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 인형' 하나로 바뀌는 소년범들.. 질책보다 기회를 주세요
[최원훈 기자]
▲ 한 보호관찰소의 소년 상담실 |
ⓒ 최원훈 |
보호처분은 가볍다?
과거 보호관찰소에서 성인 보호관찰 업무를 맡은 경험이 있다. 집행유예 처분을 받은 성인은 일정 기간 동안 보호관찰관의 지도·감독을 받게 된다. 가장 흔한 사건 중 하나가 '음주운전'이다. 내가 맡은 대상자 중 음주운전과 무면허 운전으로 재판을 7회 받은 성인 남성이 있었다. 7번 법정에 서는 동안 실형을 선고받은 적이 한 번도 없고, 벌금형과 집행유예만 선고받았다. 보호관찰은 4번째였다.
소년원에 가면 절도한 오토바이나 차량을 무면허로 운전해서 보호처분 중 9호(소년원 6개월)나 10호(소년원 2년) 처분을 받은 소년들이 많다. 물론 그중에는 촉법소년들도 있다. 음주운전과 무면허 운전을 한 어른들이 형의 집행을 유예받고 사회 내 처우인 보호관찰 처분을 받아 자유를 누리며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것과 비교했을 때, 아이들은 가벼운 처분을 받은 것일까? 가정과 학교의 보호를 받지 못해 일탈한 촉법소년이 자유를 박탈당하고 최대 2년 동안 소년원에 수용되는 것은 결코 가벼운 처분이 아니다.
A군은 00역 인근 노상에서 학교 후배인 피해자 B가 소지하고 있던 담배를 빼앗았다. 이에 격분한 B가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하자 주먹으로 B를 폭행했다. 또한 평소 B가 사회관계망 서비스(SNS)를 통해 자신의 뒷담화를 하고 다닌다는 말을 전해 듣고 B를 놀이터로 불러 내어 폭행한 후 2만 원을 교부받았다.
소년사건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폭행사건이다. 비슷한 사건으로 보호관찰 처분을 받기도 하고 소년원 처분을 받기도 한다. A와 B는 중학교 선후배 사이다. 둘 다 학교에서 소위 일진, 노는 아이들이다. 나름의 위계질서가 있고 질서는 폭력으로 잡는다.
학교폭력으로 보호처분을 받은 소년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가 있다. '그들만의 폭력'이 대부분이라는 것. 노는 선배가 노는 후배들에게 돈을 걷어오라고 시키거나 자신의 뒷담화를 하고 다닌다며 불러내서 폭행한다.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제 때 갚지 않는다고 협박하고 폭행한다.
청소년비행예방센터(청소년꿈키움센터)에서 담임으로 근무할 때다. 청소년비행예방센터는 학교 부적응, 절도, 경미한 학교폭력 등의 비행초기 단계 위기청소년의 대안교육이 주된 업무다. 그런데 모의법정 시설을 갖추었기 때문에 중학교 회장·부회장 학생들이 모의법정 프로그램 체험을 위해 방문한다. 그중 한 남학생에게 물어보았다.
"학교폭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그 학생은 나를 빤히 쳐다보며 태연하게 말했다.
"관심 없어요."
경제적으로 여유롭고 안정적인 가정환경에서 성장한 소위 모범학생들에게 학교폭력은 남의 일처럼 느껴지는 것 같았다. 한편으론 전통적 의미의 일진, 집도 잘 살고, 공부도 잘하고, 싸움도 잘하는 그런 학생들은 소년사법절차에서 자취를 감췄다고 볼 수도 있다. 소년원에서 소위 메이커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을 만나는 것은 무척 드문 일이다.
▲ 보호관찰 소년들에게 원호한 학용품과 생필품, 인형들 |
ⓒ 최원훈 |
몇 년 전, C양(16)은 '사기'로 보호관찰 처분을 받았다. 보이스피싱 사기단의 일명 '현금 수거책' 역할을 맡아 피해자에게서 현금을 건네받아 편취했다. 물론 몸통인 사기단은 돈을 받고 중국으로 도주했다. 지병으로 병원 진료를 받는 어머니와 단둘이 살면서 기초생활수급자 지원금으로 생활하던 C양은 돈이 필요했다. 어른들도 기망하는 보이스피싱 사기단이 청소년들을 이용하는 것은 손쉬운 일이었다. C양의 생애 첫 범죄였다.
C양이 경찰조사 과정에서 밝힌 범행이유는 학원비가 필요해서였다. 자신이 원하는 대학과 학과에 진학하기 위해 '학원'이란 걸 다니고 싶었다. 소년부 판사는 C양에게 보호관찰 처분을 결정했다. 비행초기 단계 위기청소년을 보호관찰을 통해 건전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법 집행은 재범을 방지하고 미래의 성인범죄를 예방하는 가장 현실적인 정책이다.
보호관찰관은 대상 소년들을 지도·감독하면서 준수사항을 위반하거나 재범을 저지른 소년들에게 구인장 집행 등의 제재를 가하여 엄격하게 지도한다. 반면 어려운 환경 속에서 스스로의 의지로 환경을 극복하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소년들에게는 사회 자원을 통해 원호·지원도 한다. 생필품과 학용품을 지원하고 생일을 맞은 소년에게 곰인형도 선물한다. 아이들의 자존감을 높여주고 정서적인 안정에 도움을 주기 위한 지원을 하는 것이다. 검정고시에 합격하거나 대학에 진학하면 장학금을 지급하여 격려한다.
▲ 보호관찰관의 지도·감독에 잘 따르며 학교생활이나 아르바이트를 성실하게 하는 모범 소년들의 정서적인 안정을 위해 선물하는 인형들 |
ⓒ 최원훈 |
사회적 편견과 달리 보호처분을 받은 소년들 중엔 배달이나 택배 물류센터, 건설현장, 식당, 카페, 편의점 등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학교를 다니거나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이들이 많다. 가정과 학교에서 공감과 지지를 받고 보호를 받았다면 법정에 서지 않았을 아이들이 상당수다.
특히 보호관찰 처분을 받은 소년의 대부분은 상습 범죄소년이 되지 않고 자신의 길을 찾아간다. 2020년 기준, 소년 보호관찰 대상자의 재범률은 13.5%이다. 86.5%의 소년들은 보호처분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하고 정신적으로 성장해서 가정과 학교에 안정적으로 복귀했다.
혼자만의 의지와 노력으로는 힘든 일이다. 그래서 보호관찰 기간 동안 보호관찰관과 상담교사 등 멘토들의 도움을 받는다. 그 결과 검정고시 합격이나 대학 진학, 취업을 통해 비행적 하위문화에서 벗어나게 되고, 성인이 되면서 건전한 사회 구성원으로 정착한다.
소년부 법정에서 자신의 범죄사실을 부인하는 소년범은 없다. 지켜보고, 거듭날 수 있는 기회를 주자. 죄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지만 너무 분노하고 질책만 하지 말자. 아이들이기에 격려와 지원도 필요하다. 포근하고 귀여운 곰인형 하나 선물 받은 추억이 소년들의 동심을 끌어낼 수도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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