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뜻을 받들 때가 아니다

남도영 2022. 7. 29.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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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과 권성동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주고받은 텔레그램 문자가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양산해내고 있다. 이준석 대표에 대한 윤 대통령의 평가, 이 대표의 미래, 윤핵관의 위상과 같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스토리들이다. 문장 3개와 이모티콘 한 개가 보여주는 서사의 힘은 놀라울 정도다. 권 대행의 답 문자도 많은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우리 당도 잘하네요’라는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대통령님의 뜻을 잘 받들어 당정이 하나 되는 모습을 보이겠습니다”라고 답했다. ‘뜻을 받들어’의 저작권은 박근혜정부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에게 있다. 김 전 실장은 2013년 취임 후 첫 공식 브리핑에서 “윗분의 뜻을 받들어서 비서실장이 한 가지 발표를 드리겠다”고 말했다.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극존칭 화법이자, 박근혜 청와대 내부 풍경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발언이었다.

9년 만에 뜻을 받들겠다는 다짐이 정치권에 등장했다. 국가 최고지도자에 대한 예의 차원에서 사용한 말이었을 것이다. 받들다는 말은 가르침이나 명령, 의도 따위를 소중히 여기고 마음속으로 따른다는 뜻이다. 권 대행이 윤 대통령의 뜻을 잘 받들겠다고 말한 순간, 여당의 위상은 추락할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 재선 송석준 의원은 27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출신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에게 “윤 대통령을 존경하십니까”라고 물었다. “대기하고 있는 후임자보다 윤 대통령을 더 존경할 수 있겠느냐”고도 했다. 전 위원장의 용퇴를 촉구하려는 뜻이었겠지만, 존경은 부적절한 표현이었다. 대통령 뜻을 잘 받드는 여당과 대통령을 존경하는 사람만이 앉을 수 있는 국가기관장. 집권세력의 역동성이 사라지고 있는 풍경이다.

갓 출범한 윤석열정부는 일방적 모습을 자주 보였다. 어려운 일들을 강공으로만 해결하려 했다. 경찰을 설득하기보다는 진압을 선택했다. 민감한 외교안보 문제 공개에도 거침이 없다. 우회로를 찾거나 멈출 때도 있어야 하는데, 오직 직진이다. 방향이 정확한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도 없는 상황이라서 더욱 불안하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과 정부를 검찰·관료 출신을 중심으로 채웠다. 검찰은 상명하복의 문화가 강하다. 관료 역시 상급자의 명을 이행하는 데 특화된 조직이다. 국정 운영은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갈등을 중재하는 일이다. 정치 행위가 필요하다. 검찰과 관료 출신은 정치에 익숙하지 않다. 정치를 해야 할 국민의힘은 그럴 의사가 없어 보인다. 국민의힘은 그동안 노선이 다른 사람들을 배제해왔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경제민주화’ ‘약자와의 동행’ 등 프레임을 짤 수 있는 역량을 갖춘 것으로 평가됐지만, 대선 과정에서 당을 떠났다. 유승민 전 의원은 ‘따뜻한 보수’라는 장점을 가진 정치인이다. 유 전 의원은 지난 지방선거 경기지사 경선에서 친윤계인 김은혜 전 의원에게 패배했다. 김 전 의원이 윤 대통령의 뜻에 따라 경기지사에 출마했는지는 불확실하다. 다만 겉으로 보기엔 윤 대통령 측이 김 전 의원을 보내 유 전 의원을 제압한 모양새였다. 이준석 대표도 결국 징계를 당했다. 윤 대통령이나 윤핵관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인사들은 대부분 밀려났다. 새로운 권력이 들어서니 당연한 풍경일 수 있다. 하지만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사람들을 배제하다 보니 남은 것은 무조건 직진하는 허약한 단일대오다.

일방주의는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상대방의 의도나 견해에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자신의 이익과 목적만을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지금 윤석열정부에는 일방주의를 강제적으로 관철할 강력한 힘이 없다. 지지기반은 약하고 반대세력은 강하기 때문이다. 미국 중심의 외교는 중국의 반발을 부를 것인데, 대책을 세우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북한에 당당하게 맞서겠다고 하지만 남북 긴장 고조를 막을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대선과 지방선거에 패배했지만 민주당은 여전히 강력한 원내 다수당이다.

윤석열정부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일방주의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보수 정권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왼쪽으로, 진보 정권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오른쪽으로 이동해야 한다. 지금 국민의힘은 하나가 되어 대통령 뜻을 받들 때가 아니다. 오른쪽으로만 직진하는 정권에 경고등을 켜고 제동을 걸어야 할 때다.

남도영 논설위원 dy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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