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하락 '미운털' 공매도 감시 강화한다
공매도로 얻은 부당이득을 회수하고 처벌도 강화한다. 패스트트랙(신속 수사 전환)을 활용해 수사 기간을 6개월 이상 단축하고 외국인과 기관 투자가에 대한 감시도 강화한다. 금융위원회와 대검찰청·금융감독원·한국거래소는 8일 이런 내용의 ‘불법 공매도 적발 및 처벌 강화, 공매도 관련 제도 보완 방안’을 발표했다.
공매도는 주식을 빌려서 판 다음 나중에 다시 사서 갚는 방식의 투자 기법이다. 주가가 내려가야 수익을 낼 수 있어 그간 개인투자자 사이에선 주가 하락의 원흉으로 꼽혔다.
이미 지난해 4월 불법 공매도에 대한 과징금·처벌이 도입됐지만,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는 게 금융당국의 판단이다. 불법 공매도에 대한 처벌은 1년 이상 유기징역 또는 부당 이득액의 3~5배 벌금으로, 자본시장법상 가장 높은 수준이다. 윤병준 대검찰청 반부패부 과장은 “증권범죄합수단이 복원됐고 앞으로는 전과는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패스트트랙도 활용한다. 지금까진 한국거래소에서 이상 징후를 인지한 후 금감원, 증권선물위원회 조사·심의를 거쳐 검찰 수사가 진행됐다. 이윤수 금융위 자본시장정책관은 “증선위 심의 절차를 생략하고 바로 강제 수사가 이뤄지면 통상 2~3년 걸리던 불공정 행위 조사 기간을 6개월~1년은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매도 주요 세력으로 꼽히는 기관·외국인이 공매도를 목적으로 90일 이상 주식을 빌리면 금융당국에 보고해야 한다. 공매도 잔고 대량보유 보고 내용에는 상세 대차정보(당일 시작·마감 대차잔고)를 포함해야 한다.
반면 개인 공매도 기회는 확대한다. 개인 공매도 담보 비율을 140%에서 120%로 인하한다. 기관은 대개 담보 비율이 105~120%에 불과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공매도 과열 종목 지정 요건도 확대한다. 공매도 비중이 30% 이상이면 과열 종목으로 지정한다. 현재는 주가 하락률이 3% 이상이거나 공매도 거래대금 증가율이 2배 이상이어야 과열 종목으로 지정했다. 공매도 금지일에 주가가 5% 이상 떨어지면 다음 날까지 공매도 금지 기간이 자동 연장된다. 금융위는 이번 조치로 과열 종목 지정 건수는 13.8%, 과열 종목 지정일수는 15.4% 늘어날 것으로 본다.
이번 대책의 도화선이 된 것은 한국투자증권의 공매도 제한 규정 위반이다. 금감원은 한투증권이 2017년 2월부터 3년 3개월간 삼성전자(2552만주) 등 900여 개업체의 주식 1억4000만주를 공매도라고 표시하지 않고 매도했다며 10억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이에 대해 한투증권 관계자는 “프로그램 설정 오류에 의해 잘못 표기돼 나간 것”이라며 “불법 무차입 공매도와는 다르다”고 해명했다.
같은 시기 신한금융투자(7200만원), CLSA(6억원), 메리츠증권(1억9500만원), KB증권(1200만원) 등도 공매도 규정 위반으로 각각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이번 대책엔 윤석열 대통령도 의지도 반영됐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27일 오후 “자본시장의 불법 공매도와 공매도를 이용한 시장 교란 행위에 대해 투자자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고, 이런 상황에서는 우리 주식시장이 투자자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며 “공매도를 둘러싼 불법행위를 반드시 뿌리 뽑겠다는 각오로 금융 당국과 검찰이 대책을 수립하라”고 지시했다.
윤 대통령이 취임 뒤 주식시장과 관련해 공개 메시지를 낸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국정 지지율과 주가가 함께 하강 곡선을 그리는 가운데 윤 대통령이 공매도를 콕 집어 언급한 것이다.
금융투자업계는 당황한 분위기다. 익명을 요구한 증권사 관계자는 “최근 공매도가 더 늘거나 주가 하락세가 가팔라진 것도 아닌데 갑작스럽게 처벌 위주의 대책이 나왔다”며 “갑자기 공매도가 도마 위에 오른 것은 개인 투자자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려는 정무적인 이유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있다”고 말했다.
최현주·박태인·정은혜 기자 chj8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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