 일주일간 화해 권고를 했다. 그런데도 한국산켄은 노사간 성실한 교섭을 하지 않았다.
화해 권고가 나왔으니 본사가 노조와 직접 의논을 하라고 요구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책임 있는 부서와 이야기를 하기 위해 회사 안에 들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경비원에 의해 제지를 당하고 밀려 나왔다. 그때 폭행죄로 경찰에 체포됐다. 이후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가 부가돼 기소됐다."
- 오랫동안 구속돼 있던 것으로 안다.
"구류돼 있다가 그해 12월 27일 간신히 보석으로 나왔다. 지금은 재판이 진행 중이다. 구류 기간에는 변호사 접견만 할 수 있었고, 가족도 면회를 못하는 '접견 금지'라는 부당한 조치를 받아 왔다. 제가 체포된 기간에 가택 수색을 받았다. 당시 아내는 암 투병 중이었다. 경찰은 현관문 열쇠를 2군데나 부수고 침입했고, 13명의 수사관이 6시간 동안 수색했다. 암투병 중인 아내가 있는 방을 포함해 사건과 관계 여부를 상관하지 않고 수색했다. 이는 '반인도적', '반인권적'이다."
- 부인이 힘들었을 것 같다.
"아내는 암 수술을 앞두고 면회를 해서 앞으로의 문제를 상담하려고 '접견 금지의 일부 해제'를 요구했지만, 검찰은 '아내가 면회실에 소형 녹음기를 몰래 반입하고 나의 이야기를 녹음해 증거 인멸을 도모한다'는, 있을 수 없는 황당무계한 이유로 면회를 금지했다. 또 구류 기간 중에 몇 번이나 보석신청을 했지만, 그때마다 '사이타마 시민모임'에서 자금 원조를 받아 도망하려 한다든가, 같은 활동을 하는 아내와 함께 도망하려 한다는 등 이유를 들어 보석 신청을 각하했다."
- 검찰 주장이 사실이었나.
"사이타마 시민모임은 적은 돈도 없는 단체다. 아내는 병든 몸이기 때문에 도망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한 마디로 전혀 부당한 장기 구류였다. 체포와 기소는 그해 6월 하순에 행해지는 산켄전기의 주주총회에 제가 출석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의도도 있지 않았나 싶다. 저는 주주총회에 참석해 한국산켄의 해고 문제를 제기하려고 당시 '1주'를 가진 주주가 돼 있었다.
그동안 진행된 일련의 과정을 보면, 체포·기소를 통해 저의 활동을 위축시키려 했던 것 같다. 일본과 한국의 국제연대를 끊으려고 하는 측면도 있었던 것 같다. 또 장기 구류는 글로벌 기업에 대항하는 대가가 혹독하다는 본보기를 보여주기 위한 측면도 있던 듯하다."
▲ '한국산연노조를 지원하는 모임' 오자와 다카시 사무국장 |
ⓒ 한국산연지회 |
- 일본 내에서 한국 노동자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며 어려움은 없었나.
"산켄전기 정문 앞은 주택가이고 도로가 좁다. 정문 앞에서의 항의 활동을 할 때, 근처 집이나 사람들로부터 확성기 소리가 시끄럽다며 불만을 듣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것이 제일 곤란했다. 때로는 주민들이 경찰에 통보를 해서 경찰관이 오기도 했다. 소리를 작게 하라고 해서 대응하는 게 큰 일이었다. 그런데 우리의 호소를 듣고는 '큰 일이다'라거나 '노력해 주세요'라며 격려해 주는 사람도 있었다. 음료나 과자를 주는 사람도 많았다.
우리는 투쟁하는 날이면 이른 아침부터 움직였다. 주 1회라고는 해도 매주했다. 멀리 있는 사람들은 새벽 서너시에 일어나서 전철을 갈아타고 참가했다. 또 매주 선전물을 발행했다. 대자본에 대한 분노와 '노동자에게는 국경이 없다'는 노동자 국제연대의 정신으로 지원 활동에 임해 왔다."
- 한국과 일본의 노동자·시민사회 연대 투쟁 의미는?
"우선 한국산켄은 일본계 기업이다. 한국 노동자에 대한 연대 투쟁은 '노동자는 국경이 없다'는 노동자 국제 연대였고, 그것은 곧 일본의 노동자·민중의 문제다. 지금은 '신자유주의 글로벌 경제 시대'다. 사람과 돈이 자유롭게 국경을 이동한다. 그런데 자본은 자유로운데 노동자·민중만이 분리돼 있다. '외자기업'이나 '해외 진출 기업'의 문제는 어느 나라에서나 일어나고 있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진출했던 기업의 횡포 문제는 곧 일본 노동자에게 놓인 상황이나 문제인 것이다."
- 한국산연 노동자들의 투쟁을 보고 들었던 생각은?
"정말로 끈질기게 그것도 목숨을 걸어가며 투쟁했다고 생각한다. 조합원이 많지 않았지만 단결해서 끈끈하게 투쟁했다. 여러 어려운 상황에서도 최대한 싸운 것에 대해 존경한다."
- 합의를 했지만 그래도 '폐업 철회'를 하지는 못했다.
"100% 승리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패배한 투쟁은 아니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세계에서 어느 기업이든, 일방적으로 노동자의 목을 자르는 것이 어떤 투쟁과 저항을 불러 오는 것인지를 보여줬다. 그것을 자본이 깨닫게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산켄노조의 투쟁을 통해 한국 노동자의 투쟁 정신을 배울 수 있었다. 오히려 우리가 감사드린다."
- 특별히 생각나는 사람이 있나.
"한국산켄 조합원인 김은형 민주노총 부위원장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한국산켄노조와 일본의 시민모임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존재'라고 표현했다. 또 우리를 '동지'라고까지 말해 줬다. 매우 고마운 평가로, 기쁘게 생각한다. 제가 체포, 구류 등 탄압을 받았을 때, 한국에서 보석금을 모금해줬고, 자신들의 일이라고 나서 주었다. 고맙게 생각한다."
- 일본 정부나 산켄전기에 하고 싶은 말은?
"한국산켄노조는 부산 영사관, 서울 대사관 앞에 거의 매일같이 찾아가서 해고 문제를 호소했기에, 일본 정부는 이 문제를 잘 알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본정부는 문제 해결에 나선 행적이 없었다. 일본 정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의 '해외 진출 기업의 행동 기준' 등 국제 규범이나, 진출한 나라의 법률이나 사회규범, 노동협약을 일본계 기업이 제대로 지키도록 제대로 지도·감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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