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각] 70년이 지났어도.. 돈 크라이 포미 아르헨티나

장진영 2022. 7. 28.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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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전 세상을 떠난 아르헨티나의 영원한 퍼스트레이디 에바 페론을 향한 추모 열기가 뜨겁게 이어지고 있다.

26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에바 페론 70주기 추모식에서 시민들이 행진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26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촛불을 든 인파가 거리를 가득 채웠다.

에바 페론의 묘소를 찾은 추모객. EPA=연합뉴스
추모객들이 에바 페론의 묘소 인근에 줄지어 서있다. AP=연합뉴스

마리아 에바 두아르테 데 페론(1919∼1952). '에비타'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그녀는 1946~1955년, 1973~1974년에 걸쳐 집권한 후안 도밍고 페론의 두 번째 부인으로 후안의 집권 첫해부터 1952년 33살 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영부인을 지냈다. 그의 이야기는 마돈나 주연의 영화에 등장한 노래 '돈 크라이 포 미 아르헨티나'(Don't cry for me Argentina)로도 우리에게 익숙하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에 붙여진 에바 페론의 포스터. AFP=연합뉴스


시민들이 아르헨티나 국기를 들고 에바 페론의 묘소로 향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에비타의 어린 시절은 가난했다. 15세에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상경해 배우 생활을 시작했다. 1946년 한 모금행사에서 당시 노동부 장관이었던 후안을 만나 결혼했다. 후안의 대선 유세에 아름다운 외모와 뛰어난 말솜씨를 더해 그의 승리를 도와 27세의 나이로 퍼스트레이디의 자리에 올랐다.

거리에 가득한 에바 페론을 향한 추모 물결. AFP=연합뉴스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의 한 레스토랑에 에바 페론의 사진과 촛불이 놓여있다. AP=연합뉴스

에비타는 여성운동과 노동운동에 헌신하며 대통령인 남편보다 더 많은 인기를 누렸다. '빈민의 성녀'라 불리기도 했지만, 과도한 포퓰리즘 정책으로 국가 재정을 악화시키기도 했다.

아르헨티나 정부 청사 건물에 에바 페론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AFP=연합뉴스

70주기를 맞아 그가 잠든 공원묘지에는 꽃을 든 추모객들이 줄지었고, 거리와 정부 청사 건물에도 에비타의 얼굴이 가득 채워졌다. 평가는 극과 극이지만 에비타를 향한 그리움은 계속되고 있다.

장진영 artj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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