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車 부품사] 전기차에 치이고 비용 다 오르고..미래 안보인다
원자재 가격 부품단가 반영 안돼..인건비·운송비 급등
[아시아경제 성기호 기자, 김철현 기자, 김보경 기자] 전북지역 자동차 부품사들은 2018년 한국GM 군산공장 폐쇄 이후 덮친 복합 악재에 심각한 경영위기를 겪고 있다. 미래차에 대한 투자는 엄두도 못내는 실정이다. 내연기관 자동차 부품을 주로 다루다 미래를 위해 전기차 부품으로 사업 구조를 바꾸는 것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게 업체들의 토로다. 이 지역 자동차 부품 업체인 코스텍의 이성기 대표는 "전기차 부품으로 바꾸려면 인력, 자본, 수요처가 필요한 데 이게 다 맞기가 어렵다"며 "변화하려도 해도 이끌어 줄 곳이 없는 게 현실"이라고 하소연했다.
자동차 산업의 핵심인 부품산업이 공멸 위기에 놓인 것은 구조적인 문제에 기인한다. 완성차 업체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은 부품업체는 자동차 생산 부진은 곧바로 수익 악화로 이어진다. 올해 현대차와 기아가 역대급 실적을 냈지만 정작 완성차 생산량은 크게 줄었다. 비싼 차가 많이 팔린 데 따른 것으로 공급망 대란에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완성차 실적이 늘면 부품사가 수혜를 받는다는 공식이 깨진 것이다.
치솟은 원자재 가격은 경영난을 더욱 부추겼다. 결정적으로 부품이 상대적으로 적게 들어가는 전기차로의 급격한 전환은 생존을 위협하는 악재가 됐다. 전기차나 자율차 부품을 납품할 수 있는 업체 자체가 한정적인 것도 문제다.
일감↓원자재·인건비·운송비↑…생존 위협28일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올해 1~6월 자동차 생산량은 177만9044대로 집계됐다. 지난해 상반기 기록한 181만 4626대보다 2% 감소한 규모다. 2015년 450만 대를 웃돌던 자동차 생산량은 2019년을 기점으로 400만 대 선이 무너졌다. 올해 역시 지난해에 이어 연간 350만 대 선마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해부터 고공행진한 원자재 가격은 치명타가 됐다. 사실상 가격 협상력이 없는 부품사는 보통 완성차 업체로부터 ‘적정 마진’을 부여받는 ‘을’의 구조다. 중소형사들은 치솟는 원자잿값을 부품 단가에 반영하기 어려운 구조인 만큼 손실을 떠안을 수 밖에 없다. 한국자동차연구원에 따르면 철·알루미늄·구리·니켈 등 주요 자동차 원자재 가격도 코로나19 이전대비 급격하게 상승했다. 지난해 열연강판 가격은 전년보다 211.1%, 냉연강판은 176.9%, 알루미늄 42.2%, 구리 49.8% 급등했다. 이에 따라 내연기관 자동차의 대당 원자재 비용은 2020년 3월 1779달러에서 지난해 5월 3662달러로 106% 올랐으며, 전기차 대당 원자재 비용은 3381달러에서 8255달러로 144% 증가했다.
운송비와 인건비도 큰 폭으로 오르며 부품기업의 부담이 가중됐다. 자동차부품의 86%가 해상운송으로 이뤄지는데 지난해 해상운임은 전년대비 약 3배 이상 올랐다. 중소 부품업체들은 대기업에 비해 재무구조가 취약하기 때문에 ‘인건비 부담 급증→연구개발(R&D) 투자 위축→기업 경쟁력 악화’의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전기차 사각지대…車 생태계 급변
미래차 전환 대응에 실기한 것도 자동차 부품업체들을 송두리째 흔드는 요인이다. 한국자동차연구원에 따르면 현재 내연기관에 들어가는 부품 수 3만 여개 중 전기차 시대로 전환이 되면 1만8900여 개만 사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엔진을 구성하는 6900개의 부품은 모두 사라지며, 구동 전달 체계에 들어가는 부품 5700개는 3600개로 줄어들게 된다. 전자장비 부품도 3000개에서 900개면 충분한 상황이다.
하지만 미래차에 대한 기술이 성숙한 부품 기업은 그렇게 많지 않다. 한자연 조사 결과 국내 9300여 개의 부품 기업 중 미래차 관련 부품 생산 준비가 돼있다는 기업은 2.3%(213개)에 불과했다. 연구개발을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 하지만 생존이 급급한 상황에서 대규모 투자는 생각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미래차 부품을 기획 후 양산하는 데까지 평균 13개월의 시간과 14억9000만원 가량의 돈이 필요한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지난해 자동차 부품 기업의 총 설비투자액은 3조7840억원으로 전년보다 9% 감소했다.
내연기관 자동차 부품을 주로 다루다 미래를 위해 전기차 부품으로 사업 구조를 바꾸는 것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업체들은 토로하고 있다. 수요가 점차 감소할 것을 알지만 여전히 내연기관 부품 납품도 진행되고 있어 한 번에 변화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많은 차 부품사들이 정부의 연구개발(R&D) 과제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변화를 꾀하고 있지만 이 마저도 지역의 차 부품사에 돌아가는 예산은 제한적이다. 게다가 이런 변화를 위한 노력도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업체의 경우고 영세한 기업들의 경우에는 엄두를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성기 코스텍 대표는 "전기차 부품으로 바꾸려면 인력, 자본, 수요처가 필요한데 이게 다 맞기가 어렵다"며 "변화하고자 해도 이 변화를 이끌어 줄 곳이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완성차 업체와의 계약 관계도 쉽지 않은 문제
완성차 업체와의 계약 등 관계가 경영 애로를 가중시키고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현대·기아차 2차 협력사인 중소기업 대표는 "완성차 업체와 계약을 맺을 때 매년 1%씩 3년 동안 납품 단가를 낮추는 방식으로 하고 있다"며 "제품 개발 초기에 비해 생산 설비가 감가상각을 당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개당 부품 납품 단가가 1500원이라면 매년 1%씩 가격을 낮춰서 납품한다는 것이다.
그는 "완성차 업체들은 매년 신차 가격을 높이고 있지만 이를 통한 낙수 효과가 1, 2차 협력사까지 미치지 못하고 있다"며 “전기차 부품 등 신규 설비 투자를 위한 자금이 매우 부족하다”고 호소했다. 다른 협력사 대표도 “완성차 업체와 납품 계약을 할 때 원자재 가격 인상에 대한 부분을 반영해주지 않는 것도 문제”라며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인건비 상승으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중소 차 부품사들은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이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력을 갖추려면 대기업과 정부가 힘을 합쳐 중소기업의 소재·부품·장비 개발과 테스트를 지원해주는 등 상생 협력이 절실하다는 입장이다. 현대차 2차 협력사인 한 중소기업 대표는 “현재 완성차 업체들은 국산이든 외산이든 알아서 매입해 조립하라는 식의 태도”라며 “자동차 관련 소재, 부품을 국산화하기 위한 완성차 업체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공학부 교수는 "원자잿값이 오르면서 부품 기업의 생존이 어려워지고, 이에 따라 미래차 대비를 위한 투자가 줄어드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며 "현 상황을 견디고 미래 대비를 위해 정부와 산업계가 지원에 나서야 자동차 생태계를 지켜나갈 수 있다"고 조언했다.
성기호 기자 kihoyeyo@asiae.co.kr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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