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정부 '공매도와의 전쟁' 선포.. 개미들 "못믿겠다"
금융당국·검찰, 대대적 수사·처벌 예고
누적된 불신 깨려면 오랜 시간 걸릴듯
한국투자증권의 공매도 규정 위반 사태로 투자자 여론이 들끓자 정부가 불법 공매도 대책을 긴급히 발표했다. 검찰을 투입해 불법 공매도 행위를 더 강하게 처벌하고 이로 인한 수익과 숨겨둔 재산은 철저히 환수하겠다는 게 골자다. 지난 수십년간 자본시장의 고질적 병폐로 지목돼온 불법 공매도가 이번 기회에 근절될지 주목된다.
금융위원회와 대검찰청,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는 28일 관계기관 합동회의를 개최하고 ‘불법 공매도 적발·처벌 강화 및 공매도 관련 제도 보완 방안’을 발표했다. 전날 한국투자증권이 공매도 규정을 어기고 삼성전자 주식 2500만여주 등을 실매도인 것처럼 거래한 사실이 공개된 데 따른 대응이다(국민일보 7월 28일자 1·2면 참고). 윤석열 대통령은 전날 “불법 행위를 반드시 뿌리 뽑겠다는 각오로 금융당국과 검찰 등 관계 기관이 관련 대책을 수립하라”고 지시했다고 대통령실은 밝혔다.
검찰도 투입된다. ‘여의도 저승사자’로 불리는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이 조사당국의 정보를 바탕으로 ‘패스트트랙 절차’를 적극 활용해 수사에 나설 계획이다. 패스트트랙은 사안이 긴급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일부 절차를 건너뛰고 신속하게 수사에 착수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이윤수 금융위 자본시장국장은 “통상 2~3년 걸리는 조사과정을 단축해 적시에 강제수사를 개시함으로써 주가조작·불공정거래 사범을 처벌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처벌도 강화해 피해 규모가 큰 경우 법인에게도 고액의 벌금을 부과하는 등 엄정 구형한다는 방침이다. 불법 공매도로 얻은 범죄수익과 은닉재산은 박탈해 환수한다. 윤병준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 수사지휘지원과장은 “불법 부당이득의 3~5배 상당의 벌금을 구형할 수 있는 자본시장법을 적극 이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또 외국계 증권사 등 기관들이 공매도 주문 프로세스를 적정하게 운영하고 있는지 들여다볼 계획이다. 공매도 주문 시 주식 차입 여부를 확인하는 등 무차입 공매도 위반도 상시 모니터링한다.
이날 발표된 ‘공매도 관련 제도 보완방안’의 핵심은 과열종목 지정제도 개선이다. 주가하락률·공매도 거래비중 등 지표를 활용해 특정 기준을 만족하면 공매도를 금지시키는 제도다. 하지만 시장 충격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해 ‘계륵’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과열종목 지정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공매도 거래비중이 아무리 높아도 주가하락률이 5% 미만이거나 공매도 거래비중이 6배 이상 증가하는 경우가 아니면 과열종목으로 지정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공매도가 금지된 당일에 주가가 아무리 폭락해도 다음 거래일에는 공매도가 재개돼 주가 하락을 부추기기도 했다.
정부는 앞으로 공매도 거래비중이 30% 이상인 종목에 대해 과열종목 지정 기준을 강화한다. 주가하락률 기준은 5%에서 3%로, 공매도 증가율은 6배에서 2배로 대폭 좁혀진다. 한국거래소 시뮬레이션 결과 개선된 제도가 도입되면 과열종목이 연 690건에서 785건으로 13.8%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 과열종목으로 지정돼 공매도가 금지된 당일 주가가 5% 이상 하락할 경우 공매도 금지 기간이 다음 거래일까지 자동으로 연장된다. 시뮬레이션 결과 과열종목 지정일수가 연 690일에서 796일로 15.4% 증가했다.
현재 140%로 묶여있는 개인의 공매도 담보 비율은 120%로 조정된다. 그동안 개인투자자들은 기관·외국인(105%)과 달리 140% 담보비율을 적용받는다는 점에서 ‘불공정 논란’이 있었다.
정부가 개인 투자자들의 호응을 얼마나 이끌어낼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그간 정부와 금융당국은 성향을 막론하고 불법 공매도를 엄정하게 단속·처벌하고 있다고 공언해왔다. 하지만 이번 대책은 그간 공매도 폐해를 방치해왔다고 인정한 셈이다.
공매도 제도에 대한 불신이 오랜 기간 누적된 개미들은 정부의 ‘불법 공매도와의 전쟁’ 의지를 쉽사리 믿지 못하는 분위기다. 기관·외국인 자금이 자본시장 주축으로 자리잡은 상황에서 금융당국이 애초에 공매도를 진지하게 손볼 의지가 없는 게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실제로 불법 공매도에 대한 형사처벌을 가능케 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2020년 12월 국회를 통과했음에도 실질적인 ‘엄정처벌’이 이뤄진 사례가 없다. 이런 불신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합수단 등이 나서 불법공매도 적발 시 높은 형량을 구형하는 등 실제 행동을 보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개미들이 그간 요구해온 공매도 제도 개선 방향이 대부분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도 분노를 사고 있다. 개미들은 개인 투자자의 담보비율을 낮추는 게 아니라 기관·외인의 담보비율을 높여 무분별한 공매도를 막아달라고 요청해왔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실상 무제한인 공매도 상환 기간을 개인 수준(90일)으로 제한해달라고 했으나 당국은 “국제관례상 어렵다”며 난색을 표했다.
실제로 공매도 규정위반 사례가 횡행하고 있다는 점도 성난 민심을 자극하고 있다. 막연한 의심으로 여겨졌던 불법 공매도가 하나둘씩 드러나자 개인 투자자들을 중심으로 비난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특히 한국투자증권이 ‘국민주’로 사랑받아온 삼성전자에 2552만주에 달하는 규정위반 공매도를 실행했다는 사실에 투자자들은 경악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공매도 한시적 금지’와 대립하기 위해 ‘친(親)공매도 발언’을 이어간 여당은 곤혹스러운 처지가 됐다. 전날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정책위원회-금융투자업계 현장 간담회’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공매도 제도는 시장을 안정시키는 제도 중에 하나”라고 밝혔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도 “공매도를 크게 보면 시장을 억압하는 상황은 아닌데 좀 크게 보이는 것 같다”고 했다.
김지훈 이상헌 임송수 기자 germa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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