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우영우'에서 소 도축장까지 가는 길은 멀지 않다
[전채은 기자]
최근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나에게 이 드라마는 특별하다. 법전을 모두 외우고 서울대 법대를 수석 졸업했으나 회전문을 지나가지 못하는 그녀의 행동이 나에게 결코 낯설지 않다.
동물에 전혀 관심 없던 내가 20년 동안 줄곧 동물 관련 일을 해왔던 것은 무엇보다 동물을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때 만났던 것이 템플 그랜딘이라는 동물행동학자였다. 템플 그랜딘은 우영우 변호사처럼 자폐를 가지고 있다. 템플 그랜딘의 '테드 강연'은 우영우의 법정 장면을 만드는 데 참고가 됐다고 한다.
그랜딘 박사가 보는 세상
어느 날 그랜딘 박사는 자신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 동물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랜딘 박사에 의하면 인간은 세상을 언어로 이해하지만 동물은 그림으로 이해한다. 마치 동물의 시선에 잡히는 세상은 슬라이드가 하나씩 지나가는 장면 같다고 한다. 우영우 변호사가 자신이 필요로 하는 법전 구문을 떠올릴 때 법전이 하나씩 슬라이드처럼 지나가는 장면이 그것이다.
그들은 디테일한 것을 아주 자세히 볼 수 있으나 모든 현상을 일반화하여 이해하는 것에는 서툴다. 동물에게 환경의 변화는 아주 극도의 공포감을 줄 수 있다. 템플 그랜딘은 미국의 가축 관련 시설의 60% 이상을 직접 설계했다. 동물의 시선으로 어떻게 시설을 만들어야 동물에게 고통을 덜 줄 수 있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들, 도로에 떨어진 작은 종이컵 하나. 바닥에 고인 물 때문에 반짝 비치는 반사광, 바닥 재질이 갑자기 바뀌는 것, 공중에 달린 쇠줄이 흔들리며 내는 소리, 갑자기 시야 앞에 훅 들어오는 사람들. 이것은 동물에게 공포 그 자체다.
그랜딘 박사에 의하면 동물은 낯선 환경에서 느낀 공포 자체도 문제지만 공포를 결국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차고 문만 보면 공포스러워하는 말의 행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자신이 넘어졌을 때 우연히 차고의 문이 보였다면 그 말은 지속적으로 차고문을 보면서 공포를 반복적으로 느꼈을 것이다.
▲ 10년전 황폐했던 청주동물원의 곰사는 이제 새롭게 변화했다. |
ⓒ 전채은 |
▲ 남의 눈에 띄지 않는 이 낚시바늘이 왜 나의 눈에는 잘 보이는 것일까. 버려진 낚시바늘과 줄로 인해 많은 야생동물이 다칠 수 있다. |
ⓒ 전채은 |
그랜딘 박사가 가장 활발하게 연구한 것은 도축의 방식이다. 그녀 스스로 자신에게 자문해보았다고 한다. 소는 내가 너무 사랑하는 동물인데, 동물을 도축하는 방식을 연구하는 것이 맞을까? 답은 소는 인간이 필요에 의해 만든 동물인 만큼 우리 인간이 그들의 고통을 줄여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내가 고기를 먹기 싫다면 그것은 나의 선택이다. 그러나 나를 제외한 많은 사람은 실제로 고기를 먹고 있다. 그들에게 동물이 인간과 같이 대우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고기를 그만 먹자고 말할 수는 있다.
그러나 나의 경험상 그것은 효과적인 방법은 아니다. 뇌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누군들 동물을 학대하고 싶을까. 단 무엇을 어찌해야 하는지 몰랐고, 해고라도 당할까 두려웠고, 방법을 몰랐을 뿐이다. 나의 의무는 그들을 돕는 것이다. 동물을 실질적으로 돕기 위해서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법으로는 도축장에서 전기봉으로 동물을 자극하여 모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처벌 규정도 없고, 전기봉으로 몰지 않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이 현장에 부재하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쓰이고 있다.
왜 돼지가 꽥꽥거리면서 우왕좌왕하는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으니 문제를 해결할 방법도 없다. 돼지의 꽥꽥거리는 소리는 대표적인 공포반응이다. 두려움을 느끼는 돼지가 움직이려 하지 않으니 직원은 빠른 작업 속도 때문에 돼지를 때릴 수밖에 없고, 그 돼지를 보는 옆 동료는 다시 공포스러워 한다.
▲ 소의 발굽을 관리하지 않은 채로 도축장으로 오게 된 경우 미끄러운 바닥에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는 경우가 있다. 오랜 기간 살만 찌우는 방식으로 사육했기 때문이다. |
ⓒ 제보자 제공 |
이런 소들은 농장에서 쓰러질 수도 있고, 도축장에 와서 쓰러질 수도 있다. 미국과 EU 모두에서 쓰러진 소를 의식이 살아있는 채로 끄는 것은 금지되어 있으나 우리는 아직 관행처럼 이루어지고 있다. 그랜딘 박사가 가장 우려스러워하는 부분이다. 나쁜 행동을 그대로 방치하면 관행이 되고 습관이 된다.
▲ 도축장 고양이 |
ⓒ 전채은 |
사회적 약자는 말이 없거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사회적 약자를 돕는다는 것은 지식과 용기가 전제가 되어야 한다. 회전문 앞에 서성이는 사람을 발견할 수 있는 눈이 필요하고, 그의 손을 잡고 함께 회전문 안으로 들어가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갈수록 태산... 일본의 적반하장에 꼼짝 못하는 한국
- 문자파동 '강기훈' 논란..."대통령실, 극우 유튜버 일자리 요람됐나"
- 찬송가·욕설 맞서 불경 튼 문 전 대통령 이웃 "살고 싶어 이런다"
- '합법적'으로 버티는 사측... 정말 이상하지 않습니까?
- 박지원 "예측된 김정은 발언, 윤 대통령 선제타격할 건가?"
- 인하대 사건이 '젠더갈등'? 망자에 대한 예의 잊은 여가부 장관
- "내부총질" 문자 사태, 세 가지 동상이몽
- [오마이포토2022] '개인정보 약탈 동의 못해!' 페북·인스타 규탄
- 김건희 여사, 27일 만에 공개행보... 정조대왕함 진수식 참석
- 대통령실 "강기훈, 극우라는 단정 위험... 취업 경로는 못 밝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