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악범은 귀순 진정성도 없나'.. 檢이 본 '강제 북송' 위법의 근거

양민철,구정하 2022. 7. 29. 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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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 "귀순과 귀북 의사 구별해야"
"탈북어민 살인, 수사·재판 가능"
북송 과정 재구성→소환 본격화
2019년 11월 8일 탈북어민들의 오징어잡이 선박이 해상에서 북한에 인계되는 모습. 서울중앙지검은 이 선박을 타고 귀순 의사를 표명했던 탈북어민 2명의 강제 북송 사건에 대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통일부 제공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3부(부장검사 이준범)가 수사 중인 ‘탈북어민 강제 북송’ 사건에 대해 지난 정부 주요 인사들은 그간 ‘귀순 의사 진정성’ 여부를 준거로 북송 정당성을 주장해 왔다. 2019년 11월 동해 북방한계선(NLL)으로 남하한 탈북어민 2명은 동료 선원 16명을 살해한 흉악범이며, 처벌 도피 목적으로 밝힌 귀순 의사는 진정성을 인정할 수 없어 신속한 추방 조치가 필요했다는 논리였다.

탈북어민 강제 추방 과정의 사실관계와 관계 법령을 들여다 보고 있는 검찰은 이 같은 항변이 담고 있는 위법성에 중점을 두고 수사를 확대하는 것으로 28일 나타났다. 검찰은 ‘귀순’ 의사와 북한에 돌아가겠다는 ‘귀북’ 의사는 서로 구별돼야 하며, 귀순의 목적은 귀순 의사를 판단하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관점에서 위법 여부를 규명하는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귀순? 귀북?… 강제 북송의 조건
앞서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 등 지난 정부 인사들은 “귀순 의사를 판정할 때는 목적이나 의도, 준비 과정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결정하는 것”이라고 강변해 왔다. 그러나 귀순을 하려는 목적과 귀순 의사를 밝히는 것은 별개로 봐야 한다는 것이 검찰의 시각이다. 귀순 목적의 진정성에 따라서 귀순 의사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검찰 관계자는 “귀순의 목적과 귀순 의사, 귀순 의사와 귀북 의사는 모두 구분해서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대한민국 영토에서 귀순 의사를 밝힌 북한 주민을 돌려보내는 것은 ‘귀북’ 의사를 밝힌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할 수 있다는 법조계 전반의 해석과 이어지는 대목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정부가 공식적으로 법령과 규범에 근거해 대한민국 영토에 온 북한 주민을 북한으로 보낼 방법은 없다”며 “귀순 진정성이 있어야 남한에서 받아들이는 게 아니고, (북한으로) 강하게 가겠다고 요구하는 경우에 한해 북송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탈북어민 북송 사건은 귀순 의사를 밝힌 북한 주민을 강제 추방한 최초의 사례로 꼽힌다. 우리 정부는 그간 어업 작업을 하다 표류해 온 북한 어민 등이 “북한에 돌아가고 싶다”는 의사를 강하게 피력하는 일부의 사례에서만 북송 조치를 시행했다. 별도의 법적 근거 없이 사실행위로 이뤄지는 인도적 조치였다.


“국민 기본권 제한, 위법성 있어”
검찰은 탈북어민 추방 과정에서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조치가 있었는지도 주목한다. 헌법은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경우 법률에 근거하도록 규정한다. 국가 안전 보장이나 공공의 복리 등의 목적이라도 법률상의 근거와 적법 절차를 거쳐야 한다. 공권력으로부터 국민의 기본적인 권리는 보호돼야 한다는 취지다.

검찰은 법적 근거와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국민 기본권을 제한하거나 침해했다면 위법 소지가 있다는 기초적인 법 원칙을 근거로 사실관계를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 탈북어민 추방하는 과정에서 안대와 포승줄이 씌워진 것에 대해 검찰은 불법체포 혐의 등이 적용될 수 있는지 따져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대법원 판례와 헌법재판소 결정례 등을 검토하며 북한 주민을 강제 추방하는 과정의 불법성도 검토하고 있다. 대법원은 1996년 “북한의 해외 공민증(북한 주민 신분증)을 가진 사람은 외국인이라는 입증이 없는 이상 출입국관리법에 근거해 강제 퇴거할 수 없다”는 판례를 제시했다. 당시 재판부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규정한 헌법 3조를 근거로 꼽았다. 북한 지역도 대한민국 영토이며, 북한 주민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해석이었다. 검찰은 이러한 판례들을 검토하며 탈북어민의 북송 과정에서 절차적 위법 여부를 살펴보고 있다.

“통상의 살인사건과 차이 없어”
지난 정부 인사들은 탈북어민들에 대해 “16명을 살해하고 바다에 유기한 엽기적인 살인마”라는 견해를 내세웠다. 우리 정부가 이들에 대해 수사와 재판을 통해 단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당시 정부의 입장이었다. 탈북어민 2명이 살인 혐의를 자백하며 일치한 진술을 내놨지만, 바다에서 벌어졌던 살인 사건을 단순히 진술만 가지고 유죄 판결까지 이끌어내긴 어렵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 같은 주장에 대해 “통상적인 살인 사건과 비교해 봤을 때, 수사가 어려운 사례로 보긴 어렵다”는 입장이다. 당시 탈북어민의 어선 등에 대한 수사가 진행됐다면 살인 혐의 역시 실체적 진실 규명에 나아갈 수 있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검찰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살인 사건은 피해자가 없고, 목격자 역시 드문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자백과 더불어 과학적 수사 기법(혈흔 감식 등)을 통한 증거 발견이 필수적이며, 이를 바탕으로 기소·판결까지 이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수사팀은 과거 탈북민이 대한민국에 들어오기 전 해외에서 저지른 성폭력 등의 범죄로 국내에서 처벌 받은 전례도 확인했다고 한다. 검찰 관계자는 “실제로 수사가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확정적으로 말할 순 없다”면서도 “(탈북어민 살인 혐의는) 살인 사건의 특성이나 일반적인 수사 기법을 고려해봤을 때 충분히 유죄 선고를 받을 수 있던 사건”이라고 말했다.

송인호 한동대 법학부 교수는 “(당시 정부가) 증거가 부족해서 유죄판결이 어렵다고 단정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거꾸로 그렇게 증거가 부족했다면 어떻게 16명을 살해한 살인범이라고 단정했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통치행위는 어디까지 인가
탈북어민 강제 추방은 대통령의 통치행위에 해당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검찰은 엇갈린 견해를 내비치고 있다. 검찰은 현재까지 수사 단계에서 통치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하긴 어렵다는 입장이다. 다만 군사정부의 유신헌법에 근거한 긴급조치는 위헌이며, 통치행위 역시 헌법과 법률에 근거해야 한다는 판례를 살펴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원은 2004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 판결에서도 2000년 남북정상회담 개최 자체는 통치행위로 사법 심사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지만, 사업권 대가 명목의 송금 행위 자체는 통치행위가 아니므로 사법 심사 대상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검찰은 탈북어민 강제 북송 사건을 수사하며 특정 인물보다 사실관계를 중심으로 수사를 전개한다는 입장이다. 국가정보원은 최근 직권남용권리행사 방해 등 혐의로 서훈 전 원장 등을 고발했다. 지난 26일 미국에서 귀국한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에 대해서도 검찰은 입국 시 통보 조치를 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탈북어민 북송 과정을 면밀히 재구성한 후 이 과정에 관여한 주요 인사들을 소환해 본격적인 혐의 다지기에 돌입할 전망이다. 검찰 관계자는 “법과 원칙에 따라서 객관적 진실을 엄정하게 규명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했다.

양민철 구정하 기자 list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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